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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쿠르 코치 김지호 Oct 21. 2023

아이들은 처벌말고 모험이 필요했던거야

예전에 충남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로 있다가 백석중학교 교감 선생님으로 부임한 인경숙 선생님 소개로 백석중학교에서 파쿠르 수업 5회를 실시하게 되었다. 누리봄 교실 학생들은 소위 ‘문제아’들을 모아둔 곳으로 편의점 물품, 오토바이 절도 등 청소년 범죄에도 노출되어 있는 친구들이었다. 첫 수업 전부터 교감 선생님을 비롯한 장우정 담당 선생님은 나에게 학생들을 대할 때 주의사항과 지켜야할 것들을 심신당부했다. 아무래도 결석이 잦고 선생님들을 함부로 대해 온 학생들의 전적으로 미루어보아 내 수업이 많이 걱정되시는 듯 했다. 사실, 내 속 마음은 선생님들이 학생들에 대해 미리 말해주지 않기를 바랬다. 그래야 학생들을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과거에 무엇을 했던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 순간만이 바로 그 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오후 1시 30분. 4명의 학생 중 3명이 교실에 들어와 앉았다. 첫 수업이라 그런지 그들은 조용히 앉아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행동들을 면밀히 관찰했다. 나는 준비해온 PPT와 동영상 자료로 20분 정도 자기소개와 파쿠르 소개를 이어나갔다. 선생님들이 우려했던 것 과는 달리 참여도가 나쁘지 않았다. 정해진 규격의 교실 안에서 말을 길게 해봤자 아무리 좋은 콘텐츠와 강의라 하더라도 흥미를 잃을 것이 뻔하기에 강의를 빠르게 마치고, 바로 실전으로 들어갔다. 나는 즉흥적으로 ‘사일런스 파쿠르’ 세션을 시작했다. 사일런스 파쿠르는 소리내지 않고 주변 지형지물을 극복하는 시간이다. 소통방식 또한 소리가 나는 ‘말’ 대신 바디랭귀지로 진행한다. 나는 교실에 있는 의자, 책상을 본래 정해진 용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움직임으로 활용했다. 표정없던 학생들의 얼굴에서 눈빛이 살아나고 웃음과 재미가 가득해지기 시작했다. 교실문을 열어 젖히고 복도를 지나 계단을 네발걷기로 내려가고, 미끄럼틀처럼 난간 위에 앉아 쭉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섭이라는 친구는 신이 났는지 원숭이 흉내를 내며 계단을 내려왔고 그걸 본 다른 친구들은 미친듯이 웃으며 뒤따라왔다. 자유롭게 이곳저곳 움직이기 시작하자 무표정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 사람 냄새 풀풀 풍기는 아이들을 보며, 이 친구들과 함께할 시간들이 그리 나쁘지 않겠구나 싶었다. 


