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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우 Jan 28. 2022

망각, 거룩한 메커니즘

자책과 자기모멸의 늪에서 탈출할


무언가를 시작하고 무언가를 해 볼 마음이 생기게 되는 중요한 동기에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작용한다. 사람으로 인해 입은 상처로 마음을 닫고 살았더라도 결국 사람으로 인해 다시 살아갈 마음이 생기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순리이다. 일상의 무기력이나 일에 대한 열정이 마음에 의한 것이라면 그 마음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으로 인해 놓게 되거나 다잡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사람에게 입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해야 한다고. 그 간단한 경구를 실행하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그 과정은 치열하다. 그 치유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나와 직면하고 얼마나 많은 나를 극복해야 하는지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감정은 누구를 미워하는 감정이 아닌 나를 미워하는 감정이다. 나 자신이 싫어지고 내가 미워서 견딜 수 없을 때는 어느 누구도 마음에 들일 수가 없다.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나 자신을 혼내주고 있는데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를 들일 수 있겠는가.

 

자책의 무게가 너무 커서, 나를 짓누르고 으깨버린 자아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저 먹고 마시고 배출하는 생리적 일 외에는 어떤 의미 있는 행동도 하지 않도록 명령한다. 아주 멍청하게 살아가게 만든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그 어떤 열망도 갖지 못하도록 한다. 그저 시간의 흐름 속에 나를 맡기게 한다.


그러는 동안 뇌는 청소를 한다. 망각이라는 메커니즘을 작동시킨다. 망각만이 살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뇌는 잘 아는 것이다. 어떤 일에 대한 자책, 상처를 주고받으며 찢긴 관계, 사람에게 품은 서운한 마음,.... 그런 모든 것들을 다 잊고 항상심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뇌는 청소를 한다. 그 청소를 끝내는 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다만, 청소 없이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나의 뇌는 매일 청소를 하고 있을 것이다. 자책이라는 감정을 설거지하고 자기모멸이라는 막을 걷어내는 작업을 끊임없이 하고 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공간이 생겼을 때 지시할 것이다. 이제 다시 천천히 움직이도록. 다시 사람들에게 다가가도록. 사람들을 향해 발을 내딛도록. 사람을 향해 다시 삶의 열정을 가져보도록. 무기력에서 벗어나도록. 다시 사람처럼 살도록.


아직도 청소할 것이 많은 것일까. 무기력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 일상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해가 바뀌었건만.....

남녘에 매화가 피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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