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직장인에게 노후대비가 될까?
최근 같이 일하던 팀원 두 명이 퇴사를 했다.
한 명은 백만 구독자 유튜버로 굳이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경제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으며, 다른 한 명은 이태리로 유학을 간다고 했다.
유학을 선택한 친구는 회사 생활 10년 차가 되니 생각이 많아졌단다.
계속 회사를 다니는 게 맞는지 고민하다 본인이 생각했을 때 노후에는 자기 사업이 가능한 일을 찾아 좀 더 공부를 해야겠다고, 더 늦으면 다른 것을 시작하기가 더 어려울 것 같다며 떠나갔다.
말이야 쉽지만 진짜로 결정을 내리는 것까지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
정말 대단하다.
그리고 나의 남자친구는 내년에 뉴욕으로 떠날 예정이다.
차로 15분 정도면 볼 수 있는 옆옆 동네에 살고 있었는데 이제는 비행기로 15시간을 가야 하는 거리가 되었다.
그러니까 장거리.
내가 이 나이에 장거리 연애라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는 요즘 촉망받는 직종인 AI 연구원으로, 현재도 고액연봉자이지만 지금보다 몸 값을 약 3배 높이고 스톡옵션을 잔뜩 받으며 그 업계에서 소위 잘 나가는 스타트업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러한 주변의 많은 변화들 때문인지 그런지 나는 요즘 싱숭하다.
혼자 정체되어 도태하는 기분이랄까.
오늘, 내일이 똑같고 몇 년 후의 내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 뻔하게 예상되는 지금의 생활이 맞는 건지.
한 직장을 오래 다닐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기도 하지만,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좀 더 다양한 것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게 아닐까 하는 아쉬운 생각도 계속 들고 시간이 지날수록 현재에 안주해버릴까 봐 초조함이 늘어간다.
물론 백 번도 더 했던 생각이지만 또 새삼스레 고민이 깊어진다.
사실 지금 하는 일은 그동안 나와 잘 맞아서 보람도 느끼고 재미있었는데, 요즘은 즐거움보다 회의감이 들 정도로 업무환경에 불만이 많아졌다.
내가 주체가 되어 아이디어와 디자인을 제안하는 일을 하던 분위기에서 점점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는, 말 그대로 부속품처럼 되는 업무 환경으로 너무 바뀌어버린 것.
기계처럼 눈 뜨면 출근하고 영혼 없이 일하다가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 중.
게다가 일은 어쩜 그렇게 많은지 점심도 못 먹고 일하는 날이 허다해서 매일매일 너무 지친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이는데 뭐가 그렇게 고민이냐고 들 하지만,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는데 이렇게 재미가 없어서야.
인간의 평균 수명이 길어졌다고는 해도 언제 무슨 일이 생겨서 죽을지도 모르는데, 내 소중한 시간이 이렇게 소비되도록 내버려 둬도 되는 건가.
그리고 처우가 나쁘지 않은 편에 안정적이라고는 하지만 시한부 인생인 직장인이라면, 언젠가 매달 따박따박 통장에 월급이 꽂히는 게 당연하지 않은 아닌 날이 올 것임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최대한 그러한 현실을 생각하고 싶지 않을 뿐.
이러다 보니 '과연 이 상태로 내가 회사를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의 빈도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노후에 대한 불안감은 점점 커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딱히 당장 다른 대안이 없어서, 혹은 현재의 안정감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관성처럼 눈뜨면 출근하고 퇴근하고 잠드는 삶을 반복하고 있다.
뭐라도, 지금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닌 다른 걸 해볼까? 하는 생각이 또 들었다.
요즘 내가 지치고 싱숭해하는 것을 지켜보던 남자친구가 요가 지도자반을 등록해 보라고 부추겼다.
사실 나는 풍족한 가정에서 자란 편이 아니라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주 오래전부터 항상 플랜 B에 대한 고민을 해왔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 위주로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시도해 봤는데, 예를 들면 제빵자격증이나 필라테스 자격증 같은 것들.
그러나 어떤 것을 해봐도 지금 다니는 직장이 제일 괜찮다는 결론으로 귀결되어 13년 차 장기근속 중.
이미 이러한 전적이 있는 나는 남자친구에게 결국 회사 다니는 게 제일 낫더라고 했지만, 그는 당장 회사를 때려치우고 요가 강사를 하라는 게 아니라 평소에도 취미로 재미있게 하고 있으니까 리프레시도 되고 더 깊이 있게 배우는 기회도 될 수 있지 않겠냐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보단 뭐라도 하는 게 낫지 않겠냐며 재차 제안했다.
비용이 고민이면 자기가 지원해 주겠다는 이야기까지 하면서.
명품백 대신 요가 지도자반 등록금 선물해 주겠다던 그.
(사실 3년째 연애 중이지만 명품백 같은 걸 선물로 받아본 적은 없다.)
나는 그렇게 내년 1월부터 시작하는 주말 요가 지도자반 코스를 신청했고, 미안하지만(?) 그의 퇴직금의 일부를 털었다.
(물론 그가 그렇게 선뜻 비용을 대주겠다고 한 이유 중의 하나는 장거리 연애하면서 주말에 딴짓하지 말고 공부나하라는 의도도 몹시 크다는 점)
뭐, 혹시 모르지.
요가 자격증을 따게 되면 언젠가 남자 친구를 쫓아 뉴욕으로 넘어가서 요가 수업을 하고 있는 날이 올지도?
물론 지금처럼 계속 월급쟁이로 살고 있을 수도 있지만.
사람 인생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니까.
여러 많은 생각으로 등록한 요가 지도자 과정.
물론 요가 강사라는 직업이 지금 직장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좋을 거라는 마냥 행복회로만 돌리는 건 아니다.
모든 직업과 일에는 나름의 고충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충분히 알고 있다.
그렇지만.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해보려고 하니 약간의 설렘과 기대감이 들기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