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하지 않고,
"엄마!" 하고 받는다. 그 순간 엄마는 당신이 전화를 걸었음에도 이렇게 대답한다.
"응. 왜?" 한참 같이 웃는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몇 번 이런 상황이 있었다.
아니 엄마가 전화 걸었잖아. 그럼에도 내가 엄마를 부르면 엄마는 내가 무슨 일이라도 있는 듯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고 한다. 여보세요.라고 받아야 엄마가 전화한 용건이 생각나는데, 받자마다 순간 엄마를 불러버리니 하려고 했던 말은 싹 지워지고 내가 무슨 일이 있어서 엄마 부르는 것처럼 생각 드나 보다.
고집불통, 자다가 일어나 몇 시간을 고집 피우고 울기도 하고, 하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거, 내 마음대로 안되면 울고, 그렇게 어릴 적에 엄마 아빠를 힘들게 했던 첫째 딸이 바로 나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부유한 집에서 자란 것처럼 생각 들게, 그렇게 우리 엄마 아빠는 나를 키웠다.
엄마와 아빠, 부모님의 삶을 돌아보면, 그 시절 얼마나 내가 철이 없었는지 생각 든다. 우리 아빠는 가운데 손가락 마디가 하나 없다. 어릴 적에 나에게 빨간 구두를 사주고 싶어서, 쉬는 날도 목공일을 나가서 일하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절단했다고 들었다. 아빠가 시절을 잘 타고 태어났으면 아마도 지금 아빠는 DIY 목공기술로 가구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꿈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주지 못했다.
아빠는 나와 동생들이 어릴 적에 자주 떨어져 지냈다. 당시 해외근로자로 파견되어, 사우디아라비아, 싱가포르에서 돈을 벌어서 집으로 보내줬고, 엄마와 우리는 잘 살았다.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서 우리 집이 최초로 전화기가 놓였고, 집에서 생일파티를 열어줬고, 바나나를 먹을 수 있는 친구집이 우리 집이었다.
엄마와 아빠가 떨어져 지낸 시간이 길고, 우리도 아빠는 늘 어색했다. 자주 보지 못하고 살아서 그렇다.
물론 모두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면서부터는 부모님을 이해하고 자주 보고 지내려고 하면서 변화하고 서로가 용서하고 안아주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어릴 적의 아빠는 우리에게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살아보니 그렇다는 걸 알았다. 잘 살던 집이 어느 날 어떤 일로 인해서 가난해지기도 하고, 어려웠지만 다시 일어서기도 하고,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때도 있다. 그 순간마다 엄마는 나에게 버팀목이 되어준 사람이다. 문제를 일으켜도 문제의 원인보다는 해결법을 찾아주려고 했고, 괜찮다고 다시 하면 된다고 했다.
아빠로부터 받은 많은 상처를 우리는 서로 보듬고 치유했다. 나와 동생들, 엄마가 아니었으면 불량청소년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그런 사춘기 시절조차도, 엄마는 내 옆에서 나의 속도를 맞춰주고 안내해 주는 페이스메이커였다.
결혼할 때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고 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정말 제대로 좋은 것을 물려받았다. 바로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할 수 있는 힘이다. 엄마는 내게 그걸 줬다.
물론 결혼하고도 울고, 엄마를 찾기도 했고, 어렵고 견디기 힘든 순간을 털어놓기도 한 사람은 엄마뿐이다.
좀 더 나이가 들면서 엄마가 걱정할까 봐 다 말하지 못하고 스스로 해결해 나가고 있지만, 어떤 순간에도 엄마는 나를 탓하지 않는다.
내가 변화해야 하고 내가 생각해야 할 것들을 던져준다. 결국 내 인생임을 자연스럽게 알려준 것이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 엄마, 지금도 나는 긍정의 메시지가 필요할 때 엄마를 찾는다.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 가장 묵묵하게 내 곁을 지켜준 페이스메이커,
그 사람이 바로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