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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다감 Dec 06. 2022

경력단절 여성 취업과정

꿈꾸는 경단여

시골에서 애들키우고 살다가 도시의 부모님 곁으로 이사 오면서 돈벌이를 시작할 계획을 세웠다. 


이래 저래 고민이 한가득이었다. 할머니를 자주 만나지 않았던 아이들이 할머니와 등교 하교를 함께 할 수 있을까? 엄마의 건강은 장기적인 일정을 감당해 주실 수 있을까? 나는 불안 없이 일에 몰입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취업이 안되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마지막 직장생활을 했을 때 300만 원에 못 미치는 급여를 받았었다. 그새 나이가 들었고 전문성이 떨어졌지만 10년의 물가상승을 고려해서 50만 원을 깎아서 250만 원 수준에서 관련 직종 중심으로 이력서를 내기 시작했다. 아무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두 달이 지나고 급여를 220으로 내렸고 사무, 행정 쪽으로 넓혔다. 

또 두 달이 지났고 급여를 200으로 내렸고 영업, 판매 쪽까지 넓혔다.

다시 두 달이 지났고 급여를 150으로 계산해서 알바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40대의 경단여(경력단절 여성) 문제가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니 어려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면접요청 자체가 아예 없을 줄은 몰랐다.


결국 갈 수 있는 곳은 시급이 가장 좋은 식당 주방이 최선이었다. 그밖에 학습지 선생님, 텔레마케팅, 기획 부동산에서는 내게 관심을 주었지만 매우 적은 업무시간과 비정상적인 페이를 제시하며 누가 봐도 내가 낚여주길 기대하는 분위기여서 식당만큼 신뢰가 가는 곳은 없었다. 애들 키우고 사느라 모르던 세상 많이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엄한 이력서를 쓰고 있는 나를 보며 오히려 세상을 너무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지난날의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꿈꾸던 조경일을 하던 시절이었다. 꽃 축제 준비를 하느라 조경 설계하고 발주 넣고 신이 나게 꽃을 심고 있었다. 관광객을 인솔하는 분이 나를 지나며 이야기했다. '아이고, 학생 때 공부 좀 열심히 하지' 호미질을 멈추고 뭔 소린가 두리번거리니 일행은 저만치 지나가고 없었다. 꿈을 찾아 삶을 즐기던 나는 졸지에 학생 때 공부 안 해서 젊어 흙만지는 고달픈 신세가 되어 버렸다. '내가 공부를 못해서 조경일을 꿈꾸고 이 일을 하고 있는 건가?'황당하고 의아했다.


그리고 언 20년이 흘러 경력단절 여성이 되고 '내가 학생 때 공부를 못해서 식당일 밖에 할 수 없는 건가?'다시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청춘을 불사르던 시절 인테리어 공사 현장과 꽃 축제를 누볐고 연극무대를 누볐고 요가명상 수련을 하며 전국을 누볐다. 거리공연을 기획하고 협동조합을 설립하며 그 누가 내 앞을 막을쏘냐 도전에 도전을 이어왔다. 하지만 아이 둘을 낳고 세상에 다시 나서려고 하자 나를 받아줄 곳이 아무 곳도 없어 식당에서라도 받아주는 것이 고맙게 느껴지는 상황이 되었다.


하루 다섯 시간 식당에서 설거지를 시작한 지 4일이 됐다. 


구부린 자세 때문에 등골이 아프고 손목이 시큰거렸다. 밥을 푸고 설거지를 하며 자꾸 생각에 젖어들었다. 주어진 삶을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밟아오고 있었는데 어느 결에 나는 산더미 같은 설거지 앞에 놓여있다. 신성한 노동의 현장에서 헛생각을 하고 있다며 생각을 지워내길 여러 차례 반복했다. 그래도 자꾸만 생각이 밀려왔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지금의 삶으로 접어든 걸까  지금 상황이 잘된 건가 잘못된 건가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이번에 시작한 일은 집에서 가까워 출퇴근 시간이 들지 않고 정확히 내가 원하는 시간만큼 일할 수 있어 아이들 케어가 가능하고 시급이 좋다. 이런 곳에서 사람을 찾을 때 내가 때마침 주방일을 하겠다고 결심한 것이 기적처럼 반갑다. 아파트 대출금에 대한 약간의 부담도 덜었고 태권도 학원에 가고 싶어 하던 딸아이 학원도 보내줄 수 있고 몸 망가지지 않으려고 헬스장 회원권도 끊었으니 건강과 활기를 두루 챙길 수 있어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사실 두 아이와 대출이라는 단단한 현실 앞에서 이보다 좋을 수 없다는 생각에 집중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다. 


경력단절의 현실 앞에서 각오를 세운다. '그래, 젊은이들이 먹고살려면 내가 물러나야지! 지금에 만족하고 최선을 다하자. 이렇게라도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신성한 노동의 현장을 허튼 생각으로 오염시키지 말자! 그리고 몇 년 후에는 어느결에 심리상담사이자 작가로서 먹고살 수 있도록 매일 매일 부지런히 걸어 가자.'


꿈을 품은 경단여 모두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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