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시작하는 게 너무 어려운.
어제저녁밥을 배 터지게 먹고 온열 매트 위에 누워서 핸드폰을 하다가 잠들어버렸다.
12시간을 내리 잔 듯?
아침에 일어나니 속도 너무 더부룩하고 나 자신이 너무 짐승 같고 한심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특히 밥 먹고 바로 잔 탓에 자는 내내 속이 불편했는데, 그래서인지 눈 떴을 때 기분이 굉장히 더러웠다.
굳이 이렇게 한심하게 잠만 쳐 잔 이유를 찾아보자면 회사 일에 너무 시달려서 스트레스로 주중엔 거의 잠을 제대로 못 잤기 때문.
그리고 온열 매트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기 힘든 추운 날씨 탓?
아무튼, 지난밤을 회개하기 위해서 아침에 홈요가라도 해야겠다며 눈 뜨자마자 거실에 매트를 깔고 유튜브를 켰다.
11월 신상 편의점 아이템 리뷰, 영화 리뷰, 탐정 카라큘라, 부동산 방송 등.
재밌어 보이는 여러 썸네일들의 유혹을 애써 외면하고 요가 채널로 일단 직진.
모닝 스트레칭, 하타 기초, 목 결림 풀어주는 요가 등.
선택지가 몹시 많아서 또 여기서 고민하는데 한 세월.
넷플릭스도 정작 방송을 보는 시간보다 어떤 걸 볼지 선택하는 데 사람들은 가장 많은 시간을 쓴다고 하던데, 요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떤 프로그램을 보고 할지 그것을 고르는데 정작 요가를 하는 것보다 더 시간을 많이 보내는 듯?
정말이지 자의로 홈 요가를 한다는 건 쉽지 않다.
일단 시작하기까지 많은 프로세스 (자리에서 일어나서 매트를 깔고 tv를 켜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샥샥 피해서 요가 채널까지 도달하는 과정)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요가 컨텐츠가 홍수처럼 넘쳐나는데 보고 따라 하는 것도 쉽지 않다니.
아니 컨텐츠를 만들어 올리는 사람들은 얼마나 부지런한 거야?
이래서 돈 버는 사람은 다른가보다.
(내가 가난한 이유. 가난=난가?)
겨우 프로그램 하나를 선택해서 일단 시작해 본다.
아침이니까 이지한 스트레칭 위주의 것으로.
'목부터 천천히 풀어줍니다.'
'오늘 하루는 다시 오지 않을 여러분들의 시간입니다. 여러분의 몸에 집중하는 이 순간을 즐기세요.'
요가 강사의 설명에 맞춰서 굳어있는 뻑적지근한 몸을 움직여본다.
처음엔 가볍게 스트레칭하는 듯하더니 갑자기 저기요 강사님, 왜 급발진?
프로그램 종료.
다른 컨텐츠를 찾아본다.
뭔가 단 것만 찾아먹으려는 편식주의자 같아 보이지만 아침부터 이런 빡센 것을 할 수 없다.
요가원에 가면 누구보다도 욕심내서 수련하는 나이지만, 집에서 혼자 요가를 할 때는 이상하게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관대해진다.
이거 나만 이런 거 아니지?
두 번째 프로그램을 틀어본다.
목, 어깨 통증 완화 집중 30분짜리 요가 프로그램이다.
요가원에서는 1시간 반에서 2시간씩 수련할 때도 아무렇지 않은데, 홈요가는 30분도 길게 느껴진다.
그래서 유튜브에 있는 프로그램들은 말도 안 되는(?) 10분짜리 요가도 있나 보다.
현대인들의 집중력은 갈수록 짧아지고 있는 게 확실하다.
프로그램 하나를 끝내고 나니, 하나 더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침 빈야사 20분 프로그램을 또 틀어본다.
희한하게 이게 시작하는 게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시작하기만 하면 컨베이어벨트 위에 올려놓은 택배 상자처럼 자동적으로 굴러간다.
마치 집을 청소하는 일 같다고나 할까?
청소도 처음 도입하기까지가 상당히 버퍼링이 길지만, 일단 시작하면 온 집을 헤집어놓고 옷장 속 옷까지 죄다 꺼내 정리하는 사람이 바로 나야 나.
아무튼 그렇게 아침 빈야사를 시작한다.
하이 런지에서 가슴을 활짝 열고 두 손을 머리 위로 쭉 끌어올리는 순간, 갑자기 온몸이 시원해지고 나 자신이 오늘 하루를 잘 시작하고 있다는 생각이 팡! 뇌를 때린다.
아, 이런 것이다.
시작하기까지가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하기만 하면 너무 좋은 홈요가.
자주 해야겠다고 다짐하지만!
확신 할 수 없다는 것..
갓생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이다.
역시, 홈요가는 좋은 것.
이제 집 청소를 해야겠다.
유튜브 예능 하나만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