우리는 1층 창문으로 언더바(Underbar) 기술로 몸을 통과시키는 연습도 하고, 운동장 스탠드에 있는 벽을 오르고, 화단 사이를 훌쩍 뛰어넘었으며, 스탠드 기둥을 양손으로 잡아 360도로 몸을 회전시켰다. 사일런스 파쿠르 시간이었기에 나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시범과 눈빛, 손짓만으로 그들을 인도했다. 한동안 성인들을 대상으로 파쿠르를 지도해 온 입장에서 그들의 몸은 매우 날렵하고, 부드러웠다. 파쿠르를 시작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학교 뒷편의 원형 공터에 다 다르자 사일런스 파쿠르를 마무리하고, 기본적인 착지와 점프를 연습하고 2인1조로 파트너와 함께하는 움직임 놀이를 진행했다. 움직임 놀이를 따라하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흥미가 떨어져 보였다. 놀이 형식보다는 ‘기술’ 자체에 관심을 보였다. 운동습관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일반성인들은 몸을 기술에 끼워맞춰야만 하는 상황에서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움직임 놀이 형식을 더 좋아하는데 이들은 기술이 제시하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싶어했다. 학생들의 관심분야를 빠르게 읽어낸 뒤 움직임 놀이를 마무리하고, 운동장 철봉으로 데려가 팔힘으로 한번에 철봉 위로 몸을 들어올리는 머슬업(Muscle up), 철봉에 매달려 스윙으로 얻은 탄성으로 건너편에 착지하는 라쉬(Lache)를 지도했다. 이섭이는 평소 철봉을 연습했는지 머슬업을 곧 잘 따라했지만, 두려움으로 인해 라쉬를 어려워했다. 상현이, 종우가 라쉬를 쉽게 성공하자 오기가 생겼는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했다. 저 멀리 학교 구령대에서 장우정 선생님이 구경하시다가 마실 물을 가져왔다. 파쿠르가 확실히 힘들었는지 학생들은 물을 받자마자 마셨다. 나는 즉흥적으로 보틀 플립(Bottle Flip, 물병 세우기 놀이)을 제안했고, 실패한 횟수 만큼 철봉 턱걸이를 실시하기로 했다. 이섭이는 6회, 종우는 3회, 상현이는 16회의 턱걸이를 수행했다. 생각보다 물병 세우기를 잘해서 놀랐다. 최소 30회 이상 실패할 것으로 예상하고, 턱걸이로 함께 훈련하는 괴로움을 맛보기를 바랬는데 말이다. 상현이는 턱걸이가 더이상 올라가지지 않을 때, 발을 보조해주자 16회를 거뜬히 채웠다. 


2시간이 다 되어가자 정리운동으로 벤치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한 명씩 소감을 나누었다. ‘힘들다.’ ‘재미있었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등의 소감으로 미루어보건대 다음 수업에 결석하는 학생은 없을 듯 하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이섭이와 종우는 중학교 3학년, 상현이가 2학년인데 수업 중에 그들 나름의 위계구조가 선명하게 보였다. 사회에 나가면 1년 차이는 우습지만, 남자 중학생의 세계에서 나이차이 1년은 하늘과 땅 차이인가 보다. 


子曰(자왈) 衆(중)이 惡之(오지)라도 必察焉(필찰언)하며 衆(중)이 好之(호지)라도 必察焉(필찰언)이니라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여러 사람들이 그를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살펴보며, 여러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한다.” - <논어>


지난 금토일, 3일 동안 국제 공인 파쿠르 지도자 자격과정을 지도하느라 피로도가 높았다. 월요일이 되어도 쉬고 싶어 늦장을 부리다 KTX 예매 티켓을 여러 번 뒤로 미루었다. 오후 1시 30분. 파쿠르 수업이 시작되기 5분 전, 다행히 2층 과학실에 도착했다. 


학생들이 앉아있길 바란 것은 지나친 기대였을까? 아무도 없는 캄캄한 과학실 불을 켜고 들어가 앉았다. 10분, 15분이 지나도 학생들이 보이지 않을 때, 학생주임이 오셔서 아이들이 상담받느라 늦어진다 전달받았다. 상현이가 먼저 도착했다. 무언가 시무룩하고 무기력해 보이는 그의 표정을 보자 오늘 하루 어땠는지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아무것도 안 했어요." 나는 순수하게 감탄하며 화답했다. "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인데 대단해!"


이 글을 쓰며 돌이켜보건대 항상 바삐 무언가를 해야 불안하지 않은 현대인들을 기준으로 했을 때, 아무것도 안 하기란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상현이가 아무것도 안 한다는 의미로 말한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쓸데없이 낭비해서 어떤 성취감도, 즐거움도 없는 단조로운 하루였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상현이와 이야기 나누고 있을 때, 드디어 모든 학생들이 과학실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지난 시간에 결석했던 새로운 얼굴, 종현이도 왔다. 첫 등장부터 소란스레 까불까불한 종현이를 보며 '오늘도 내가 아이들과 파쿠르 수업을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잠깐 들었다. 딱딱한 과학실이 갑자기 답답해졌다. 나는 아이들에게 외쳤다. "자! 이제 다 모였으니 바로 밖에 나가 파쿠르를 시작해 봅시다! 따라오세요!" 


