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start together! We finish together!
ADAPT 국제공인 파쿠르 코치 자격과정은 프랑스 야마카시(Yamakasi) 팀으로부터 전해내려오는 자기극복의 문화를 전승하기 위해 매일 코스가 끝난 뒤 신체적, 정신적 도전을 수행한다.
오늘 훈련은 숭실대 학생회관에 있는 <천국의 계단> 네발걷기 도전이다. 이곳이 천국의 계단이라 불리는 이유는 계단이 깊어서 제일 아래층에서 올려다보면 푸른 하늘만 보이기 때문이다. 도전과제는 천국의 계단을 네발걷기 뒤로 올라가서 네발걷기 앞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이렇게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을 1세트로, 세트를 완료할 때마다 나무토막 1개씩 탑을 쌓아 총 54개의 나무토막으로 18층짜리 탑을 완성하는 것이다.
계단은 까마득했다. 내가 도전과제를 설명할 때, 참가자들이 '설마'하는 표정으로 주어진 목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혼자서는 불가능한 도전이지만 함께하면 충분히 달성 가능한 도전이다. 내가 먼저 앞장서서 계단을 향해 네발걷기를 시작하자 참가자들은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야마카시 팀의 규칙 중 한가지는 자신이 동료들과 함께 하고싶은 도전이 있다면, 자신이 먼저 나서서 약속한 말을 지켜야 한다. 자신이 내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하고, 말의 무게를 몸으로 증명해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타협은 없다. 대신 변화를 추구한다.
네발로 기는 도중 천국의계단 네발걷기를 처음 도전했을 때가 기억났다. 2017년에 파쿠르제너레이션즈코리아 D.A.P(Developing Athlete Program) 멤버들과 천국의 계단에 도전했었다. 네발걷기를 수행하며 5년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일치되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변함없이 천국의 계단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네발걷기를 계속 수행했다. 티셔츠가 눈을 가리자 웃통도 벗었다. 힘들었다. 과거보다 더 나아지지 않은 내 자신을 반성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신음소리와 열정을 다해 계단을 네발로 기어가는 동료들의 모습이 보이자 용기가 샘솟았다.
나는 스스로의 다짐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로 외쳤다. "다같이 시작해서!" 그러자 동료들이 "다같이 끝내자!"라고 외쳤다. 더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외로이 감내해야했던 고된 수련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아무도 관심이 없는 길. 노력해서 큰 성취를 해내도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길을 나는 오랫동안 걸어왔다. 파쿠르가 그저 자기만족으로 끝나는 취미였다면 괴로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파쿠르를 좋아하는 단계를 넘어 사명감을 가지고 움직인다. 파쿠르를 통해 나 자신 뿐만 아니라 사람과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것. 이것이 나의 사명이다. 높은 계단과 쌓여가는 피로감은 타협하고싶은 마음을 앞당겼지만 항상 그래왔던 것 처럼 내 자신과 동료들을 믿고 한 발자국씩 나아갔다. 어느덧 나무토막이 차곡차곡 쌓여 몇조각 남지 않았을 때, 그저 나무토막에 불과했던 것이 모두의 피와 땀이 서린 하나의 상징으로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 하나된 이타심은 주변에도 영감을 주기 시작했다. 촬영을 하던 의렬이와 가명이도 감화되어 네발걷기 도전에 합류했다.
텅빈 바닥에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었던 나무토막들은 우리의 인내, 용기, 이타심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의미를 얻었고 힘든 상황 속에서 희망이 되었다. 함께 힘을 내면 해낼 수 있다는 희망.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불가능해 보였던 도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마지막 나무토막이 남았을 때, 의렬이가 외쳤다. "뒤에 남아있는 사람을 위해 다같이 가자!" 의렬이는 먼저 행동으로 보여줬다. 저 멀리 계단을 네발로 내려오고있는 트레이서(Traceur, 파쿠르 수련자)를 향해 뒤로 네발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남은 트레이서들이 용기를 얻어 다함께 기어 올라갔다. 제일 후미에 남겨져 있던 이들도 무리와 합류하여 다같이 내려갔다. 마침내 바닥에 도착했고 다빈이가 마지막 남은 나무토막을 떨리는 팔을 힘겹게 들어올려 탑에 쌓아올렸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해냈다. 원으로 모여앉아 한명씩 소감과 후기를 나눴다. 각자 자기 스스로 상기된 표정에서 감동적인 이야기가 울려퍼졌다. 나는 이야기를 하나씩 들을 때마다 울컥 올라오는 감정들을 극기의 마음으로 간신히 끌어내렸다.
여러분 덕분에 나는 해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나는 숭고한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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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막(Yamak) 트레이닝을 하다보면 이런 순간에 다 다를때가 있다. 고된 훈련 중 잠시 멈추어 세상을 바라볼 때, 갑자기 온 세상이 내 눈, 몸, 마음 속으로 꽉 찬듯 들어올 때가 있다. 정적 속에 충만함, 세상과 하나된 연결성을 인지하는 이 느낌은 도대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고단한 훈련으로 생각과 마음의 찌꺼기들을 비우고 비워 찻잔처럼 텅 빈 내 몸 안에 세상이 들어설 틈, 공간이 생긴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