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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투이스트 해빗 Jul 30. 2020

타투이스트되는법 10. 타투이스트의 이미지

타투이스트는 연예인이나 공인은 아니지만 이미지가 중요한 직업 중 하나다. 타투는 단순히 물건을 가게에서 구입하는 행위가 아닌, 사람이 만들어내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다. 먼 훗날 기계나 인공지능이 타투를 새겨주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사람이 표현해내는 감성은 따라오기 힘들 것이다. 컴퓨터로 그린 듯한 반듯하고 깔끔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손맛이 있는 그림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사람이 부르는 노래, 사람이 움직이는 스포츠 등 타투 또한 사람이 행하는 것을 사람이 누리는 일이기 때문에 타투이스트의 이미지가 중요하다.

타투이스트는 기본적으로 타투 실력을 갖추어야 하지만 평판이나 인지도에 따라 작업량이 바뀔 수 있다. 좋은 이미지는 타투이스트의 작업량을 늘려줄 수 있으며 결과물에도 영향을 미친다. 실력이 뛰어나지만 평판이 좋지 않다면 상대적으로 작업량이 많지 않을 것이고 그로 인해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기회가 적어진다. 기술적으로 조금 부족하더라도 작업량이 많다면 그만큼 실력은 빠르게 성장할 수 있고. 포트폴리오도 늘어나게 된다.

우리나라나 대부분의 아시아 지역에서는 감정 표현을 아끼는 경향이 있다. 행동이나 말로 표현이 많지 않고 수줍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작업이 끝나면 타투가 정말 마음에 드는지 아닌지도 알아채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집에 돌아가서야 메신저나 SNS 상에서 고마움과 기쁨을 표현해서 뒤늦게 알게 되는 것은 다행인 편이다.

반면 유럽이나 북미 쪽에서는 좀 더 솔직한 표현을 현장에서 느낀 일이 많다. "이 타투가 정말 내 몸에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내 인생 최고의 타투에요! 고마워요!" 표현에 적극적이고 새로 완성된 타투를 보며 아이처럼 좋아하는 얼굴을 보노라면 타투이스트로서도 굉장한 성취감이 있다.

어떤 손님들은 그 자리에서 행복하고 고마움의 표현을 많이 하고도 메신저로 장문의 후기를 보내주는 경우도 있었다. 아마 말로는, 그러니까 영어로는 충분히 서로 표현하고 알아듣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글로 보낸 피드백이었다. 본인보다 미리 샵에 도착해서 작업의 준비를 했고, 편하고 위생적인 작업 환경, 아픈 나를 위해 배려했던 말과 행동들, 디자인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드는지 등등 여러 방면에서 좋았던 점을 구체적으로 보내주었다.

그 이후로 손님들이 여기저기 자랑을 하고 다녔는지 예약이 늘기 시작했다. 그전에도 손님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는 노력은 했었지만 해외라서 더욱 확실한 피드백과 타투이스트의 이미지에서 오는 장점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어느 분야든지 해외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한국 스타일이 각광받는 것 같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열심히 최선을 다한 것인데, 돌아오는 리액션은 그 이상이었다.

이미지에 대한 느낌을 반대의 사례에서 받았던 때도 있었다. 한 번은 같이 일하던 타투이스트 친구가 출근을 하지 않았다. 그 친구의 손님은 아주 먼 곳에서 예약을 하고 왔는데 친구는 전 날 과음을 해서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오너와 매니저는 실망한 손님을 위로하고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해빗, 만약 네가 사바도에게 예약을 하고 비행기를 타고 갔는데 예약이 취소됐다고 생각해봐. 네가 아무리 그분 스타일을 좋아해도 너는 엄청 실망할 거고 다시는 타투를 받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지? 그래서 모든 약속을 지키는 게 중요한 거야. 너는 몇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와서도 항상 약속을 지키고 성실하니까 손님을 실망시킬 일은 없을 것 같아." 반사 이익이라고 해야 할까? 같은 샵에서 일하는 친구가 이런저런 문제를 만들수록 상대적으로 더 좋은 이미지가 생겼던 것 같다. 비슷한 장르의 다른 타투이스트가 있다면 그쪽으로 가는 손님들도 종종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타투이스트에게는 수많은 작업 중 하나일 수 있고 단지 일일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손님은 타투 받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설레는 시간을 보냈을 수도, 더 열심히 돈을 모아왔을 수도 있다. '어쩌다 한 번은 괜찮겠지' 이런 마인드를 가지면 안 된다. 항상 꾸준히 변치 않는 모습으로 모든 약속을 지켜나갈 때 성실한 타투이스트의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작업 하나하나가 중요했던 때를 결코 잊으면 안 되는 이유이다.

