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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달과 도둑

 “도둑이야! 도둑이 나타났다!”

 “어디? 어디에 있는데?”

 “저쪽에서 소리가 난다! 저쪽에서!”

 사람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어둠을 뚫고 사방에 퍼졌다. 마을에 도둑이 나타난 거였다. 사람들은 도둑을 찾아 분주히 돌아다녔지만, 도둑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날따라 달이 구름 속에 꼭꼭 숨어버려 사방이 온통 깜깜했기 때문이었다.

 도둑을 놓친 사람들은 허탈하게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마땅히 있어야 할 달이 사라진 하늘이 야속하기만 했다.

 “거참, 오늘이 보름날인데 달은 도대체 어디 가고 없는 거야?”

 “그러길래 말이야, 꼭 필요할 땐 없다니까!”

 “오늘은 우리에게 운이 없었던 것 같군! 이만 돌아가세.”

 사람들은 달에 대한 원망만 남긴 채 집으로 돌아갔다.     


 마을을 벗어난 도둑은 숲을 향해 도망쳤다. 칠흑 같은 어둠 때문에 도둑도 자꾸만 무언가에 부딪히고 넘어졌다.

 ‘쨍그랑, 쨍그랑, 달가닥, 달가닥’

 그럴 때마다 어깨에 메고 있던 훔친 물건들이 서로 부딪치고 땅에 떨어졌다. 도둑은 달을 향해 버럭 화를 냈다.

 “도대체 너는 뭐 하는 거야? 구름을 뒤집어쓰고 잠만 자고 있나? 이런 게으른 달 같으니라고……”

 도둑은 땅에 떨어진 물건을 더듬더듬 주워 다시 일어났다. 그때 거짓말처럼 주변이 환해졌다. 구름 속에 숨어 있던 달이 딱하니 나타난 거였다. 어찌나 밝게 빛났던지 풀 한 포기까지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환했다. 그 덕에 숲으로 가는 길이 또렷하게 잘 보였다. 다행히 숲은 도둑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방향이 틀리지 않았군! 역시 난 타고난 천재야! 하하하!”

 우쭐해진 도둑은 숲을 향해 뛰어갔다. 숲에 도착한 도둑은 익숙한 걸음으로 자신만의 비밀 장소로 향했다. 가시덤불이 수북한 곳도, 좁다란 계곡도, 깊은 냇물도 건너야 했지만, 달의 도움으로 도둑은 무사히 비밀 장소에 도착했다. 

 숲의 비밀 장소엔 커다란 너럭바위들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작은 틈도 보이지 않을 만큼 바위들이 병풍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도둑은 가운데 너럭바위를 향해 걸어갔다. 바위 앞에 다다른 도둑은 무릎을 꿇었다. 도둑은 땅과 인접한 곳에서 볼록 튀어나와 있는 돌을 꾹 눌렀다. 그러자 놀랍게도 바위가 비스듬하게 열렸고 사람 한 명이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작은 틈이 생겼다. 도둑은 바위 병풍 안으로 쏙 들어갔다. 도둑은 훔친 물건들을 땅에 툭 던지고 팔다리를 쭉 뻗어 누웠다.

 “아, 좋다! 역시 집이 최고야. 이제야 푹 쉴 수 있겠네!”

 새벽이 가까워진 하늘에는 달뿐만이 아니라 별들까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도둑의 눈에는 별들이 마치 금처럼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언젠가는 저 별들도 모두 훔쳐야지! 흐흐!”

 헛된 망상에 빠진 도둑은 훔쳐온 물건들을 하나씩 달빛에 비춰보았다. 사파이어가 박힌 은장도, 옥 구슬이 장식된 구두, 황금 누에의 명주로 만든 모자 등 귀한 보물들이 더러 섞여 있었다.

 “오, 신이시여! 오늘 엄청난 행운을 주셨군요! 저런 촌구석에 이런 보물들이 있었다니! 히히히!”

 웃음소리까지 낮춘 도둑은 훔친 보물들을 조심스럽게 다뤘다. 그때 노란 보자기에 싸여 있는 피리가 도둑의 눈에 띄었다. 도둑은 얼른 피리를 꺼냈다.

 “오! 정말 아름다운 피리군!”

 도둑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했다. 피리의 표면에는 여러 모양의 새들이 금빛으로 새겨져 있었다. 백조처럼 크고 우아한 새부터 작고 앙증맞은 새들까지 촘촘하게 새겨져 있었다. 새들은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것처럼 생동감이 넘쳤다. 호기심이 생긴 도둑은 피리를 불어 보았다.

 ‘필리리~ 필리리~’

 은은한 피리 소리가 숲에 퍼져 나갔다. 그리고 곧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피리에 새겨져 있던 새들이 꽃이 피어나듯 피리에서 깨어난 것이었다. 새들은 금빛 가루를 뿌리며 마치 작은 은하수처럼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도둑은 그 황홀한 장관에 금세 빠져들었다.     


 “친구? 그 피리를 내게 주면 안 될까?”

