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그리고 희생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 공이나 라켓과 친하지 않아도 한 번쯤은 들어 본 문구다. 목표를 향해 땀 흘리는 운동선수들이 지향하는 바를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은 없다.
‘더’라는 명령조의 반복임에도 이 표현이 스포츠 정신에 있어 빠지지 않고 사용되는 데에는 이 문장이 주는 묘한 매력이 한몫할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안에 아직 남아 있는 그 시절 야성을 자극하고 있는다는 말이다.
아직 인간이 밭고랑에 대해 몰랐을 시절도 그랬다. 씨 뿌리고 거두는 일을 할 때만큼이나 땀을 흘렸다. 멧돼지는 둘째치고 작은 토끼라도 잡아 가장의 면을 세우기 위해 체면 생각할 새 없이 뻔질나게 뛰어야 했던 것이 그 시대의 남자들이었다. 혹시나 땅에서 뭔가 챙기지 못했다고? 고개를 들어라. 아니, 구름을 따 가라는 말이 아니다. 하늘에는 조각구름 말고도 새들이 있다. 땅에서 뭘 못 챙겼다면, 하늘에서 달은 못 따오더라도 새 한 두 마리 잡아와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사냥터는 운전석, 사무실, 컴퓨터 키보드 앞이 되었지만, 본성은 아직도 뛰어다니는 뭔가가 그립나보다. 우리는 조상들처럼 달리고, 멀리 뛰며, 창이나 원반을 던지며 서로 누가 우리 조상을 닮았는지 겨룬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나는 아주 조상님들과는 척을 진 사이다. 뛰는 건 커녕 일주일에 몇 시간 걷는 게 고작이고, 그것도 그냥 생각할 거리가 있을 때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아 나만의 골방이 필요해하는 일이니까.
“차라리 그 돈으로 책을 하나 더 사서 보겠다. “ 천성 때문에 내 돈 주고 직관할 생각은 꿈에도 꾸지 않았다. 뭔가 애매한 이 나이가 되도록 직관한 스포츠는 단 두 개뿐이었는데, 하나가 야구였다.
가르치던 일을 하던 중 근무했던 곳이 마침 야구 경기장과 가까운 곳이었다. 학생들과 조건을 걸고 달성하면 직관하러 가는 약속을 했다. 아 물론 정말 감사하게도 아이들은 목표를 훨씬 달성해버렸고, 이 녀석들 때문에 전에도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야구 직관이 시작됐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이야기해. 들어가기 전에 사자.“ 사실 고백하자면, ‘보는 재미가 없으면(나는 축구라면 모를까 야구의 규칙을 전혀 모른다) 먹는 재미라도 있어야지’ 생각에 내가 먹을 요량으로 물어본 것이었는데, 이 눈치 없는 놈들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장바구니에 신나게 먹을 것을 채우기 시작했다.
모두 잘 지내는지, 너희들도 똑같은 제자들을 만나길 바란다. 아 물론, 목표를 위해 성실히 도전하는 사람 말이다.
“와아아아아아!!!“ 지금도 로마에 가면 볼 수 있는 그 큰 원형 경기장이 그랬을까? 경기도 시작하기 전이었는데, 뭐가 그렇게 좋은지 구장 안 사람들은 밖에서 줄을 선 우리의 귀를 멀게 할 것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큰 소리가 났으니 얼굴은 자동으로 찌푸려졌다. 사실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해보면 그때 들어가기 싫은 티를 너무 많이 냈던 것 같아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깡!‘ 그냥 알루미늄 몽둥이에 작은 공이 부딪히는 소리였다. 근데 그게 왜 그렇게 시원하던지. ‘이 맛에 야구를 보는 건가?‘ 씹다 만 닭다리를 들고 나는 소리가 나기 무섭게 출루하는 타자의 모습에 혼이 나간 것처럼 아이들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호쾌하게 터지는 타자의 홈런포는 야구에 관심 없는 누구라도 한번쯤 눈을 크게 뜨고 볼 만큼 짜릿한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타자라면 누구나 ‘내가 오늘 꼭 홈런을 치리라’ 생각할만하다. 홈런은 모두의 이목을 끌뿐만 아니라 팀에게 승리를 가져다줄 수 있으니까. 그런데, 당신은 혹시 아는가? 야구의 독특함은 타자로 하여금 고민하게 한다는 사실을. 마운드에 선 투수를 비장한 표정으로 마주한 타자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홈런을 치는 일’ 말고 그에게 선택지가 하나 더 있기 때문이다.
