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우 Jan 20. 2022

뿌리의 일

그 굳건함에 대하여

지난여름, 잎이 노랗게 변해가는 금전수 가지를 잘라냈다. 금전수 번식시키는 법을 유튜브에서 본 뒤 따라한 것이다.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여러 개의 금전수로 늘릴 수 있다는 것에 마음이 혹 했었다. 발근제 없이 시도해 본 뿌리내리기는 더디기는 했지만 성공이었다.


금전수 잎을 따내 물이 담긴 그릇에 담가 두고 돌로 눌러 놓은 뒤, 뿌리내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참지 못 하고 몇 번이나 잎을 들춰보곤 했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물에 담긴 잎사귀 끝이 뭉툭해지기 시작하더니 콩알처럼 동그래졌다. 그리고 어느 날 아주 작은 하얀 뿌리가 돋아나고 있었다. 뿌리는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난 어린 새의 발톱처럼 세상을 더듬고 있었던 것이다. 아, 그 신기함이라니. 새 생명이 탄생하는 것을 본 것처럼 들뜬 기분으로 매일 그 뿌리들을 들여다보았다.


하루하루 지켜보는 동안 초록 잎이 얼마나 많은 뿌리를 내릴 지도 궁금했지만 얼마나 굵은 뿌리로 커나갈지 궁금했다. 어느 시점에 화분에 심어야 할지 결정하는 것 또한 내 일이었다.


한 달쯤 뒤, 작은 화분에 옮겨 심고 흙 속에 단단히 뿌리내리기를 기다렸다. 여름이 가고 가을의 초입. 두 개의 화분 중 하나는 시들었다. 금전수 잎이 거의 갈색 잎으로 변해있었다. 뿌리가 물을 제대로 흡수할 수 없었던 것이다. 너무 일찍 이식한 탓인 것 같았다. 이식 후 물이 부족했거나 과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이유이든 흙 속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시들어버렸다. 뿌리내리는 일은 식물에게도 고단한 일이라는 걸 배운 계절이었다.


그 화분을 정리한 뒤 가장 커다란 구근 하나를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심었다. 포기하기 싫은 내 마음이 반영된 희망사항일 수도 있지만 이 구근이 뿌리내리는 일을 멈추지 않고 다시 촉을 틔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 두고 흙이 마르지 않도록 매일 물을 뿌려주었다.



그리고 세 달 가량이 흘렀다. 구근의 크기가 확연히 달라진 것을 확인했다. 콩알만 했던 게 구슬처럼 커져 있었다.


볕 좋은 창가, 작은 플라스틱 컵 속에서 뿌리는 열심히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올봄에는 기적처럼 촉을 내밀고 연약하나마 줄기로 자라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그동안 사는 일에 바빠 이 작은 식물을 잊고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았다. 아.. 드디어 곧추선 줄기가 나와 있었다. 그래, 이 녀석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작은 식물에게서 희망을 건네받은 아침이다.



#희망 #뿌리의.정신


작가의 이전글 슬픈 비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