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틀과 타피스트리는 비슷한 듯 다르다. 공통점으로는 처음 직조를 시작하기 전에 정해놓은 직물의 폭과 길이를 변경하기는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차이점으로는 몇 가지가 있는데, 먼저 베틀에 비해서는 타피스트리가 비교적 쉽고 단순하며 틀 자체도 작고 가볍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타피스트리가 베틀보다 진입장벽이 낮아 처음 직조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적합하다. 그러나 타피스트리로 직조를 배운 사람들은 일정 정도 시간이 지나고나면 한결같이 '더 큰 직물을 짜는 방법은 없느냐'고 물어본다. 타피스트리는 기본적으로 그 틀보다 더 큰 직물을 짤 수 없기 때문이다. 타피스트리 기법 그대로 더 큰 직물을 짜기 위해서는 더 큰 틀을 필요로 한다. 이에 반해 베틀은 베틀의 앞뒤로 직물빔과 경사빔이 있기 때문에, 타피스트리에 비해 긴 직물을 짤 수 있다.
타피스트리 (왼) 베틀 (오)
짜여진 직물에도 차이가 있다. 베틀로 짠 직물은 세로실과 가로실이 모두 보이는 것이 기본이다. 타피스트리로 짠 직물은 대체로 세로실은 숨겨지고 가로실만 보이게 된다. 물론 베틀과 타피스트리 모두 세로실의 간격이나 세로실과 가로실의 굵기 비례에 따라 세로실을 숨기거나 드러나게 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원리는 같지만 베를 짜는 방식이나 결과물이 다르게 나오기 때문에, 어떠한 직물을 짤 것인가에 따라 베틀과 타피스트리 중에서 더 적합한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베틀의 경우에는 규칙적인 패턴을 균일하게 짤 때에 더욱 적합하다. 이에 반해 타피스트리의 경우에는 보다 자유로운 그림이나 비정형의 패턴을 짤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타피스트리로 짠 간판. 붓터치의 섬세한 특징까지 표현할 수 있다.
이런 내용들 듣고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우리나라에 전통 베틀이 있었던 것은 아는데, 그러면 타피스트리는 없었던 것이냐, 해외로부터 전해진 것이냐' 하는 점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다' 이다. 우리나라에도 '조선철朝鮮綴' 이라는 이름으로 타피스트리가 존재했었다. 다만 그것이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전해져내려오지 않았을 뿐이다.
조선철이란 교토 기온마쯔리 구역에서 전해져 온 구승명으로 거친 짐승의 털을 씨실로 하여 문양을 짜 맞춘 묵직한 직물을 뜻하며, 먹 또는 안료로 선이나 그림을 그린 카페트 혹은 벽걸이로 전해 내려온 것들을 총칭한다.
요시다 고지로, '조선철에 대하여'
경운박물관 <조선철을 아시나요> 전시 포스터
조선철과 관련하여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아래의 2016년 경운박물관에서 있었던 <조선철을 아시나요> 전시 소개 링크를 참고할 수 있다.
아마도 정말 많은 수의 사람들이 '천'에 대해서, 지금까지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에 미처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살펴볼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천과 직물에 관해서는 지난 번 글과 이번 글의 내용이 전부가 아닐 뿐더러, 어쩌면 잘못된 내용이 있을 수도 있다. 비록 부족한 글일지라도 이러한 내용들이 누군가에게는 주변의 천이 어떠한 조직을 가지고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 <베틀과 직조> 시리즈는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연재를 종료합니다. 얼마 간의 준비 기간을 가진 후에 <베짜는 백수의 생활과 생존>의 연재가 시작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다음 시리즈의 제목인 <베짜는 백수의 생활과 생존>은 대만의 연극 《華麗上班族之生活與生存》 에서 따온 것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