(알기에는) 공으로 하는 경기 중 유일하게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점수를 얻는 운동이다. 또한 그 희생은 기록으로 남기도 한다. 이런 야구의 특징은 미국의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아주 특이한 이력을 지닌 선수가 헌액 될 수 있게 만들었다.
뉴욕 양키스의 유격수로 활약했던 ‘필립 프랜시스 리주토’와 같은 선수가 주인공이다. 그는 13년 동안 팀에서 활약했는데, 홈런 1위나 타율 1위가 아닌 ‘보내기 번트 1위’의 기록 때문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었다. 배트를 들고 뒤에 있는 포수와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며 저 앞에 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에서 사인을 보내는 투수의 공을 그라고 해서 왜 시원하게 날리고 싶지 않았으랴.
스스로 희생, 아니 조금 더 과장되게 표현해 볼까? 죽음과 고난을 스스로 기꺼이 선택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1명 있다. 계속해서 살펴볼 영웅, 사자탈을 쓰고 올리브 나무 방망이를 든 그 남자 말이다.
“이것도 안돼, 저것도 안돼... 아 미치겠다 정말.“ 헤라클레스는 에우리스테우스가 던진 여섯 가지의 과업을 (생각보다 쉽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지만) 다 해결했다. 왕은 자기 스스로 기어 들어온 노예를 골탕 먹이고 싶었다. 그리고 생각 끝에 이제는 펠로폰네소스 반도가 아니라 더 멀리 외국에 보내 과업을 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니까짓 놈이 뭐라고. 결국 포기하겠지. 흥, 지가 무슨 제우스의 아들이라도 되나?” 잔뜩 심통난 얼굴로 왕은 헤라클레스를 불렀다. 티린스에서 되도록 먼 곳으로 보내려고 했다. 묘한 얼굴로 왕을 쳐다보고 있는 이 영웅에게 입을 열었다. “그래, 저기 크레타로 가라. 거기 황소가 있다는데, 그걸 잡아와 봐!“
일곱 번째 과업, ‘크레타의 황소‘
이 황소에게는 기막힌 이야기가 하나 있다. 크레타의 왕 미노스는 형제들과 권력 다툼을 했다. 어떻게든 이기고 싶었던 그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도움을 청했다.
“어, 그러니까. 내가 여기서 무릎을 꿇고 ‘오, 위대하신 포세이돈 신이시여! 나의 기도에 응답하소서. 당신의 아름다운 황소를 내게 보내사 나로 하여금 왕의 자질이 있음을 이들이 보게하소서!‘ 기도하면 황소 한 마리만 보내주십사 하는 것입죠. 그러면 제가 왕위에 ‘딱’ 앉고 그다음에 당신께 ‘딱’ 황소를 다시 바치고 그러면 되지 않겠습니까? 헤헤, 한 번만 좀 도와주십쇼.“ 왕의 자질이 ‘손 잘 비비기’가 아니었을 테지만, 어쨌든 바다의 신은 그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 문제는 왕이 된 이 협잡꾼의 눈에 황소가 너무나 아름다웠다는 것. 손이 눈보다 빠르지 않다면 패에 장난질은 하는 게 아니라는데, 그는 오함마를 몰랐던 모양이다. 바치기로 한 황소 대신 다른 황소를 바친 것이다. 신이 모를 리 없다. 분노한 포세이돈은 미노스의 아내 파시파에가 황소와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다. 황소에 대한 감정으로 가슴을 태우던 이 여인은 그리스 최고의 재주꾼 다이달로스에게 ‘암소 인형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는 나무를 가지고 정말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암소를 만들어주었다. 왕비는 스스로 암소가 되었다. 황소와 사랑을 나눈 결과는 어땠을까? 어땠기는! 황소와 사람이 사랑을 나눴으니 반은 황소이고 반은 인간인 미노타우로스가 나왔다. 이를 수치스럽게 생각한 왕 미노스는 다이달로스를 시켜 미로 감옥을 만들고 거기에 미노타우로스를 가뒀다.
