처남/처제 처럼 시형/시제, 형우/제우라고 쓰면 어때?
도련님, 서방님, 아가씨라는 호칭은 우리 사회가 신분제도를 따르고 있을 때 하인들이 그 댁 자제를 부르는 말이었다. 그리고 여자가 결혼을 하면 다른 하인들처럼 남편 집안 식구들을 그렇게 불렀다.
아주버님은 아제의 4단 높임말(아제>아저'씨'>아주버니>아주버님)이고 올케는 오라비의 계집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어 남편 쪽 호칭은 극존칭을 쓰고 아내 쪽은 하대해서 부르는 경향이 있다. 시가는 시댁이라고 부르고 처가는 처댁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도 그렇다.
시대적으로 잘못된 역사를 알고 바로 잡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시가 호칭에 있어서 만큼은 확실한 문제 제기 없이 여전히 불합리한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평소 인권과 평등과 관련한 예민함을 가지고 있다 보니 '도련님, 서방님, 아가씨, 아주버님, 올케'등 가만히 있는 호칭을 문제 삼아 깊은 고민에 들어섰다.
남자는 존엄하고 여자는 비천하다는 남존여비 사상에 물들어 시가의 호칭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에게 오늘날의 시가 호칭이 이대로 괜찮은가 물어봤자 오랜 관습에 기대어서는 쓸데없는 소리 한다고 취부될 것이 뻔하다. 더욱이 남자들은 이미 태어난 이상 여성 입장이 될 일이 없기 때문에 호칭에 따른 어긋난 관계 형성을 공감하지도 못할뿐더러 호칭 따위 바꾸는 일은 번거롭고 쓸데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여자임에도 남존여비를 따르는 여성들이 꾀나 존재한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인지부조화로 인해 남자는 존귀하다는 신념을 수용했거나 아들에게 동일시가 이러난 것으로 생각된다)
자기는 결혼하지 않은 것처럼 시누이 입장에서 시집 온 언니나 동생을 하대해야 자기가 존중받는 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고 자기는 며느리 시절을 겪어보지 않았거나 딸이 없는 양 '어디 감히'라는 생각으로 시가를 처가에 비추어 높이 추대할 것을 정당히 요구하는 시어머니도 존재한다.
이쪽저쪽 다 빼고 나면 시가 호칭에 문제의식을 갖고 해답을 찾는 사람은 소수가 된다. 대다수가 관습에 젖어 관심 밖에 있는 호칭 문제를 해결하고자 사회적으로는 소수지만 결혼 여성 대부분이 해답을 찾아 인터넷을 헤맨다.
답이 나오지 않는 인터넷 방황을 그만 마치고 불편을 느끼는 이들 스스로 우리 관계에 맞는 친근하면서도 상호 존중하는 호칭을 찾아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만약 글을 읽는 당신이 아주버님, 도련님, 서방님, 아가씨, 올케 등 불쾌한 호칭 때문에 가족 관계를 힘들어하고 있다면, 그래서 아예 안 부르기 전략을 사용하고 거리감을 유지한 채 살고 있다면 용기 내서 상호 평등한 호칭으로 바꿔서 써보길 제안한다.
아주버님이나 형님 대신 시가의 형이라는 의미의 시형이나 남편의 형이라는 의미의 부형
도련님, 서방님, 아가씨 대신 시아의 동생 이라는 의미의 시제나 남편의 아우라는 의미의 부제
올케언니 대신 윗 형제의 아내 형우
올케 대신 아랫 제우
국립국어원에서는 호칭을 대신해서 이름을 그냥 부르길 권장하지만 서로의 관계를 일컫는 말이 없어서 사적관계에 머무는 것도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타인에게 그 사람을 지칭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적절한 호칭이 없으면 기존 호칭이 계속 잔재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새로운 호칭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됐다.
문제의식을 갖고 며칠에 걸쳐 지식인과 전국 맘 카페, 관련 기사는 물론 국립국어원과 한자 옥편을 파고들어 잘못 된 호칭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호칭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만들어냈다. 이미 사용 중인 처남, 처제, 처형과 대등한 호칭을 만들고 '이거면 되겠다' 싶어 너무 기뻤다. 하지만 혼자 사용하자니 막막해서 이렇게 글로 쓰고 글의 권위에 기대어 용기 내고 싶었다.
글로 연결된 우리가 서로에게 의지해서 아가씨, 도련님 대신 시형, 시제 하는 평등한 호칭을 사용하며 평등한 가족 관계 누리길 소원한다.
그렇지만 적절한 호칭을 만든데도 이미 결혼해서 살고 있는 기혼여성으로써 이미 튼 호칭을 중간에 바꾸기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부자연스럽더라도 호칭이 평등하게 바뀌어서 시가 식구들과의 관계가 사실상 평등하다는 바른 인식의 기회가 마련된다면 실제로 호칭을 바꾸지 못한대도 독립을 맞이한 것처럼 반가울 것 같다.
만약 기존 세대가 새로운 호칭을 곧바로 적용하지 못하더라도 예비 신부들에게는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결혼을 선택하고 호칭의 벽 앞에 진저리 치면서 시대적 사고에 걸맞은 호칭을 찾는 수많은 여자 후배들에게 시대착오적 호칭에 대체제를 제시해 줄 수 있다면 참 뿌듯한 일이 아닐까 생각됐다.
결혼 한 많은 여성들이 시가의 '시'자만 들어도 기분 나쁘다는 말을 종종 한다. 이건 어쩌면 잘못된 호칭에서 기인된 미묘한 열등 의식과 자존감 회복을 위한 노력으로써 기싸움을 펼치며 잘못된 관계가 형성되면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 상상해 봤다.
우리 사회가 여성의 인격과 사회적 입지를 고려할 수 있는 선진화된 사회가 되었다면 지금까지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잘못된 호칭을 평등하고 인격적인 언어로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혼이라는 축복 뒤에 따라오는 호칭 문제 때문에 새로운 가족과의 만남이 불편해지는 건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행복의 그림자 같은 불행이다.
시가 호칭 문제가 가져오는 문화적 문제점에 대해 사회적 공감이 형성되서 자연스럽게 평등한 호칭을 사용하게 되면 좋겠다.
같은 여자들끼리라도 호칭 앞에서 기죽이고 기죽는 잘못된 악습을 앞장서서 끊어냈으면 한다. 독립적이고 존중하는 호칭으로 바꾸어 부르다보면 괜한 고부 갈등이나 있지도 않은 시집살이 같은 느낌이 옅어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평등하고 평화로운 가족문화를 만들고자 새로운 단어 하나 만들어 쓰는 것이 남존여비 사상자들에게 근본 없고 못 배운 처지로 몰리지 않길 희망한다. 지금 세상은 자율주행차가 돌아다니고 인공 신체로 생명을 연장하고 인공지능이 나보다 나를 더 많이 아는 공상과학이 실현되는 세상이다. 빠른 변화 속도만큼 수 없이 쏟아지는 신조어를 익히며 살고 있는 우리들이다. 평등한 가족 관계를 만들고자 단어 하나 더 만들어 쓰는 걸 너무 번거롭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의 억지스러운 노력이 내 아이가 성인이 되어 누군가를 사랑하고 결혼을 선택한 대가로 불쾌한 호칭을 받아 들 필요 없길, 어떤 고민도 이상함도 느낄 일 없이 상호 평등하고 존중하는 시형/시제, 형우/제우 호칭 쓰면서 기분 좋은 가족 관계 맺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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