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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인간 May 19. 2022

꿈만 꾸면 꾸게 된다.

브라만의 꿈

“아, 잘 먹었다!”


옛날 인도 어느 마을에 ‘스와바와크리프나’라고 불리는 브라만(인도 카스트제도에서 가장 높은 성직자 계급, 출처 : 종교학 대사전)이 살았다. 그는 탁발을 하여 얻은 굵은 보릿가루를 한 줌 입에 털어 넣고는 나머지는 단지에 넣어두었다. 그리고는 단지를 침상 아래 두고 빤히 바라보다가 생각에 잠겼다.


“보자, 만약 가뭄이 와서 먹을 게 귀해지면 나는 이 단지에 채운 보릿가루를 시장에 나가서 100루피에 팔아야지. 그럼 산양 두 마리를 살 수 있겠지? 산양은 6개월이면 새끼를 낳으니 금방 불어날 거야. 그러면 이제 산양을 팔아서 소를 사고, 소를 팔아서 물소를 사고, 물소는 암말로 바꿔야지.”


   그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 현실이라도 된 양, 히죽히죽 웃으며 상상을 이어갔다.


“암말이 새끼를 낳으면 여러 마리의 말이 생기는 거야. 그러면 그 말들을 모두 팔아서 금을 사야지. 그 금으로는 뭘 할까? 널찍한 방이 네 개 딸린 큰 집을 사야겠다. 혹시 누군가가 ‘와, 이런 으리으리한 집에는 누가 살까?’ 생각하며 들어왔다가 나를 보고 ‘내 딸을 이 사람과 혼인시켜야겠다!’ 마음먹겠지. 그럼 아들 이름은 무엇으로 할까? ‘소마 샤르마’라고 해야겠다. 나는 아들을 사랑하지만, 워낙 바쁘니 방문을 닫고 일에 몰두할 거야. 하지만, 소마 샤르마는 나를 너무 사랑해서 문을 두드리며 ”놀아줘요, 아버지!” 하며 소리를 지르겠지. 그러면 나는 부엌을 향해, ”여보, 애 좀 봐!” 하고 아내를 부를 거야. 하지만, 그녀는 집안일을 하느라 내 말을 못 듣겠지. 그럼 어쩌지? 하는 수 없지! 자리에서 일어나 귀가 어두운 여편네를 발로 차 버리는 수밖에!”


   스와바와크리프나는 상상에 너무 깊이 빠져버린 나머지, 정말로 발길질을 해버렸다. 그러자 발치에 있던 단지가 와장창 깨지며 그 안에 있던 보릿가루는 모두 못 쓰게 되어 버렸다. 이 이야기를 들은 동네 사람들은 이런 노래를 지어 불렀다고 한다.


‘아, 어리석다. 브라만이여, 스와바와크리프나여.

아직 오지도 않은 앞날을 막연히 상상하며

미처 알지도 못하는 미래의 일들을 생각했네.

소마 샤르바의 아버지여, 헛된 꿈을 꾸었구나!‘


- 고대 인도 설화집 판차탄트라 중 ‘브라만의 꿈’ -


 

“와, 이게 여기 있었네!”


   평범한 방이 보물창고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따금 방 정리를 하면서 모아둔 편지나, 일기장 같은 걸 아주 오랜만에 열어 보는 순간이 그렇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책장에 새로  구매한 책을 꽂을 공간이 없어 더 이상 읽지 않는 책을 빼고 있었다.


   그러던 중 뭔가 책과 함께 ‘툭’ 빠졌다. 일기장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나는 줄곧 초록색 표지에 검은 글씨로 크게 ‘일기장’이라고 쓰인 노트에 일기를 적곤 했으니까 말이다. 먼지를 툭툭 털어 나서 펴보니, 그건 하고 싶은 일을 적어 둔 노트였다.


‘나는 앞으로 과학자가 될 거다. 전기 자동차를 만들어 지구를 더 아프지 않게 해 줄 거다. 그리고 엄마 아빠에게 차를 한대 씩 선물해야지.’


‘이번 방학 때는 하루에 한 권씩 동화책을 읽어야지.’


‘앞으로 나는 **대 **과에 진학할 거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코흘리개 초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고등학생 시절까지 빼곡하게 하고 싶었던 것, 이루고 싶던 일들이 적혀 있었다. 하나하나 소리를 내어 읽어보니, 다짐에만 머물렀던 것도 있고, 이미 이룬 일도 있다.


   왜 어떤 일은 생각에서 그치고, 다른 일은 이뤄졌을까?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공책에 까만 연필로 꾹꾹 눌러쓴 것들 중에 실천에 옮긴 것들은 이미 이뤘거나, 여전히 이루어 가는 중이다. 하지만, 적어놓고 생각만 했던 것들은 그게 얼마나 거창하고 멋진 꿈이든 간에 모두 다 날아가 버렸다.


   생각에만 빠져 있으면 꿈을 꿀 수는 있어도, 꿈을 이룰 수 없다는 건 고매한 브라만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나 보다. 가만히 단지를 들여다보다가 기가 막힌 인생계획을 세웠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빠져 상상에만 머물러 있다가 결국 지금 자기 앞에 있는 보릿가루를 못 쓰게 만들어 버렸다.


   그러므로 <인생 찬가>나 <에반젤린>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시인 Henry Wadsworth Longfellow가 말한 것처럼 미래를 신뢰하지 말고, 죽은 과거는 묻어 버려라. 그리고 살아있는 현재에 목표를 위해 행동하라. 만약 행동 없이 꿈에만 빠져있다면, 어느새 꿈꾸는 인생에서 꿈은 온 데 간데 사라지고, 남에게 꾸는 인생으로 살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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