어떻게든 잡으려고 했지만, 마침 또 이 황소는 보통내기가 아니었던 터라 도저히 잡을 수 없었다. 멧돼지라도 되는 것 마냥 농작물을 못 쓰게 만들었다. 백성들은 물론 군사들이나 심지어 어떤 영웅도 황소를 막을 수 없었다. 미노스 왕의 근심은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머리 아홉 달린 뱀에 청동 날개 새들도 잡았는데, 너라고 못 잡을 것 같냐!“ 황소는 어느새 멧돼지가 그랬던 것처럼 헤라클레스의 어깨에 매여 티린스로 끌려왔다. 왕은 그것을 자신의 수호신인 헤라에게 바쳤다. 여신이 ‘헤라클레스가 잡은’ 이 황소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그녀는 황소를 풀어놓았고, 마라톤 평원을 넘어가 그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는 마침 자기 땅에 왔던 미노스의 왕자 안드로게오스를 시켜 ‘어떻게 좀 해보라’고 했지만, 왕자는 소에 받쳐 죽고 말았다. 한참 후에 테세우스가 이 황소를 제압해서 다시 신들에게 제물로 바칠 때까지 황소는 트러블 메이커 그 자체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아테네 사람은 없다.
여덟 번째 과업, ‘디오메데스의 암말’
다음 과업은 트라케 지방 비스토니아로 가서 그 지역을 다스리는 왕 디오메데스가 기르는 암말들을 데려오는 일이었다. ‘고작 말 몇 마리 데려오는 게 왜 과업이냐‘고 묻는 사람들도 실제로 그 말들을 보았다면 살기 위해 도망쳤을 것이 분명하다. 왕이 기르는 네 마리의 말들은 ‘인육을 먹고 큰’ 말이었거든. 워낙 거리가 먼 탓에 영웅은 페라이의 왕 아드메토스의 왕궁에 잠시 머물러야 했다. 그때 왕은 슬픈 내색을 감추어야 했다. 헤라클레스를 손님으로 모시기 싫었던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 앞에 슬퍼하지 않는다면 그가 어찌 남편이었겠는가? 감기와 사랑은 결코 숨길 수 없는 두 가지다. 비록 그녀가 곁을 떠났다 할지라도. 헤라클레스는 후에야 왕이 사별했다는 사실을 알고 왕비 알케스티스의 무덤으로 갔다. 수풀에 숨어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기다렸다. “어림 없지!“ 타나토스가 왕비를 데려가려고 하자 헤라클레스는 죽음의 신에게 겁도 없이 달려들었다. 왕과 왕비는 그렇게 서로 다시 서로를 안아 볼 수 있었다.
영웅은 며칠을 보낸 뒤 가던 길을 재촉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그는 우선 디오메데스의 마부들을 해치웠다. 그리고 말들을 바다 쪽으로 몰았다. “야, 이 말 도둑 새끼야!“ 말 주인이 ‘가져가쇼’ 하고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적어도 자기가 어떻게 될지 알았다면 차라리 그 말들을 곱게 보냈어야 했다. 헤라클레스는 아주 가볍게 본보기라도 되는 마냥 디오메데스를 죽였거든. 죽은 남자는 말이 없다. 말은 주인을 더 이상 알아보지 못한다. 미안하지만, 그냥 고깃덩이일 뿐이다. 헤라클레스는 살점이 조금 남은 뼈들을 뒤로하고 말들을 티린스로 데려왔다.
그도 지칠 대로 지쳤던 것일까? 왕에게 보여준 뒤 그냥 말들을 풀어줬다. 겁 없는 이 말들은 크레타의 황소와는 운명이 달랐다. 산에 잘못 들어갔다가 거기 있던 괴물들의 좋은 점심 식사 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아홉 번째 과업, ‘아마존 여왕 히폴리테의 허리띠’
“아빠!! 나 그게 없으면 죽을 것 같다고요!!“ 아직 원더우먼이 나기도 전, 그 때 에우리스테우스의 딸 아드 메테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여신 헤라의 이름을 딴 화장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마존 여왕 히폴리테의 허리띠였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에우리스테우스는 딸의 성화를 못 이겨 그것을 딸에게 주기로 했다. 그래, 그에게는 ‘천하 제일의 노예’가 있었으니까. 히폴리테의 허리띠를 가져오는 일, 그것이 헤라클레스의 아홉 번째 과업이었다. ‘원조‘는 남미가 아니라 흑해 남부 해안의 테르모돈 강변에 있었다. 아마존의 여인들은 모두 전사였다. 헤라클레스는 용사들을 모아 배를 타야 했다. 일행은 섬들을 지나 아마존 왕국의 수도 테미스키라에 도착했다. 여왕 히폴리테는 전쟁의 신 아레스가 오트레레와의 사랑 끝에 낳은 결실이었다.
