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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쿠르 코치 김지호 Oct 21. 2023

실존이 사물에 앞선다


 무릇 사람들은 양계장(養鷄場)의 닭을 보고 불쌍하다 느끼지만, 도시야말로 양인장(養人場)이다. 인간의 이기심이 지구 생명 종(種)의 다양성을 파괴시켰듯이, 효율적인 도시 공간을 구성하는 도로, 아파트, 에스컬레이터, 난간, 표지판, 기호들은 인간의 움직임의 다양성을 획일화시켰다. 현대인의 24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움직임을 관찰해보면 눕기, 걷기, 앉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말 타고 활을 쏘며 나무를 오르던, 근대 이전의 삶의 방식과 비교했을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움직임의 다양성을 상실했는가. 


그러나 나는 근대 이전의 세계로 복귀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근대 이전의 인간이 생존을 위해 자연을 극복하고 문명을 건설했다면, 현대인의 생존과제는 지금의 문명을 극복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파쿠르(Parkour)가 있다. 파쿠르는 통제된 도시 공간의 구조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움직임을 회복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준다. 자신을 구조적으로 제약했던 걸림돌이 달리기, 매달리기, 구르기, 균형잡기, 오르기, 기어가기, 도약하기 등 자유로운 움직임과 만났을 때, 자신의 한계를 넘어 성장할 수 있는 디딤돌로 재탄생한다. 


의자는 앉기 위해 태어났지만, 다차원의 움직임을 연결하는 도구가 된다. 난간은 경계를 구분하기 위해 태어났지만, 경계 넘나드는 문(門)이 된다. 벽은 가로막기 위해 태어났지만, 중력을 거스르는 발판이 된다. 파쿠르는 사물의 딱딱했던 존재근거를 무너뜨리고, 움직임과의 상호작용으로 사물에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그것은 비단 사물뿐만 아니라 구조적으로 무기력한 현대인의 정체성에 역동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김누리 교수의 <우리는 절망할 권리가 없다>를 인용하자면,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진리가 사라진 현대인은 만성적인 무기력함, 그리고 분명한 ‘사실’조차 여러 단편적인 의견으로 깔아버린다. 이제는 무엇이 진짜, 가짜인지 구분이 어려워졌다. 거짓말과 허상이 진실의 탈을 쓰고 사람들 앞에서 숭배 받는다. 허무주의(Nihilism)는 모든 절대성과 영원성을 해체시켰고, 그러한 세계에서 우리는 끝없이 불안하다. 그 어떤것도 확실하지 않기에 의존할 곳이 없다. 그러나 만약 허무한 세계에서 단 한번이라도 스스로 자신의 의미를 창조해본 경험이 있다면, 자신을 신뢰할 수 있는 힘은 보상도 없고, 쓸모가 정해지지 않은 행위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인간의 탄생은 그 자체로 산 정상에 우뚝 선 기적이다. 산 정상 위에 우뚝 선 인간은 드넓은 바다와 끝없는 하늘, 한 눈에 담기지 않는 그 화폭에 스며들어 자신을 둘러싼 아름다운 것들에 귀를 기울인다. 그렇게 귀를 기울이다보면 어느새 자신은 불안해진다. 확실한 자신을 찾아 주변을 기웃거리지만 광활한 세상을 한 눈에 담기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눈을 한 곳에 고정하고, 그곳으로 깊이 들어가보지만, 그것 역시 자신을 발견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밝은 태양과 은은한 달, 반짝이는 별무리의 유혹들을 뿌리치고 그 자신 스스로가 빛나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전체가 보인다. 산 정상에 꼿꼿이 선 두발을 보아라. 자신이 서있는 곳으로부터 하늘과 땅 사이, 바다와 산 사이, 자연과 문명 사이가 교차한다. 그 교차점에서 자신을 수식하던 모든 것들을 해체하고 해체했을 때, 결국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거기서 밥이나와 빵이나와?" "쓸데없이 편한 길을 두고 왜 사서 고생이냐?" 딩신이 이런 말을 듣고 있다면 기뻐하라. 당신은 올바른 길 위에 선 상태다.



***
한 빌딩 안에서 은행원이 파쿠르 수련자를 보며 말했다. "이제껏 저축해둔 돈이 있소?" 


파쿠르 수련자가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러자 은행원이 말했다. "당신은 인생의 절반을 낭비했구려." 


파쿠르 수련자는 걱정으로 마음이 아팠지만 그 순간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때 엄청난 폭발과 함께 빌딩이 화염에 휩싸였다. 파쿠르 수련자는 큰 소리로 은행원에게 말했다. "뛰어내릴 줄 아시오?"  


은행원이 말했다. "못하오." 


그러자 파쿠르 수련자가 말했다. "당신은 인생의 절반을 낭비했구려. 지금 나가는 길이 막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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