과학실에서 나서자마자 2층 창문이 보였다. 아이들이 "2층에서 뛰어내릴 수 있을까?" "가능할 것 같은데?"라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나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오케이! 제가 먼저 시범을 보일 테니 같이 따라 내려오세요." 


나는 창문을 열고, 난간을 넘어 1층 현관문 천장 위로 사뿐히 착지했다. 천장 가운데는 철판으로 덮여있었는데 가운데가 움푹 찌그러져 있었다. "자! 난간 넘어뛰어내리지 마시고 발 하나씩 천천히 중앙 말고 바깥쪽 철판에 디뎌서 내려오세요."라고 전달했다. 이후 클라임-업(Climb up) 기술을 역순으로 천장 모서리에 매달린 뒤 지면에 가볍게 착지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우와! 하며 탄성을 내질렀고, 너도나도 해보자며 한 명씩 내려오기 시작했다. 날쌘돌이 2명은 금세 내려왔지만 철판에 매달려도 여전히 바닥 높이가 높았는지 나머지 두 친구는 겁먹고서는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복도를 지나던 선생님이 위험하다며 제재했지만 아이들이 파쿠르 수업이라며 해명했다. 선생님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가볍게 인사했다. 코치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선생님은 자기 갈 길을 갔다. 얼마 안 있어 교감 선생님도 오셨는데 파쿠르 수업인 것을 확인하고는 별다른 제재 없이 지나가셨다. 내심 학교에서 안전 문제로 한 소리를 하거나 제재를 가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쿨하게 지나가는 것을 보자 학교와 선생님들이 나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나에게 안전에 대한 책임이 막중하리라. 


2층 창문에서 밖으로 나온 우리는 가볍게 조깅으로 준비운동하러 학교 뒤편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동그란 원으로 모인 뒤 간단한 가동성 운동, 근력 운동을 했다. 준비운동하면서 아이들을 관찰한 바, 말로만 설명, 지시하면 눈치만 보고 따라 하지 않는데 내가 직접 시범 보이고 움직이면 귀찮은 표정이지만 내색 없이 곧잘 따라 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이 내뱉은 말을 몸으로 보여줄 수 있는 선생님을 원한다. 팔굽혀펴기를 최대한 천천히 내려가고, 오래 버틴 뒤 다시 올라오는 것을 3회 반복하는데 여기저기서 괴롭다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즐거운 순간이다. 외부인이 보기에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나도 동일하게 느낄 수 있어서 즐거운 것이다.


준비운동을 마무리하고 바로 근처에 주차 방지턱을 활용해서 제자리 점프 후 얇은 방지턱 위로 앞꿈치를 착지하는 프리시전 점프(Precision Jump)를 연습했다. 두 친구는 슬리퍼를 신고 왔는데도 불구하고 곧잘 착지에 적응했다. 이어서 연속 점프로 난이도를 올렸는데 상현이는 슬리퍼를 신고 불안한 착지를 이어갔지만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표정으로 점프를 반복했다. 이럴 때일수록 코치로서 만감이 교차한다. 학생의 심리적 성장과 즐거움을 생각한다면 점프를 격려하겠지만, 안전 측면에서는 불안한 착지가 관찰되면 멈추고 교정작업을 지시해야만 한다. 나는 점프를 격려하는 동시에 앞꿈치 착지 기술을 피드백했다. 물론 상현이가 제대로 듣고 점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반복된 연습과 피드백 안에서 조금씩 발 배치가 개선되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코치 혹은 학생이 자주 실수하는 것 중의 하나는 움직임을 기계적으로 보고 발목 각도, 무릎 각도, 허리 높낮이 등을 틀에 끼워 맞추려 하는 오류다. 


또한 파쿠르 같은 기능적인 움직임을 연습하면서 보디빌딩 관점으로 "이거 하려면 어느 근육이 발달해요?" "몸 좋아지나요?"를 묻는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자연스러운 움직임에서는 멀어진다.


