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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JOBS Dec 28. 2023

압구정 요가는 다르다

체감 온도 영하 14도를 기록하는 혹한의 날씨 때문에 본의 아니게(?) 집순이가 되고 있는 요즘.

회사, 운동, 약속 등으로 집 밖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 집에 있을 때는 보일러 뜨끈한 바닥에 등을 대고 시체처럼 누워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고 있다.


특히 일요일은 literally 하루종일 바닥과 합체된 상태.

나의 모닝 루틴을 되짚어 보자면,

우선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침대에 한참 누워있는다.

그러다가 머리가 아플 때쯤 이제 일어나야겠다며 거실로 기어 나온다.

거실에 나오면 우선 리모컨을 찾아 티브이를 켜고 유튜브나 넷플 채널을 탐색하면서 서서히 거실 소파에 드러눕는다.

소파에 누워서 티브이 좀 보다가 "이렇게 하루종일 누워있을 수는 없어!"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소파에서 내려와 거실 바닥에 다시 드러눕는다.

정신 차려보면 해가 지고 있다.

나는 춥고 한없이 게을리 지기만 하는 겨울이 너무 싫다.

이건 다 날씨 탓이다.




하루는 바닥에 누워서 한참 유튜브를 보다가 문득 요가 프로필 촬영 수업을 예약했던 오붓 요가가 생각나서 어플을 열어보았다.

이런저런 프로그램들 사이에 나의 눈에 띈 [하타 인텐시브 일요일 저녁 클래스].

아니, 눈을 씻고 찾아보기 힘든 주말 일요일 저녁에 요가 수업이라니요?

그것도 인텐시브!

상당히 매력적인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장소가 압구정이라는 것..

'일요일 저녁 요가 수업 하나 듣자고 경기 남부에서 압구정 가는 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어플을 우선 닫는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꺼내 물고 선 다시 티브이를 보기 시작.

그대로 바닥에 누워서 잠든다.

이런 루트로 며칠 고민하다 보니 게으른 나 자신이 너무 꼴 보기 싫고 한심.

이렇게 하루종일 드러누워서 아이스크림이나 먹고 처자느니 강남, 강북 어디든 가서 요가 수업 하나 더 듣고 오는 게 더 낫겠다 싶어서 예약을 감행해 버렸다.

그래, 사람들은 주말이라고 춘천이니 강원 도니 외곽으로도 놀러 다니는데 압구정이면 마실 정도지!  

아무튼 서론이 길었지만, 여차저차해서 일요일 저녁 나는 하타 인텐시브 수업을 들으러 압구정으로 향했다.

그것도 크리스마스가 낀 연휴 주말에.

(그러니까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사실 집을 나서기 전까지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운전해서 가다 보니 갑자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근데, 크리스마스 연휴에 나 말고 요가를 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나?'

막상 갔는데 아무도 없고 나랑 선생님 두 명 밖에 없는 그런 뻘쭘한 상황이면 어떻게 하나 등의 여러 가지 불안한 생각이 점점 커지면서 압구정에 도착할 때쯤에는 제발 누구라도 와달라고.

나는 속으로 기도하고 있었다.


압구정 요가원에 입성해 보니 어플 상 사진으로 봤던 몹시도 팬시하고 세련된 인테리어가 나를 반겨주었다.

역시, 요가원도 인테리어가 좋아야 요가를 할 맛이 난다.

입장하자마자 저 안 쪽에서 선생님이 굉장히 에너지 넘치는 우렁찬 목소리로 "혹시 oo 씨 이신가요?!"라고 소리 질러 주셔서 상당히 웰커밍 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탈의실 사용법과 화장실 위치 등 기본적인 안내를 받고 요가복으로 갈아입은 후 수련실로 들어갔다.

아, 그전에 압구정 요가원은 공용 매트도 만두카 브랜드인 것을 보고는 역시 부자 동네는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아무튼 수련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내가 본 것은 상당히 놀라운 장면이었다.

먼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크리스마스이브이자 일요일 저녁에 요가를 하러 와있었다는 것.

대략 8-9명이 먼저 와서 자리를 깔고 몸을 풀고 있었다.

역시 세상은 넓고 요가에 열정적인 사람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다.

나 혼자 왔으면 어떻게 하나라고 걱정했던 것은 기우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 놀랐던 점은, 이건 개인적으로 상당한 컬처쇼크였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의 매트 앞에 삼각대가 세워져 있었다는 것?

다들 유튜브라도 하시는 건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본인이 수련하는 모습을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하기 위해 만반의 세팅을 하고 있었다.

'이건 뭐지?'

라는 생각이 우선 제일 먼저 들었다.

여기가 요가원인지 기자회견장인지 알 수 없고요.

핸드폰을 탈의실 사물함에 넣어둔 채 매트만 덜렁 들고 입장한 나만 외딴섬에 있는 기분이었다.

내가 다녔던 요가원들에서는 핸드폰을 사물함에 두고 오는 것을 원칙, 또는 권장했다.

그리고 수련 중에는 핸드폰 진동 소리조차도 방해되기 때문에 최대한 사용을 자제하고 무음 모드로 해놓는 게 예의라고 배웠다.

이것은 상당히 생소한 광경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거부감이 먼저 밀물처럼 밀려왔다.

더 놀라운 것은 선생님도 회원 한 분에게 "오늘 크리스마스라고 빨간 옷 입고 오셨는데 수련하는 거 남기셔야죠. 촬영 안 하세요?"라고 촬영을 권장하고 계셨다는 점이다.

여기는 모두가 무림고수이거나 상당히 자아가 높으신 분들만 모여있는 것인가.


일단 어찌 됐든 약간의 충격과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수련을 시작했다.

인텐시브 수업이라고 하더니 스트레칭이나 예열 없이 바로 어드밴스 동작을 팍팍 들어간다.

조금이라도 동작을 천천히 하거나 템포가 느려지면 선생님께서 "천천히 한다고 동작이 잘되는 게 아니에요."라며 개인사정 봐주지 않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버린다.

여기 아주 매운맛이구만?

이거 이거 나만 쩌리처럼 헤매고 있는 거 아니겠지라고 부지런히 좇아가본다.

그런데 수련을 하다가 알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숙련자는 아니라는 것.

(물론 수업 레벨 상 완전 생초보인 사람들은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숙련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수련하는 과정을 부지런히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것은 세상이 바뀐 것이고, 요즘 트렌드엔 이렇게 요가를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영상을 찍고 있는 게 이 무슨 난리통인가 싶기도 하고 거부감이 들었지만 생각해 보면 세상은 여러 방면으로 변화하고 있으니까.


압구정 요가는 수련 자체보다는 수련하는 문화(?)와 분위기에 대해 신선하고 새로운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물론 집 근처 매일 가는 요가원이 익숙하고 마음 편하긴 하지만, 가끔씩은 내가 속한 곳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장소에서 요가 수련을 해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그리고 요가 지도자 과정 시작하게 되면 나도 한 번 자격증 취득 과정의 대장정을 영상으로 남겨볼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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