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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당구장 [9]

ep_9

by 섭이씨 Jan 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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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씨 아저씨는 노가다 목수이고 일을 하는 사람이니 사기꾼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나같이 시원찮은 잡부한테 누가 그런 일거리를 주겠는가. 1년만 해보자. 그럼 삼천만 원은 만들 수 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앞날이 다 밝아지는 느낌이다.
 
  “두호야. 니 당구장 혼자서 한 1년만 봐줄래? 내 전라도 가서 1년 정도만 일하모 한 삼천 벌어올 수 있겠다.”
  “야유. 니 그거 장난 아일낀데 하것나. 알긋다. 대신에 내 취직하면 몬 봐준데이. 그거는 약속해래이.”
  “알았다. 고맙다 친구야.”


두호를 진심으로 끌어안았다. 떠난다니 마음이 허해서 뭐라도 끌어안아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게 두호라서 편하고 좋았다. 좀 단순한 것만 빼면 정말 좋은 친구다.   
 
  이튿날 변씨 아저씨가 맘이라도 변할까 봐. 그리고 내 결연한 의지를 보여줄 작정으로 아침에 변씨 아저씨를 보자마자 백만 원이 든 봉투를 내밀었다. 어젯밤에 카드 한도에 남은 잔고까지 털어서 맞춘 돈이다.


  “행님. 실은 제가 돈을 좀 날리 문 게 있어서 돈이 좀 급하고 그렇습니더. 좀 잘 부탁드립니데이.”
  “니는 고마 걱정하지 마라. 니는 영푠기라.”
변씨 아저씨는 사람을 기분에 따라 영표, 곱표로 구분하길 좋아했다.
 


  떠나기로 한 일요일 오전 집에서 옷가지를 챙기다 약속장소 확인 차 변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한통 했다.


  “여보세요. 어? 누구예? 아. 김씨 아저씨. 변씨 해임이랑 같이 있습니꺼?”


변씨 아저씨가 다쳐서 병원에 있고 자기는 병문안을 와 있단다. 그래서 대신 받았고. 지금 전화 못 받는다고 한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어데를예? 얼마나예? 무슨 병원인데예?”
  “여게 위생병원”


개어 놓은 옷가지를 발로 차고 뛰어 내려가 택시를 집어 탔다.
 
  병실에 변씨 아저씨가 누워있고 동료 목수 김씨 아저씨가 옆에 앉아 있었다.
변씨 아저씨는 얼굴에 친친 붕대를 감고 가까이서 보니 앞니도 두 대나 나가 있다.


  “행님 이기 무슨 일입니꺼? 저녁에 정읍 가자고 하시놓고서는”
  “송군아 미안테이. 내 좀 낫거든 가자. 아이고 아야....”


변씨 아저씨 말이 부러진 이사이로 줄줄 샌다. 김씨 아저씨한테 묻는다.


  “변씨 행님 와 이래 됐는데예?”
  ”이빨 뿌사지고 턱뼈 좀 금 가고.... 어젯밤에 택시기사하고 싸웠단다. 요 앞전에 같이 파출소 갔던 금마를 또 만났다 카던가, 쌍방폭행인데 오히려 저쪽에가 진단이 더 많이 나왔는기라. 맞는 것도 기술적으로 잘 맞아야 하는데, 여하튼 딱 보이 견적 좀 나오겠다.”
  “행님. 우짭니꺼.. 여튼간에 아무 생각 말고 어서 몸이나 나쑤이소”


내 돈 백만 원. 말도 못 꺼내 봤다.
 


  그다음 주 주말에 오랜만에 현석이를 만났다. 예전에는 사나흘에 한번은 만났었는데 석이 결혼하고 PC방 하고부터는 석이가 시간이 없기도 하고, 여하튼 오랜만에 술자리를 하였다. 나는 내가 당구장을 시작했다는 말을 석이에겐 하지 않았었다. 자칭 지방 명문 사립대 국문과 출신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인지, 잘 되고 나서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했던 때문인지는 잘 설명하지 못하겠지만, 술이 제법 불콰해지고 허름한 2차 집에서, 내가 당구장을 하고 있다는 말에, 그리고 사기를 당했었다는 말에, 카드빚 갚으려 노가다를 다니고 있다는 말에, 그마저도 일이 꼬여 또 돈을 날렸다는 말에 석이는 눈물을 흘렸다.
석이가 흘리는 눈물을 알 듯도 했고 모를 것 같기도 했지만. 원래 눈물이 많은 것이 그중에 가장 큰 이유 일 꺼라 생각했다.
 
  친구 눈물에 젖은 솜 같은 몸을 질질 끌고 집으로 돌아오니 내 신세가 더할 나위 없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으아아- 가슴을 뜯는 시늉을 하는데 셔츠 주머니가 드드득 뜯어진다. ‘그녀가 자전거를 타고 내 가슴에 들어왔다’라고, 광고하는 그나마 좀 좋은 옷인데 하필 이 옷이냐!


그래 당구장을 접자.

당구장 때문에 날린 돈이 얼마냐. 사기당한 거에다 변씨 형님한테 준 돈은 또 무슨 명목이냐. 지출 내역을 적은 노트를 한번 꺼내어 본다. 전세 사백오십에 권리금 백오십에 당구장 수리비에 사기당한 돈이 이백에 또 백에.... 당구장이 얼른 안 빠져서 전세까지 다 까먹으면.... 어이쿠, 천만 원은 족히 되겠구나!


사실 전세와 권리금, 월세야 내가 잘못 선택한 것이라 딱히 누굴 탓할 것도 동정의 여지도 없지만 권리금은 억울한 면이 있다.
아까 석이랑 술 한잔할 때 권리금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현석이는 그 권리금을 건물 주인이 오십만 원, 부동산이 백만 원 이렇게 먹었을 꺼라 말했다. 설마.... 그럼, 비율이 왜 그렇냐고 하니.


  “부동산 영감이 건물주한테 그거 묵는 대신 아무한테도 복비 안 받겠다 캤겠지, 그래놓고 니한테는 받아 묵고”


아귀가 꼭 들어맞는 이야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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