여기서 장자의 마제(馬蹄) 편을 다시 한번 들추어 볼 필요가 있다. 마제는 말굽이라는 말인데, 장자는 마제 편에서 백락과 명마를 알아보는 인간의 시선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말은 굽으로 서리나 눈을 밟을 수 있고 털로 바람과 추위를 막을 수 있다. 풀을 뜯고 물을 마시며 발을 들고 뛰어다닌다. 이것이 말의 참된 본성이니 비록 호화로운 저택이 있다 하더라도 쓸 곳이 없다. 그런데 백락(伯樂)이 "나는 말을 잘 다룬다."라고 해서 털을 태우고 굽을 깎고 낙인을 찍으며 연이어 굴레를 씌우고 다리를 묶으며 구유와 마판에 줄줄이 묶어 놓음에 이르러 죽는 말이 열에 두세 마리에 이른다"


 이에 빗대어 이야기하자면, 사람들도 타고난 몸과 기능이 있고, 본성대로 움직이고 파쿠르를 할 수 있는데 백락과 같은 관점이 인위적인 규칙으로 이끌어 자연스러운 움직임에서 멀어지게 한다. 


상현이를 비롯한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내가 제공하는 피드백 중에 백락과 같은 말들은 걸러 들었다. 자신의 움직임 패턴에 방해되는 피드백은 적용하지 않았고, 되려 자신이 즐거워서 스스로 반복하고 연습했다. 이를 관찰하며, 오히려 코치로서 내가 사용하는 피드백과 큐잉(Cueing, 신호)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었다. 같은 기술을 반복하면서 흥미가 떨어지는 조짐이 보이자 나는 무리를 이끌고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턴 볼트(Turn vault)를 지도하러 학교 급식실 앞으로 이동했다. 턴 볼트는 실제 위급한 상황이나 높은 곳에서 안전하게 내려갈 때 필수적으로 활용되는 기술로, 난간을 잡고 몸을 180도 회전시켜 반대편에 매달리는 기술이다. 야외에 있는 급식실로 내려가는 계단에 난간에서 턴 볼트를 세 가지 구분 동작으로 나누어 지도했다. 금세 적응한 아이들은 진도에 맞춰 턴 볼트 3단계까지 완수했다.


종현이는 턴 볼트를 연습하다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바로 옆에 있는 접지력 좋아 보이는 벽으로 월런(Wall run)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월런은 달려서 얻은 추진력으로 벽을 강하게 발로 디뎌 몸을 높이 상승시킨 뒤, 벽 끝을 손으로 잡고 올라가는 벽 넘기 기술이다. 나는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종현이가 월런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월런을 시범 보여주고, 알려주었다. 코칭에 입문했던 20살 때였다면 수업계획 밖에 행동들을 규제하겠지만, 지금의 나는 수업 주제만 맥락을 유지하고 계획은 언제든지 상황과 참여자에 따라 변경한다. 그래야 학생들의 호기심을 기초로 흥미로운 수업을 이어갈 수 있고, '코칭' 철학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코칭이란, 코치가 원하는 것을 참여자에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가 원하는 것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평적 관계의 동반자다.


체육 수업을 듣던 다른 반 학생들이 높은 벽으로 월런 하는 누리 봄 교실 아이들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들의 표정은 각양각색이었다. 관종을 보는 시선, 나도 해보고 싶다는 표정, 저게 가능한 일인지 놀라는 시선,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 등 그중에 한 남학생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벽을 향해 월런을 시도했다. 운동을 좀 하던 친구였는지 벽을 발로 딛고 몸을 위로 띄워 높은 난간을 잡아챘다. 자신도 이 도전을 해낼 줄 몰랐다는 표정으로 놀라워하는 동시에 성취감으로 가득했다. 그것을 본 이섭이, 상현이, 종현이도 나도 질세라 월런 연습을 열정적으로 수행했다.


