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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쿠르 코치 김지호 Oct 21. 2023

기술중심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자


얼마 전, 모험 움직임 지대 정모를 마치고 뉴질랜드에서 잠시 귀국한 석준님의 소개로 코치들과 함께 남양주에 있는 춘천우성닭갈비집에 갔다. 맛이 일품인지라 파쿠르하는 사람들끼리 오랜만에 대화의 꽃을 피웠다. 여러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그 중에서 흥미로웠던 주제는 '기술' 중심 접근방식은 입문자들에게 파쿠르 본연의 즐거움과 매력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파쿠르의 매력은 장애물과 상호작용하면서 예측하지 못했던 움직임의 길이 트이는 것인데 기술로서 접근하면 움직임의 자유도는 소거되고 장애물은 부담스러운 숙제로 여겨진다. 무엇보다도 기술이라는 틀에 몸을 구겨넣는 과정은 헬스장 기계에 몸을 맞춰 운동시키는 것과 흡사하다. 데카르트적 사고로 몸은 정신의 도구라는 인식의 토대 위에 인고의 시간과 철저한 자기관리가 요구된다. 종은님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 몸에서 출발하는 움직임이 아닌 남들이 인정하는 기술이나 SNS에서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기술위주로 파쿠르를 접근한다고 비판했다. 예를들어 다수의 파쿠르 새내기들은 멋지고 화려한 기술들 - 꼭 콩 볼트를 하거나 사이드플립을 해야 파쿠르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술들이 제대로 안되면 파쿠르에 흥미를 잃거나 자기와는 안맞는 활동이라 여긴다. 혹은 자기 몸을 혐오하고 채찍질한 끝에 기술을 해냈다는 성취감에 젖어 남겨진 부상의 흔적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한다. 이에 다른 코치들도 동조하며 우리가 실제로 경험해 온 파쿠르는 기술보다 자기 몸에서 출발하는 자유도 높은 움직임, 그리고 다양한 몸, 사물의 쓰임새에 대한 실험적인 시도들인데 그 입체적인 모습들이 바깥 세상에 충분히 드러나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나는 기술중심으로 사고하고, 파쿠르를 접근하게 만드는 '문화'의 생산자는 다름아닌 우리 자신임을 강조하며 고민거리를 덧붙였다. 이는 누구나 연습할 수 있는 수련으로서 바라보기 보다는 일종의 '기인'을 보고싶어하는 대중의 욕망과 배고프고 마이너한 세계에서 빠르고 효율적으로 성공하고 싶어하는 파쿠르 내부의 욕망이 맞물린 결과라 생각한다. 여전히 나는 실재와 외부에서 보여지는 현상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방법으로 코칭과 커뮤니티의 힘을 믿는다. '좋아요'와 '공감' 없이 살 수 없는 시대지만 '좋아요'와 '공감'만으로 살 수 없는 것도 현실이기 때문이다. 


장애물만 있다면 언제어디서나 연습할 수 있는 파쿠르는 길거리에서 연습하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럽게 위험에 노출되는데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단계별 동작 세분화(Segmentation)다. 파쿠르에 입문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내 주변에는 영상만 보고도 어려운 동작을 한 번에 해내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다. 그 광경을 옆에서 보면 설명되지 않는 상황에 압도되어 연습할 의지가 사라진 채 구경꾼이 됐다. 호기심을 갖고 모임에 나온 입문자에게 길거리 파쿠르 세계는 상당히 험했다. 


누군가 인생은 실전이라고 했던가? 연습은 없다. 거친 장애물 앞에서 해내느냐 다치냐 둘 중 하나였다. 지금은 사라져 가는 문화지만 어떤 새로운 것이 태동할 때만 경험할 수 있는 순수한 야생성-무한한 가능성과 위태로움이 공존하는 모순을 몸으로 부대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한 번에 얻은 동작은 시행착오(과정)를 지나쳤기 때문에 지도현장에서 동작 세분화를 어려워한다. 암묵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코치는 학생에게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 "난 당연히 됐는데 너는 왜 안되니?" 


모순은 계속되고 있다. 파쿠르에 대한 나의 생각과 움직임은 길거리에서 귀납적으로 쌓아올렸는데 지도 현장에서는 연역적으로 코칭할 수 밖에 없다.(보편적으로 정해진 기술중심 수업을 지도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그 둘이 미묘하게 만나는 지점이 단계별 동작 세분화를 계획하고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적용할 때다. 현실은 귀납과 연역의 구분이 모호할 뿐더러 새끼줄처럼 베베꼬여있다. 최소한의 다짐은 지나친 세분화로 인해 목적으로부터 멀어지지 말자는 것. 그리고 움직임 학습이 선형(Linear)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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