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카메라와 함께 하는 랜선 방들이
방(房)
: 사람이 살거나 일을 하기 위하여 벽 따위로 막아 만든 칸
내 나이 이십 대 후반. 교환학생을 다녀온 1년을 제외하고는 부모님 댁에 꼭 붙어서 지냈다. 취직을 하면 막연히 자취를 하고 싶다는 로망도 있었다. 하지만 주변 경험담을 통해 독립하는 순간 숨 쉴 때마다 돈이 나간다는 걸 깨닫고 일찍이 캥거루족의 길을 선택했다.
현재 부모님 댁 현관 바로 앞 첫 번째 방에 거주 중이다. 초등학교 때 방이 생기기 시작한 후부터 대학교를 통학할 때까지만 해도, 사실 방에 대한 큰 느낌이 없었다. 사전적 의미 그대로, 한 집 안에서 물리적으로 분리된 공간이 필요해 구획이 있는 정도였다.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보내다 보니, 방은 잠만 자는 공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다 작년 처음으로 사전적 의미를 뛰어넘는 진짜 '방'의 개념이 생겼다.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이전에는 방과 보내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거기다 내 방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나의 취향이 담긴 무언가가 없었다.
전체적인 집 콘셉트에 맞춘 엄마의 취향만이 있었을 뿐이다. 엄마가 고른 침대, 책상, 서랍 등. 간혹 '필요'로 인해 작은 아이템들이 구비된 적은 있으나, 여전히 부모님의 집에 속해 있는 시스템 중 하나였다. 물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 크게 연연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재택근무라는 걸 시작하고부터 방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방이 내 일터가 된 것이다. 일단 일을 해야 하니, 옷더미와 온갖 잡동사니가 쌓여있던 책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책상에 앉아있다 보니 허전해서 좋아하는 작가의 달력과 포스터, 엽서를 갖다 놓았다. 가끔 방이 어두워질 때 집중력이 떨어져서 스탠드 조명을 설치했고, 가끔은 음악을 듣고 싶어 블루투스 스피커도 제 자리를 찾았다.
때로는 작은 동네 카페가 되기도 했다. 선물 받은 턴테이블이 있었는데, 놓을 공간이 없어서 한참 바닥에 두었다. 몇 달이 지난 후에야 이렇게 둘 수는 없다고 결심해 침대 옆에 놓을 작은 협탁을 샀다. 그리고 그 옆에는 LP를 진열할 선반도 세트로 만들어 주었다. LP만 놓기엔 또 허전해서 양초, 마카, 카메라 등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을 채워 넣었다.
이렇게 작은 공간들을 만들다 보니 처음으로 내 방을 좋아하게 되었다. 예전에도 싫어한 건 아니었다. 그냥 무(無)의 감정이었을 뿐이다. 정이 없었다는 표현도 맞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나라는 사람의 취향을 가득 채운 광활한 우주가 되었다. 밖에 나가지 못해 답답한 날들도 있었지만, 나만의 취향과 하루 종일 함께 한다는 건 또 다른 재미를 가져다 주기도 했다. 나만의 데스크, 나만의 카페가 생긴 것이다.
업무 외 여유 시간에는 책상에 앉아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듣고, 좋아하는 글을 쓴다.
방 밖으로 보이는 노을이 이렇게 예쁜지 몰랐다. 시시각각 변하는 햇빛의 양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 또한 소소한 행복이다.
21년 달력을 문에 붙여 놓았다.
그날 기분에 따라 LP 디스플레이를 바꿔 놓기도 한다. 작은 동네 카페나 갤러리의 주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독립을 하지 않으면 온전한 내 공간을 갖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뜻밖의 집콕으로 하루 24시간을 방과 함께 하게 되었고, 그 시간만큼의 온기와 취향이 채워졌다. 물리적으로는 같은 공간이지만,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과 마음에 따라 다른 공기가 메워진다는 점이 신기했다. 그렇게 스물여섯의 내게도 처음으로 진짜 방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