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생명의 나무에서 가장 최근에 생긴 세로운 종(新種)이고, 짧은 역사를 지녔다. 어떻게 인간은 이렇게 짧은 시간에 지구를 지배할 수 있었을까? 모든 생물의 움직임의 자유도와 다양성은 보행운동(Locomotion)에서 시작된다. 이동능력과 형태는 주어진 환경 및 시공간의 제한 속에서 생물의 생존의 질(Quality)과 양(Quantity)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등생물일 수록 복잡하고 자유로운 움직임 구사가 가능하여 환경 적응과 위기극복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인간이 지구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분명 인간만의 타고난 이동능력이 있었을 것이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 인간이 목적지로 이동할 때 마주하는 다양한 지형 지물들을 극복하면서 활용하는 움직임들을 분류해 보면 기어가기(Crawling), 걷기(Walking), 달리기(Running), 도약하기(Jumping), 오르기(Climbing), 균형잡기(Balancing), 매달리기(Hanging, Swinging), 구르기(Rolling), 통과하기/뛰어넘기(Passing, Vaulting), 수영(Swimming) - 10가지 영역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10가지 움직임의 영역들 중에서 특히 인간의 진화와 생존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을 기준으로, 원초적인 움직임(Primal Movement)을 선정하게 되었는데 바로 달리기였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의 움직임은 직립두발보행(Erect bipedalism)에 근간을 두고 있다. 동물학의 관점에서 인류를 규정하는 최대의 특징으로, 이 자세는 인류의 형태, 생리기능, 생활에 혁명적인 변화를 초래하였다. 본래 전진운동기관인 앞다리가 상지(팔)가 되고 전진운동 이외의 운동, 특히 섭식활동, 도구의 제작, 사용 및 몸짓운동에 사용하게 되었다. 또한 직립이족보행은 유인원의 사족보행에 비하여 에너지소비가 적고 장거리이동에 적합하다. 또한 침팬지의 수직등반시에 인간의 이족보행과 유사한 근력운동이 생기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와 먹이나 도구의 운반행동을 결부시켜서 직립이족보행의 획득이 논의되고 있다.
둘째, 인간은 지구상 모든 생물 중 가장 오래, 먼 거리를 달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지구 곳곳으로 인간이 빠르게 퍼져 나가고, 사냥 및 수렵 채집 활동에 많은 이점을 제공하였다. 멕시코의 험준한 오지이자 마약조직들의 본거지인 ‘바란카스 델 코브레(Barrancas del Cobre, 구리 협곡)’ 깊숙이 터를 잡고 살아온 ‘타라우마라(Tarahumara)족’이 달리기가 인류진화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증명해 준다. 스스로를 ‘라라무리(달리는 사람들)’라고 부르는 타라우마라족은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오래 달리기 선수들이다. 오랫동안 AP통신의 종군기자로 활동했던 논픽션 작가 크리스토퍼 맥두걸(Christopher McDougall)은 2009년 5월에 출간한 베스트셀러 ‘Born to Run(달리기 위해 태어나다)’ 에서, 자신이 직접 만난 타라우마라족의 전설적인 이야기와 그들이 이어오고 있는 달리기의 비밀을 풀어놓고 있다.