얼마 후, 자신이 올라갈 수 있는 벽 높이 한계치에 다 다랐는지 조금씩 지쳐가는 조짐이 보이자 바로 다음 도전과제를 제시했다. 도전과제는 방금 배웠던 턴 볼트 기술을 활용해서 2층에서 아래층으로 뛰어내리는 도전이었다. 도전과제 설정은 안전을 위해 아이들의 체력수준, 기술 수준, 컨디션 체크, 사전 장애물 체크를 반영해야 한다. 아이들은 이게 가능한 도전이냐며 의구심반, 호기심 반을 드러냈다. 나는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기거나 의심할 때, 내가 직접 나서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습성이 있다. 나로 말미암아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인식이 전환될 때, 나 자신과 세상이 살아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2층 난간을 움켜쥔 나는 망설임 없이 건너편 난간으로 몸을 반바퀴 돌아 매달리고, 아래층으로 뛰어내려 사뿐히 착지했다. 그 순간 우레와 같은 탄성과 함께 아이들이 표정에서 의심이 사라지고 너도나도 해보겠다며 의지로 가득 찼다. 조심스럽게 한 명씩 난간에 매달린 뒤, 착지할 곳을 보고 앞꿈치로 지면에 착지하면서 양손바닥으로 잔여 충격을 분산시켰다. 매달려 있는 동안 아이들은 강력한 두려움을 느꼈지만, 타고난 호기심과 모험심이 두려움을 뒤로 밀어내어 뛰어내릴 수 있는 의지를 제공했다. 착지했을 때, 터져 나오는 환호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이 가득했다.


한 사람당 3회씩 도전과제를 연습한 뒤, 우리는 급식실 벽면 파이프를 타고 옥상으로 이동했다. 옥상에 다 다르자 허리 높이 장애물이 연속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이때다 싶어 양팔 사이로 다리를 통과시켜 장애물을 넘는 콩 볼트(Kong vault) 기술을 시범 보이고 지도했다. 성인들을 지도할 때면 이미 좌식생활과 움직임 부족으로 고관절, 발목 가동 범위와 힘, 두려움으로 콩 볼트를 완성하기까지 최소 1개월 이상 소요되는 일인데 아이들은 보자마자 쉽게 장애물을 넘어갔다. 신나게 옥상 장애물을 극복하고, 더 높은 옥상으로 올라갔다. 낭떠러지를 옆에 두고 제자리 점프로 균형도 잡고, 암벽등반처럼 벽에 튀어나온 사물들과 창문 문틀을 잡고 옆으로 이동했다. 옥상에서 내려오는 것도 신나는 모험의 연속이었다. 오늘 배운 턴 볼트 기술을 이용해 벽에 매달려 1층 지상으로 착지했고, 그 앞에 난간을 고양이처럼 네발로 기어갔다. 일렬로 나열되어 있는 벤치를 볼트 기술로 극복하고, 단체로 시간 기록을 재서 함께 협심해서 더 빠르게 장애물을 극복하는 스피드 코스 시간도 가졌다.


정리운동은 2인 1조로 가위바위보 해서 다리 찢기를 했다. 점점 더 다리가 벌어질수록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려오자 분위기가 왁자지껄해졌다. 정리운동을 마치고 원으로 모여 앉아 소감을 나누었다. 지난번 수업 때는 "재미있었어요."라는 한 문장밖에 없었는데 오늘은 "성취감이 대단했어요." "두려움 덕분에 제 자신을 만났어요." 등 표현이 풍부해졌다. 본래 누리 봄 교실 멤버가 아닌 다른 반 학생도 파쿠르가 너무 재미있었는지 앞으로 월요일마다 파쿠르 수업에 나오겠다고 다짐했다.


 어쩌면 이 아이들은 도덕 선생님, 소년교도소, 법적 처벌, 징계보다도 놀이, 자유로움, 모험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학교와 가정, 사회에 대한 분노를 파쿠르를 통해 성장, 변화로 승화시킬 수 있을까? 


 적어도 아이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의심에서 신뢰로 바뀐 것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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