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이스트가 되는 방법 제1부 4.
4.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타투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기 전 온 오프라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타투를 받는 사람들이나 타투이스트들 모두 각양각색이었다. 그만큼 타투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고 그 취향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들이 타투를 받는 이유와 타투이스트가 되기 위해 마음먹은 계기, 입문하는 방식도 천차만별이었다.
나는 스스로 타투이스트가 될 수 있는 자질을 시험하기 위해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기술적인 부분이나 디자인 실력은 노력과 시간이 해결해 주리란 것은 알고 있었다. 모든 일이 원리는 비슷한 것이니까.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얼마나 지속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당장은 재밌고 좋아서 시간을 많이 들이지만 취미와 일은 다른 것이다.
보통 직장인이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에 퇴근한다면 그림도 일로써 그만큼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주변의 타투이스트들 중에 예약이 있을 때만 도안을 그리는 사람은 게을러 보였다. 경력이 많거나 천재성이 있는 사람, 예약 손님이 많은 사람에게는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입문자로서 경력도 없거니와 천재도 아니고 교육을 받은 적도 없었다. 남들보다 시간을 들여 노력하고 연구하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좋은 영향을 받거나 타산지석 삼을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배울 점은 있으니까. 타투 애호가라면 어떤 타투를 선호하는지, 언제 타투를 받으러 가고 얼마나 지출을 하는지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지인인 타투이스트들은 평소에 어떻게 생활하는지, 어떻게 자신을 알리고 상담하는지 등 타투 업계의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런 주변 환경은 모두 타투를 받으러 다니면서 자연스레 형성된 것이다. 타투를 좋아해서 받다 보니 타투샵이나 타투이스트, 타투 애호가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타투를 받는 노하우나 관리 방법 등의 지식도 자연히 알게 되었다.
요즘에는 타투가 하나도 없는데 직업적으로 타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다. 타투 없는 사람이 타투를 배우고 작업하는 게 잘못되거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같은 조건이라면 타투가 있는 사람의 이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타투를 좋아하는 지인이 많다면 작업을 시작했을 때 손님으로 오는 경우도 많다. 초보에게 훌륭한 타투 작업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그들에게는 나의 초창기 타투를 받는다는 의미가 컸다. 내 작업의 숙련도보다는 나를 아는 그 자체로 타투를 받는 것이다. 초반 작업을 받아주는 지인들은 입문자에게 상당히 중요하다.
위생이나 타투 용품 등에 대한 정보는 알음알음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보다 전문적인 배움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작업할 공간이 있어야 했다. 평소 좋아하던 스타일의 여러 타투이스트에게 문의를 했다. 그중 조건이 맞는 곳에서 수강을 시작하게 되었다.
선생님을 선택할 때는 그 사람의 디자인이나 포트폴리오 등을 우선적으로 본다. 내가 추구하는 스타일과 접합점이 있어야 더 잘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창의적이거나 나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정밀 묘사를 전문으로 하거나 재패니즈 타투를 하는 사람을 찾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다만 수강을 한 달 정도 받다 보니 성격이 안 맞는 게 문제였다. 나는 남의 말을 잘 듣는 편도 아니고 완벽주의 성향이 걸림돌이었다.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 최대한 맞춰가려고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샵이 항상 오픈되어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수강 일정에 맞추기 어려웠고 집과의 거리도 좀 있었다. 작업을 시작한 뒤에도 샵의 오픈 시간과 내 손님과의 예약 시간 양쪽을 조율하는 것이 힘들었다.
게다가 샵이 이전하게 되면서 공백기가 생기게 되었다. 한창 열정적인 시기에 예약을 모두 취소해야 하는 게 큰 불만이었다. 작업을 하면 여러 데이터와 피드백을 바탕으로 다음 작업을 준비해왔는 데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이사를 하게 되면 타투 베드와 조명, 작업대 등의 가구와 모든 타투 용품을 내가 구비해야 한다는 조건도 붙었다.
불만이 쌓인 상태에서 비용적인 부담까지 가중되었기 때문에 수강을 그만두는 선택이 최선이었다. 차라리 그 돈으로 내가 작업실을 차려서 독학으로 공부를 마저 이어나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주의적이고 독립성이 강한 나에게는 오히려 좋은 선택이었다.
타투를 시작하려면 돈, 시간, 열정 등이 필요하다.
타투를 배우는데는 수강비가 필요하다. 차비와 식사비 등 기본적인 생활비에 여유가 있는 게 좋다. 경제적으로 너무 여유가 없으면 공부에 집중하기 좋지 않다. 그리고 도안을 그리는데 필요한 용품들도 구비해야 한다. 나아가서 타투 용품들도 구입해야 한다. 초반에는 샵이나 학원에서 제공해 주는 물품들이 있다. 하지만 도구라는 것은 내 손에 맞는 것이 있고 취향이라는 게 있다. 수채화 물감이나 마카를 쓸 수도 있고 아이패드 같은 전자제품을 쓸 수도 있다. 또 브랜드도 다양하다. 타투 용품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도구를 쓴다고 무조건 실력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 맞는 도구는 효율성을 높여주고 나의 색깔이 나오게 해준다.
나는 거의 독학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타투샵에 놀러 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물어보고 허락을 구한 뒤 테스트해보기도 했다. 문구점 등에 가서 이것저것 구입해서 다 써보고 나에게 맞는 도구를 찾는, 다소 무식한 방법을 썼다. 비용적인 낭비가 발생하긴 했지만 다양한 도구의 특성을 알 수 있었고 이 과정은 타투 용품을 쓰는 데에도 응용되었다.
타투는 시간도 많이 소요된다. 타투를 시작하려는 사람은 학생일 수도 있고 직장인일 수도 있다. 무직에서 시작한다면 시간적인 여유는 있겠지만 일을 마치고 공부하는 것은 많은 체력을 요구한다. 수강을 받는 등의 시간뿐 아니라 혼자 공부하고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많을수록 좋다. 시간과 돈에 쫓겨서는 제대로 공부할 수 없다.
시작했으면 열정적으로 배우는 자세도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봐왔다. `돈만 내고 배우러 가면 다 알아서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거고 내 인생이고 나의 미래를 위한 일이다. 타인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전적으로 기대서는 안된다. 배운 것은 익히려는 노력을 하고 그 이상의 것을 알기 위해 질문해야 한다. 혼자 탐구하는 능동성이 필요하다.
누구나 처음부터 능숙할 수는 없지만 결국에는 누구나 전문가가 돼야 한다. 타투이스트로 지낸 시간만큼의 실력과 경험이 비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타투를 시작하려고 알아보거나 문의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있다. 심지어 밥 한 끼 먹을 때도 맛집인지 알아보고, 가는 방법을 검색하고 들어가서도 메뉴를 보고 고민한다. 타투는 한 끼 식사의 만족 같은 게 아니다. 시간과 돈이라는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나의 몸과 남의 몸에 흔적을 남기는 책임감이 수반된다.
타투를 시작했을 때의 미래를 그려보고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 예상을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