멕시코 역사학자 프란시스코 알마다는 한 타라우마라인이 한 번에 480킬로미터를 달리고, 여러 날 동안 사슴을 쫓아가 사슴의 발굽이 너덜너덜할 정도로 탈진했을 때 맨손으로 잡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태양이 뜨고 졌다가 다시 뜨는 동안 마라톤 코스를 12번 주파한 것이다. 노새를 타고 12시간이 걸린 험한 길을 타라우마라족이 90분만에 주파했다는 한 탐험가의 보고도 있다. 더욱 놀라운 건, 그들이 매끈하게 포장된 도로가 아니라 깊은 협곡의 울퉁불퉁한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달린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쿠션이 빵빵한 러닝화가 아니라, 얇은 가죽 밑창에다 끈으로 발등과 발목을 얼기설기 묶은 ‘샌들’을 신고서. 거의 맨발로 달린다는 이야기다. 상상을 초월하는 타라우마라족의 오래달리기 능력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타라우마라족이 생존을 위해 오래 달리도록 진화한 인류의 달리기 본능을 온전히 이어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호흡하는 일만큼이나 달리기를 당연한 일상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오래 달리기 그 자체를 오락처럼 즐긴다는 것이다. 돌고래에게 헤엄치는 일이 그렇듯, 철새들에게 날아가는 일이 그렇듯, 타라우마라족에게 달리기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활동인 것이다. 인간의 문명 속에도 타라우마라족과 유사한 움직임을 구사하고, 밈(Meme)을 전파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파쿠르(Parkour)를 수련하는 트레이서(Traceur)들이다. 파쿠르는 1980년대 말, 프랑스에서 시작된 새로운 스포츠로 도시의 장애물들을 자유자재로 극복하는 이동예술이다. 문명과 도시가 인간의 몸을 통제하고 억압한 나머지 자유를 찾아 빌딩 숲을 누비는 신인류라 할 수 있다. 최근 연구에서 버밍엄 대학교의 루이스(Lewis Halsey) 박사와 그의 동료들은 트레이서(파쿠르 수련자)들을 섭외하여 나무 위에 사는 유인원들의 움직임을 인간이 모방하여 수행할 때, 소비되는 산소량을 측정하였다. 첫 실험에서는 낭떠러지 사이를 극복하는 과제가 주어졌고, 점프해서 한번에 건너편으로 이동하거나, 장애물에 매달려 이동하는 방법, 나무 타듯이 올라가는 방법이 주어졌다. 실험 결과는 점프 및 매달려 이동하는 것 보다 올라가는 방법이 10-20배 더 에너지 소비량이 높았다. 올라가는 동작은 이동 중에 불필요한 동작이 많았고, 중력을 이겨내고 오랜 시간 자세를 버텨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더욱 복잡한 환경, 장애물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두번째 실험에서는 발이 땅에 닿지 않고(용암놀이 형식), 100m 장애물 코스를 제한 시간 내에 이동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실험 참가자들은 각각 4회를 시도했고, 여러 번 시도할수록 에너지 소비량이 감소됐다. 흥미로운 사실은 팔이 길고, 다리가 짧은 사람일수록 보다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아끼고 시간기록도 우수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장애물을 극복할 때 구체적인 동작이나 기술을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트레이서들은 원숭이처럼 자연스럽게 장애물들을 극복했다는 것이다.
이 결과에서 루이스 박사와 그의 팀은 두가지 가설을 추론했다. 하나는 팔이 길고 다리가 짧을수록 울창한 숲, 나무 사이를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다. 둘, 복잡한 길을 극복할 때 그 길을 기억할 수록, 복잡한 움직임을 실행할수록 뇌의 인지능력 필요하며, 생존 기회 또한 증가한다.
4백만년 전 인류가 처음으로 맨땅을 디디고 직립보행 할 수 있었던 것은 2천만년 전 유인원 종이 처음 출현했을 때, 나무 위에서 생활하면서 진화의 사전 기초작업이 이루어진 것이다. 종합하여, 인간의 움직임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할 때, 소요되는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하였다. 사냥, 수렵, 채집 등 먹을 것을 찾거나 추적하거나 도망가는 등 이동에 있어서 효율적인 움직임을 구사할수록 생존의 질과 양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이 가장 빠르게 전 지구적으로 퍼져 나가고 생존할 수 있도록 도와준 진화의 무기는 바로 달리기였다. 달리기 중에서도 가장 오래, 멀리 달릴 수 있는 능력 말이다. 그럼 앞으로도 지구의 지배자는 인간일까?
최근 보스턴 다이나믹스(Boston Dynamics)에서 개발한 ‘아틀라스(Atlas)’는 인간처럼 달리고, 뛰고 심지어 파쿠르, 공중제비도 한다. 인간의 진화에 오랜 시간 자연이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지금은 인간이 만든 문명과 기술이 인간에게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미 문명과 기술의 발전 속도가 생물학적인 진화 속도를 따라잡은 지 오래됐고, 오히려 문명 발달 속도를 인간의 진화가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인간의 고유한 이동능력 ‘달리기’ 또한 편안한 에스컬레이터, 쇼파, 자동차 등 문명과 기술로 대체되었다. 머지않아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새롭게 정의 내려야 할 시기가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