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는 인간 May 05. 2022

무시, 무시해도 괜찮을 때

거북이 이야기

“와, 정말 그런 곳이 있단 말이오?”


히말라야 산기슭 작은 연못에 거북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젊은 백조 두 마리가 거북이가 사는 연못으로 날아왔다가, 친구가 되었다. 거북이는 백조들이 본래 살던 곳이 궁금했다. 그러자, 백조들은


“우리는 히말라야 산 치타 쿠타(Citakuta) 봉 고원에 있는 황금 동굴 안에 살고 있소. 거기는 참으로 멋진 곳이지.”


   라고 말했다. 거북이는 그곳이 궁금해져서 백조들에게 더 말해달라고 졸랐다. 그리고 황금 동굴에 대해 들으면 들을수록, 거북이는 그곳이 마치 눈앞에 있는 듯 선명해져서 혹시나 ‘거기에 가볼 수는 없을까’ 하는 소원이 생겼다.


   날씨가 맑게 갠 어느 날 아침, 거북이는 긴 목을 높이 쳐들고 어딘가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백조들이 왔다는 치타 쿠타 봉 쪽이었다. 그 모습을 본 백조들은 웃으며 거북이에게 제안했다.


“친구여, 우리와 함께 황금 동굴로 가서 살지 않겠소?”


   그 말을 듣자, 거북이는 몹시 기뻐했다. 하지만, 이내 근심 어린 얼굴을 하고서는 ‘자네들이야 백조라서 날개가 있어 날아간다고 하지만, 나는 거북이인데 어떻게 거기에 갈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백조들은


“그대가 입을 꾹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대를 거기까지 데려가는 것은 우리에게 몹시 쉬운 일이오.”


   라고 말했고, 거북이는 그 말을 듣고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내지 않을 테니, 얼른 저곳으로 가자’고 반색을 하며 말했다. 백조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긴 나뭇가지 한가운데를 거북이에게 물렸다. 그리고서는 자기들이 양끝을 물고서 힘차게 날개를 퍼덕거리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와, 저거 봐! 백조다, 백조!”


   새하얀 백조 두 마리가 푸른 하늘을 나는 모습은 아이들에게도 멋진 광경이었나 보다. 저 아래 마을 꼬마들이 대여섯 명 집에서 나와 크게 소리 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런데, 녀석들이 백조들의 친구를 본 모양이다.


“어, 근데 저게 뭐지? 저거 거북이 아니야?”

“그러게? 푸핫, 거북이가 하늘을 난다!”

“거북이야, 네 주제에 그게 뭐 하는 거니? 땅이나 기어 다녀라!”


   아이들의 말을 들은 거북이는 처음에는 참으려고 했지만, 계속해서 놀려대는 통에 화가 났다. 결국 입을 절대 열지 않겠다는 약속을 까맣게 잊은 거북이는 물고 있던 막대기를 뱉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야, 이 녀석들아! 내 친구들이 나를 데리고 내가 바라던 곳으로 간다는데. 니들이 무슨 상관이냐! 가던 길이나 그냥 계속 가라!”


   백조들이 알아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 버린 후였다. 막대기를 뱉어버린 거북이는 무서운 속도로 땅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간절히 살고 싶었던 황금 동굴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채 땅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 고대 인도 설화집 자카타 중 ‘거북이 이야기’ -



“쌤, 잘 지내셨어요?”


정말 오랜만에 T를 만났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즈음 내게 영어를 배운 아이다. 몰라보게 큰 키도 그렇고, 대학생활 이야기를 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시간이 흐르긴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웃으며 이야기하던 T가 갑자기 고민이 있단다.


   말인즉, 이제 막 대학 생활 1년을 보내며 공부한 전공이 맞지 않아 다른 전공을 선택하고 싶은데, 조금 더 지금 학교에 남아 공부를 더 할지, 아니면 자퇴 후 다른 학교, 다른 전공을 선택하는 게 옳은 건지 판단이 안 서더란다.


   T에게 나는 ‘인생이라는 게 살아보니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는 하더라. 그러니까, 하고 싶은 것이 있거든 해보는 것이 좋다.’고 말하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해서 후회가 남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덜 후회할 테니 말이다.


“쌤, 근데요...”


   그래도 T는 걱정스러운 눈빛이었다. 자퇴 후 다른 학교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 자체는 두렵지 않지만, 자기가 목표로 한 일을 우습게 생각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의 말에 어떻게 대꾸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굳이 대꾸할 필요 없어. 신경 쓰지 마.”


   그럴 때는 침묵하라고 했다. 아예 대꾸하지 말라고,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내가 목표로 하는 일에 대해 사람들은 좋은 말만 하지 않는다. 그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조언인 경우도 있지만, 소중한 목표를 조롱하고, 무시하는 태도로 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백조들과 함께 황금 동굴에서 살고 싶었던 거북이가 왜 반도 가지 못해 죽고 말았는지 기억해 볼 필요가 있다. 쓸데없는 아이들의 말에 침묵하지 못하고, 화를 냈기 때문에 거북이는 꿈을 이루는 것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생명도 잃고 말았다. 만약, 무시를 무시했다면 거북이는 친구들과 즐겁게 남은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아무 이유 없는 비난을 쏟아내는 누군가를 향해 사이다 같은 발언으로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어야 할 때도 있겠지만, 때로 나를 무시하는 그 사람에게 아무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이자 정치가 겸 작가였던 Μέστριος Πλούταρχος의 말처럼, 적절한 시기의 침묵은 지혜이며, 그 어떤 언변보다 나음을 기억하라.


때로 어떤 무시는 무시해도 괜찮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로 잡지 않으면 바로잡을 수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