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이스트가 되는 방법 제1부 5.
5. 시작하기 좋은 시점
나의 선택을 어디까지 확신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시작하기 위한 계획과 열정은 있었지만 그 이후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시간은 많았고 여유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벌어놓은 돈도 있었다. 열정은 그야말로 차고 넘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쉬운 것이 있다. 1년 후의 계획, 3년 후, 10년 후는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고 있을지는 그려보지 않은 것이다. 타투이스트가 된 이후에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해야 했고,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계획한다고 완벽하게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인생이지만 좀 더 나이와 경력이 있는 선배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나는 타투 이전에 많은 직업을 거쳐왔다. 수입은 거의 없었지만 춤을 추거나 음악도 했었고 전역 직후에는 보안 요원이나 프리랜서 경호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 전에는 쇼핑몰도 운영했었고 스쿠버 다이빙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모든 일이 내가 좋아서 시작한 것이었고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도달했던 것 같다. 하지만 늘 수입은 일정치 않았고 결국 그 불안 요인이 열정을 사그라들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일을 그만두면 관련되었던 사람들도 잘 안 만나고 모든 걸 정리하는 편이었다. 첫 타투 머신도 스쿠버 장비를 처분하고 구입했던 것이었다. 이런 방식으로는 타투이스트로 전업을 할 수는 없었다. 이미 나의 몸에 타투가 있고 남의 몸에도 타투를 새기고 있는데 다른 일처럼 그만둔다고 해서 타투를 지워버릴 순 없는 것이니까. 뭔가 스스로 책임감을 갖고 전념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필요했다.
결심을 하고 시작은 했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것부터 해결해야 했다. 타투는 고정 수입이 없기 때문에 여타 프리랜서나 자영업자처럼 불안정한 직업이다. 그래서 다니던 회사를 곧바로 그만둘 수는 없었고 가족에게 알리는 일이 남아 있었다.
나는 가족에게 타투이스트가 될 거라는 사실을 떳떳하게 알릴 수 있는 시점이 진정으로 타투이스트로서 시작이라고 스스로 정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명분이 있어야 했다. 취업을 할 때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거나, 투자를 받을 때 사업 계획서를 작성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었다. 타투는 흔하지 않은 직업이었고 부모님이 반대를 하거나 적어도 걱정을 끼쳐드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도안을 그리거나 작업을 했다. 주말에는 타투에만 전념할 수 있어서 좋았다. 도안이나 타투 작업 사진을 많이 만들고 회사 월급보다 타투로 더 버는 것을 목표로 했다. 친구도 안 만나고 좋아하던 술도 거의 마시지 않았다. 쉬는 날이 없이 반 년 넘게 일하니 코피가 터지는 날도 있었다. 심지어는 동창들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타투는 이미 내 생활의 일 순위가 되어있었다.
작업을 하다가 막히면 타투를 받으러 갔다. 독학에 있어 가장 좋은 배움은 타투를 받는 것이다. 작업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 과정을 눈으로 보고 배울 수 있다. 또 손님이기 때문에 질문을 하더라도 답변을 듣고 정보를 얻기 수월했다.
그러던 중 다리 전체, 소위 긴 다리 작업 손님이 생겼다. 꾸준히 작업하고 수입도 안정화되는 첫 지점이었다. 그렇더라도 가족에게 얼굴을 마주하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는 방법을 썼다. 최대한 나의 진심을 담아서. 그걸 읽으시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는 지금도 모르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그때 당시 회사 뒤쪽에 반지하 원룸을 구해서 작업을 했다. 시설이 열악하고 세탁기 둘 곳도 없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부모님 집에 가서 빨래를 해왔다. 집을 나와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항상 생각했다. 내 선택에 후회가 없고 가족과 주변 사람을 걱정시키지 않을 만큼 열심히 해서 성공을 해야겠다고.
타투이스트 활동명을 짓는 것도 타투이스트로 거듭나는 동기부여가 된다. 타투이스트로 활동을 시작할 때는 본명을 사용했었다. 이전의 타투이스트 선배들은 신고하거나 단속을 당하는 사례가 많아서인지 온라인 활동을 위해 대부분 별도의 활동명을 사용했다. 하지만 나는 본명을 걸고 타투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당시에는 오히려 이름 석 자를 쓰는 것이 더 특이했고 나름 희귀 성씨여서 겹치는 이름도 없을 것 같았다.
옷과 신발을 좋아해서 의류 관련 일을 하는 학창 시절부터 친한 형이 있었다. 처음부터 일이 잘 풀린 것은 아니었지만 항상 관심사는 옷이었다. 나는 끈기 있게 어떤 일에 머무르지 못하고 마음 가는 대로 전직을 했기 때문에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부러웠었다. 내가 타투 하던 당시 그 형이 한 도메스틱 브랜드를 만들었는데 그 이름이 `해비트(HAVIT)`였다. 그전까지는 활동명을 지을 생각이 없었지만 그 브랜드명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서 타투를 오랫동안 끈기 있게 해보자는 생각으로 허락을 구해 `해빗`이라는 타투이스트 명을 짓게 되었다.
보이는 곳에 타투를 받는 것도 좋은 동기부여를 준다. 지금이야 얼굴, 목, 손등 등 옷을 입어도 보이는 곳에 타투를 받는 사람들도 많지만 당시는 반팔 입었을 때 보이는 곳에 타투 하기도 부담이 되었던 때였다. 어깨부터 시작해 칠부가 되었고, 결국 손목까지 내릴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만큼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회사의 여름휴가 기간을 이용해서 다시 일본에 갈 계획을 세웠다. 내가 만난 타투이스트 중 모든 면에서 완벽했고 내 취향에 맞는 타투였기 때문에 언젠가 꼭 다시 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노출이 되는 곳에 타투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분이었다. 예약을 하고 그렇게 다시 한번 설레는 타투 여행이 시작되었다.
이 여행은 타투이스트로서 많은 경험과 배움이 있었다. 일단 팔은 타투를 받으면서 눈으로 볼 수 있는 부위여서 타투의 과정을 모두 볼 수 있었다. 모르고 볼 때와 공부를 하고 궁금한 점이 생겼을 때 보는 것은 얻어지는 것이 다르다. 또 한 분야에서 오랜 경력이 있는 분과의 대화는 많은 영감을 받는 데 충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