우리는 아마존이 남성들에게 적대적이었다고 알고 있지만, 여왕은 생각보다 친절했다. 본인이 직접 나와 손님들을 영접한 것이다. “나그네들이여, 무슨 일로 이 곳까지 오셨습니까?“ 친절히 용건에 대해 물어본 여왕은 이야기를 듣더니 허리띠를 주겠다고 약속하고 돌아갔다. 어쩐지 일이 잘 풀릴 때 그것을 난장으로 만드는 존재가 꼭 있다. 그래, 헤라가 나올 차례다. “과업이 쉽게 이뤄지면 재미없지!!“ 여신답지 않게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아마존의 일원으로 변장했다. ‘여’ 신인 그녀에게 쉬운 일이었으리라. “헤라클레스가 여왕님을 납치하려고 한다!!“ 큰 소리로 외쳤다. 루머는 진실보다 가볍기 때문일까? 거짓을 들은 아마존의 용사들은 헤라클레스의 배를 침몰시키려 했다.
“아, 그러면 그렇지. 속았다!“ 헤라클레스는 분노하며 맞서 싸웠다. 제우스의 아내는 아마 마치 아수라처럼 다시 서늘한 웃음을 터뜨렸으리라. 결국 여왕이 죽고 난 뒤에 철없는 소녀는 빛나는 허리띠를 감을 수 있었다.
열 번째 과업, ‘게리오네우스의 소떼’
“자, 이번에는 게리오네우스의 소떼를 몰아와라!“ 이제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에우리스데우스는 헤라클레스에게 열 번째 과업을 내던졌다. 이쯤 되면 눈치챘겠지만, 게리오네우스라는 자는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칼리로에와 크리사오르의 아들이었는데, 아마 아이큐가 못돼도 140은 되었을거다. 왜냐고? 머리가 셋이었거든! 그의 소떼는 에우리티온이라는 거인 목동과 머리가 두 개인 괴물 개 오르토스가 지키고 있었다. 이 괴물들을 맞서기 위해 헤라클레스는 또 한 번 모험을 겪었다. 리비아를 거쳐 에리테이아까지 가야 했으니까. 에리테이아에 대해 먼저 설명해야겠다. 그곳은 서쪽 끝자락에 있는 섬이었다. 거기 가려면 오케아노스를 거쳐야 했는데, 또 배가 필요했다.
“황금술잔 내놔!“ 마치 맡겨 놓은 것 마냥 헤라클레스는 리비아 사막을 지나며 티탄 신족의 태양신 헬리오스의 황금 술잔을 요구했다. 태양신이 술잔을 배처럼 타고 다녔기 때문에(아니면 술고래였겠지) 깡ㅍ.. 아니 영웅은 그것이 필요했다. 제 아무리 신이라도 히드라의 맹독이 발린 화살촉은 어쩔 수 없었다. “ㄷ... 드리겠습니다...!!“ 영웅은 ‘필요 없어’ 말하는 대신 웃으며 술잔을 배로 삼아 다시 한번 항해를 시작한다. “아, 여기까지 왔으니 흔적 하나 남기는 건 괜찮잖아?“
헤라클레스는 지브롤터 해협에 도착하자 아프리카와 유럽 쪽에 기둥 하나씩을 세웠다. 사람들에게 ‘내가 이만큼 왔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그리스 신화의 세계관에서 지브롤터 해협은 세상의 끝이다) 지금도 이 곳, 칼페와 아빌라 곶을 지칭하는 별명은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다.
마침내 에리테이아에 상륙했다. 그가 도착하자마자 환영인사가 시작되었다. 괴물 개 오르토스가 침입자를 알아본 것이다. “깨갱!“ 올리브 나무 몽둥이가 포물선을 그리자 똥개의 비명이 울려 퍼진다.
