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도 여백이 필요하다.

너와 나의 안전거리

by 최다온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내 우리 집 앞을 지나는 길에 키가 큰 나무들이 양쪽으로 줄지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다른 풍경으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어느 여름날 광장 벤치에 앉아 그 숲길을 보다가 잠시 생각한 적 있다. 저 나무들의 간격이 조금 더 가까웠더라면, 아니면 조금 더 떨어져 있었더라면 이만큼 아름다울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 나뭇잎이 무성하게 자라는 여름날에 그들이 더 붙어 있었더라면 서로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잎이 모두 떨어지고 가지만 남아 있는데 간격이 더 넓었더라면 조금 더 추워 보이고 외로워 보였을 것 같다.


너무 가까우면 서로를 찌르고 또 너무 멀면 서로가 함께인 느낌이 아니었을 것 같다. 일정하게 유지된 간격은 나무들 서로를 지키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냈다.

가끔 가로수 길을 운전하면서도 그런 풍경들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종종 관계를 가까움으로만 채우려고 하는 순간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자주 만나야 하고, 자주 연락해야 하고, 서로의 일상에 깊이 들어갈수록 좋은 관계라고 착각한다.


학교에서 미술시간에 배웠던 여백의 미라는 말이 난 참 좋다. 작품 속에서의 아름다움은 여백의 미를 통해 더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모두 무언가로 꽉 채워 넣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깊은 느낌이 생기고, 보는 사람의 마음이 머물 자리가 생긴다.


사람의 사이에도 꼭 필요한 것이 여백의 미라고 말하고 싶다.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하고 가까이 붙어 있으면 서로의 감정에 쉽게 부딪히며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좋은 관계일수록 가끔은 한발 물러설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연락이 잠시 뜸해도 괜찮고, 각자의 시간과 생각을 존중할 수 있는 거리가 필요하다.

부부사이도, 부모와 자식사이도, 친구사이도, 꼭 필요하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끔 적당한 여백을 남기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참견하고 싶고 잔소리하고 싶고, 많은 것을 알려고 하면 아이는 문을 닫는다. 한 템포 쉬고 아이들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려고 노력할 때 아이들이 좀 더 편안한 엄마를 받아들이고 찾아왔다. 부부사이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각자의 시간, 함께 하는 시간, 모든 것을 인정해 줄 때 그 관계가 편안히 오래가는 것 같다.


관계의 깊이는 얼마나 많이 채워졌는지보다 얼마나 편안한 여백을 남겨두었는지로 결정될 수도 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여백이 있어야 관계가 오래 숨 쉬며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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