일반 직장인들도 지각이나 결근이 잦아지면 사내 이미지가 안 좋아지고 심하면 권고사직을 당할 수도 있다. 타투이스트의 좋지 못한 이미지로 인해 떠나가는 손님이 많다면 그게 바로 권고사직이다. 자유로운 직업이지만 최소한 지켜야 할 룰이 있는 것이다. 그 규칙을 지켜나가는 것으로 곧 타투이스트의 기본 이미지가 형성된다.

사실 이 장에서 강조하고 싶은 내용은 따로 있다. 바로 타투이스트 자신을 브랜드화하라는 것이다. 나는 지인의 의류 브랜드와 동일한 이름을 타투이스트 명으로 지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이미지에 강점이 있었다. 후에 마케팅 교육을 들으면서 알게 된 내용이지만 나는 운 좋게도 자연스럽게 그런 부분이 만들어져 있었다.

브랜드가 있었기 때문에 내 활동명이 로고로 만들어져 있었고 의류 제품도 있었다. 타투 머신도 코일 부분에 내 이름을 커스텀 해서 만든 것을 사용했다. 해외 친구들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해빗은 옷도 해빗이고 머신도 해빗이고 모든 게 다 해빗이야!" 나의 모든 물건에는 해빗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통일성 있는 로고와 이미지를 사용했다.

이런 부분들은 의도치 않게 `이미지 포지셔닝(image positioning)` 전략이 나타난 효과였다. 이미지 포지셔닝이란 소비자의 마음속에 자사의 제품이 유리한 위치에 있게끔 노력하는 과정을 말한다. 예전에 한 대기업에서 모든 건물 내외부 간판과 홍보물, 제품 등의 로고를 대대적으로 변경한 적이 있다. 이 교체 비용에만 수백억이 들어갔다고 하는데 왜 그런 계획을 감행했을까? 혁신된 이미지를 선보이고 차별화된 브랜드 정체성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큰 투자를 감행할 만큼 이미지란 중요한 것이다.

타투이스트는 자신을 알려야 손님을 받고 작업을 할 수 있다. 그림과 타투 실력은 기본이고 그 이후는 적절한 마케팅이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실력은 뛰어나지만 자신을 알리는데 재주가 없고, 어떤 사람은 실력보다 마케팅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도 있다. 보통 이들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서로 욕하기 바쁘다. 그 시간에 나의 부족함을 채울 노력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 실력과 이미지는 어느 한쪽에만 치우쳐 있으면 효용성이 없다. 물건이 아무리 좋아도 포장이 너무 눈에 안 띄면 사람들은 좋은 제품인지 알 수 없다. 반대로 겉포장은 그럴싸한데 막상 개봉해보니 제품이 별로면 실망을 하게 된다. 타투이스트로서 기본 소양을 쌓되 여러 방면에서 균형 있는 발전을 해야 한다.

나는 상어와 한국적인 올드스쿨 타투, 두 가지를 시그니처(signature)`로 작업해왔다. 다른 소재의 그림도 많이 그렸으므로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사람들의 눈에 띈 디자인들이 있었고 그런 작업들이 많이 들어왔다. 해외 타투 컨벤션에 나가기 시작하면서는 나의 시그니처로 아트워크도 많이 하고 타투 포트폴리오를 늘리려는 노력을 했다. 컨벤션에서는 수많은 타투이스트들이 있고 각자 개성이 강하고 뛰어난 사람들이 모인다. 그 안에서 1등이 되기란 하늘의 별 따기이다. 나는 `선택과 집중`의 방법을 사용했다. 모든 포트폴리오를 상어 타투로만 선별했고 도안도 전부 상어로만 준비를 한 것이다. 물론 타투 모델이 있는 경우에도 상어 타투로만 무대에 올렸다. 그 결과 나는 탑클래스는 아니어도 처음 만나는 누구나 나를 상어 타투 하는 타투이스트로 쉽게 기억을 했다.

이후로 `샤크메이커(sharkmaker)`라는 닉네임을 얻기도 했다. 한 외국인 타투이스트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네가 상어로만 타투 하는 게 아주 신기한 것 같아. 그런데 한국의 타투이스트 중에는 고양이만 타투 하는 사람도 있고 한 가지 소재로만 타투 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무슨 이유라도 있어?" 그 당시에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몰랐지만 나는 내가 느끼고 해 온 대로 말해주었다. "그 소재를 좋아서 하는 것도 있겠지만 아마 처음 보는 타투이스트나 손님에게 쉽게 각인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돌아온 대답은 이거였다.

"It makes sense!"

* 타투이스트의 기본 이미지는 성실함과 자기관리, 약속을 잘 지키는 것에서 시작된다.

* 타투이스트 자신을 브랜드화하자. 브랜드 이미지 포지셔닝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나라는 타투이스트를 각인시키며 그것이 곧 작업으로 이어진다.

* 선택과 집중을 통해 타투이스트의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