개 주인도 그와 별반 차이는 없었다. 방해 요소가 다 없어졌으니 영웅은 조용히 티린스로 소떼를 몰아가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하필 그 광경을 하데스의 소떼를 돌보던 메노이테스라는 목동이 보고 말았다. “소 도둑입니다!“ 아주 간결한 보고였다. 게리오네스 역시 앞에 나왔던 말 주인처럼 헤라클레스를 쫓아갔다. 아마 소식이 늦었던 모양이다. 헤라클레스는 안테모스 강 근처에서 갑자기 몸을 돌려 화살을 날렸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머리가 아무리 많아봤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대로 유명을 달리해버린 이 세 왕관의 주인공을 버려두고 헤라클레스는 귀환한다. “자, 잘 썼소. 아주 고맙군!“ 헬리오스에게 황금 술잔을 돌려주고 헤라클레스는 오늘날의 마르세유에 해당하는 리구리아에 도착했다. 거기 이알레비온과 데르키노스라는 형제가 있었다. 그들은 소떼를 뺏으려 했다. 하지만, 상대가 누구던가? 결국 리구리아 부대까지 가세할 수밖에 없었다.
전투가 얼마나 격렬했던지 영웅도 부상을 입었다. 하필 그게 다리였고, ‘이제 죽는 걸까’ 생각하는 아들을 불쌍히 여긴 진짜 아버지 제우스가 적들에게 퍼부은 돌비가 아니었다면, 정말 과업은 여기에서 끝났을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이번 과업도 완수하는구나’ 생각했을 헤라클레스에게 또 ‘그 여신’은 훼방을 놓았다. 헤라가 풀어놓은 쇠파리들은 그리스 연안에 도착한 소떼들을 괴롭혔고, 뿔뿔이 흩어지고 얼마 남지 못한 소들만 잡은 헤라클레스는 일부만 바칠 수밖에 없었다.
열한 번째와 마지막 과업, ‘헤스페리데스의 황금사과, 그리고 케르베로스.‘
“아 안돼. 돌아가. 바꿔 줄 생각 없어!“ 에우리스테우스는 말도 안 되는 꼬장을 부렸다. “솔직히, 아이게우스의 외양간은 강물을 틀어서 싹 치웠고, 거기에! 히드라를 죽일 땐 사촌까지 끌어들였다지? 과업은 혼자 해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다시 해!“ 왕은 인간의 몸으로는 결코 해낼 수 없는 과업, 즉 헤스페리데스의 황금사과와 저승을 지키는 문지기 개 케르베로스를 자기 앞에 갖다 놓을 것을 요구했다.
두 일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하얀 지면이 너무 작아서 더 쓸 수 없으니 궁금하신 분은 직접 검색하거나 도서관에 가보시길 바란다. 아, 꼭 마스크는 잊지 마시고.
헤라클레스가 ‘톰 형’은 아니었지만, 두 개 남은 과업들이 ‘미션 임파서블’이었던 이유는 영웅이 천당과 지옥, 다시 말해서 하늘과 지하세계까지 다녀와야 했기 때문이다.
살아서는 갈 수 없는 두 곳이었지만 그는 영웅 아니던가? 살아서 그 모든 임무들을 완수한다. 이후 그가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 필자보다 더 훌륭한 이야기꾼들이 많으니 그분들에게 나머지를 듣도록 하자. 다른 말은 차치하고, 12개의 과업을 끝낸 헤라클레스가 대단한 이유는 따로 있다. ‘보호하고 봉사하는 일’이 영웅의 일이라지만, 백화점 쇼윈도의 마네킹이 아닌 이상이야 그 역시 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크고 아름다운 올리브 나무 방망이를 ‘크게 휘두르며’ 홈런을 치고 싶은 것이 사나이의 마음이었으리라.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다른 선택을 했다. 변화구는 물론이고 ‘마구’까지 마구마구 던져대는 꼬장 대마왕 앞에서 그는 홈런을 치는 대신 ‘보내기 번트’를 하기로 했다. 꿋꿋하게, 묵묵하게 과업을 완수했고 그 덕분에 골칫덩어리를 해결한 사람들은 일상의 일들을 ‘진행’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나도 홈런을 치고 싶었어. 아니, 칠 수 있었어‘ 영웅은 말한다. 어쩌면 남이 하지 않은 일을 했기 때문에 헤라클레스의 이름은 먼 극동의 반도에서도 오늘까지 회자되는 것은 아닐까?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 크게 홈런을 내지르는 대신 조용히 방망이를 ‘톡’ 갖다 대며 다른 이들을 출루하게 만든 그였기에 우리는 헤라클레스를 ‘죽었지만 신이 된 영웅’으로 기억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