 어디선가 낯선 음성이 들렸다. 깜짝 놀란 도둑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도둑의 긴장된 눈빛이 주변을 샅샅이 살폈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잘 못 들었나 보군. 요즘은 별일도 아닌 일에 깜짝 놀란단 말이야. 나도 많이 늙었어. 그나저나 이 피리는 너무나 훌륭해. 큰돈을 벌겠어.”

 도둑의 입가에 탐욕스러운 미소가 그려졌다.

 “친구? 그 피리를 내게 줄 수 없을까?”

 조금 전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에는 훨씬 또렷했다. 

 “누, 누구냐? 비, 비겁하게 숨어 있지 말고 어서 나와라!”

 잔뜩 겁먹은 도둑이 말까지 더듬으며 말했다.

 “난 숨어 있는 것이 아니야. 하늘 위를 봐. 나를 찾을 수 있을 거야.”

 도둑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그곳엔 달이 있었다.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한 도둑은 달을 향해 소리쳤다.

 “이 피리는 내 거야! 누구에게도 줄 수 없어!”

 달이 대답했다.

 “난 그 피리에 새겨진 새들이 필요해. 그 새들은 내 새들이야.”

 “이 새들이 네 것이라고?”

 “맞아, 그 새들은 원래 이곳에 살았어. 그곳에 여행을 떠났다가 그만 마법에 걸려 피리에 갇히게 된 거야. 네가 들고 있는 그 피리에 말이지. 새들이 떠난 내 몸은 곳곳에 빛을 잃어버렸어. 새들이 돌아와야 예전처럼 다시 환해질 수 있어.”

 달의 얘기가 끝나자 도둑은 달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달의 표면 군데군데에 어두운 곳들이 보였다. 달이 말한 새들이 떠난 자리였다. 도둑은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이 피리는 내가 목숨을 걸고 훔친 피리라고. 근데 왜 너에게 줘야 하지?”

 달이 대답했다.

 “왜냐하면, 내가 너를 도와줬으니까. 네가 마을에서 도둑질할 때 나는 일부러 구름 속에 숨었어. 사람들이 널 찾을 수 없도록 말이야. 그리고 네가 숲에서 헤맬 때 길을 환하게 밝혀주었어. 어때? 이 정도면 너를 충분히 돕지 않았니? 그러니 그 새들만 내게 돌려주고 나머지는 네가 모두 가져. 그러면 공평하잖아?”

 도둑은 피리에 새겨진 새들을 보았다. 볼수록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도둑은 설령 달의 얘기가 사실이더라도 새를 돌려주고 싶지 않았다. 멀리 떨어져 있는 달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 도둑이 말했다.

 “미안하지만 돌려줄 수 없겠는걸. 난 한 번도 너에게 도와 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거든. 그러니 네게 도움받은 일도 없겠지. 이제, 그만 사라져 줄래? 오늘 정말 피곤하니깐 말이야. 하암~”

 도둑의 거절에 화가 난 달은 구름 속으로 획 사라져 버렸다. 달이 자취를 감추자 숲은 순식간에 어둠에 휩싸였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재산을 모두 탕진한 도둑이 다시 마을에 나타났다. 도둑은 과거의 행운을 다시 얻기 위해 은밀하게 마을에 잠입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날도 구름에 달이 가려 있었다.

 “좋았어! 오늘도 운이 좋겠는걸. 오늘은 어떤 보물이 내 손에 들어올까나? 히히히!’

 도둑은 능숙한 솜씨로 물건들을 훔치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어깨에 짊어진 보따리가 무거울 정도로 도둑은 많은 물건을 훔쳤다.

 ‘이만하면 충분할 것 같군! 이제 슬슬 빠져나가 볼까?’

 도둑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떠날 준비를 했다. 그때, 깜깜했던 밤이 낮처럼 환해졌다. 구름 속에 숨어 있던 달이 갑자기 나타나 마을을 환하게 밝혀버린 것이다. 그 바람에 깜짝 놀란 도둑이 보따리를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쨍그랑! 우당탕!’

 “도둑이야! 도둑이 나타났다!”

 “어디? 어디에 있는데?”

 “저기 도둑이 뛰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손에 몽둥이를 들고 도둑을 쫓았다. 도둑은 허겁지겁 달아났다. 담벼락 밑에도 숨어보고 장독대 뒤에도 숨었다. 옥수수가 자란 밭고랑에 나란히 누워도 보았고, 넓은 콩잎으로 몸을 숨겨도 보았다.

 “도둑이 저기 숨어 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도둑은 몸을 숨길 수가 없었다. 숨는 곳마다 달이 졸졸 따라다니며 환하게 비추었기 때문이다. 결국, 도둑은 사람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힘없이 질질 끌려가던 도둑은 달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 그때 네게 새들을 돌려주었다면 오늘 나를 도와줬을 텐데……”

 도둑이 뒤늦은 후회를 했지만, 너무 늦은 뒤였다. 이후 도둑은 오랫동안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감옥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 

 한편 피리에 갇혀 있던 새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안타깝게도 달은 지금까지도 마법에 걸린 새들을 찾을 수 없었단다. 그래서 여전히 달의 표면 군데군데엔 어두운 그림자가 남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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