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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인간 Oct 17. 2020

‘누구냐’에서 ‘누구나’로

영웅 낯설게 읽기

"쓸데없는 거 사기만 해!"



 어렸을 적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몇 가지 있었다. 가령 만화책이나 비디오를 만화방에서 빌려보는 일, 오락실, 혹은 PC방에서 한 시간 넘게 게임하는 것. 혹은 문방구에서 사 먹을 수 있었던 불량식품을 사 먹는 행동 같은 것 말이다. 물론, 모든 집이 그런 일을 '쓸데없다'며 하지말라 하신 것은 아니었다. 아, 물론 뭐... 우리 부모님도...



 "야야, 이거야. 이거!"



 문방구에 가면 불량식품이 아니더라도 꼭 사보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수수께끼 책'이었다. 원래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법’이랬다. "하지만, 친구들이랑 같이 돈 모아서 ‘공동’으로 산 다음 돌려보는 건 괜찮지 않을까?" 누군가가 이야기를 했다. 다들 ‘좋은 생각이라’며 동의를 했고, 부모님이 덜 엄하신 집 친구들이 보관하는 것으로 해서 돈을 모았다.


없는 게 없었다.



 "아, 그래서 정답이 뭔데!"



 "다들 조용히 하고 자리에 앉아! 수업 종친 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러고 있니?"



 ‘밖에 나가서 손 들고 서 있으라’는 선생님 말씀에 손 번쩍 들고 기합을 받았는데도 우리는 히죽대기를 멈추지 못했다. 왜 그리 재미있었는지, 정답을 들으면 막상 다 아는 것이었는데도 문제를 들으면 '이게 뭘까?' 고민하게 만드는 수수께끼가 참 재미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쉬는 시간마다 퀴즈 대회를 자꾸만 열고 싶어 했다.



 사실 이 수수께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역사가 깊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수수께끼가 나올 정도였으니,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꽤나 이 퀴즈대회를 즐기셨던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수수께끼에 빠져들까? 다 아는 것을 ‘낯설게 하기 때문’이다.



 "누구세요?"



 "나야."



"네? 누구요? 처음 듣는 목소린데..."



 낯설다는 것은 보통 우리에게 경계심을 일으킨다고 생각하기 쉽다. 어느 날 밤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 뒤에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처음 가보는 길, 예제에서 보지 못했던 시험 문제 등 처음 보는 무언가는 불안함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수수께끼가 매력 있는 까닭은?



 하지만, ‘아는 것을’ 낯설게 할 때 통념은 뒤집힌다. 뻔한 것이 낯설게 될 때 독자들은 그것을 곱씹게 되고, 새로운 것을 면을 발견한다.




 '젊어서는 푸른 주머니에 은전이 들어있고, 늙어서는 붉은 주머니에 금전이 들어 있는 것은?' 정답은 ‘고추’다. '아침에는 네 발로 걷고, 점심에는 두 발로 걷고,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은?' 그래, '사람'이다.



 어디 수수께끼뿐이겠나? 신화와 영웅 이야기야 말로 ‘낯선 읽기’를 하기 최적의 텍스트다. 아예 영웅에 대해 듣지 못한 사람에게 그 자체가 낯선 텍스트인 것은 분명하고, 얼핏 듣거나 ‘그 자체를 읽기만 한’ 사람에게도 영웅은 여전히 ‘누구냐!’를 외칠 수밖에 없는 낯선 텍스트다.



 하지만, 성급한 결정을 할 뻔하다가도 끝까지 때를 기다리며 모욕을 참았던 오딧세우스를 떠올린다면, '나 진짜 화났어!' 분노했던 아킬레우스를 떠올리며 ‘아, 영웅 이야기는 내 이야기였네’ 하며 피식 웃는다면.


 


 온갖 현실의 부조리를 다 이기고 율도국으로 떠난 ‘아무개’ 홍길동을 생각하면서 '아, 나도 뭔가 해봐야지!'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느새 낯선 '누구냐!'의 텍스트가 이젠 당신과 나, ‘누구나’의 텍스트가 되었다는 증거일 테니까.



골방 하나만 내어 줄 수 없을까?



 혹시 그러면 방 하나, 당신의 사유 속에 작은 골방 하나 내줄 수 있지 않을까? 그거면 됐다. 영웅을 위한 ‘나라’는 없어도 된다. 당신의 마음, 그 한구석에 그를 떠올리며 다시 삶을 살아갈, 운명을 마주할 그런 여유 있는 공간 하나만 있다면 족하다.




 아, 부디 노병들에게 월세는 많이 받지 마시고... 당신도 이미 그들에게 빚지지 않았나? 이미 ‘누구냐’에서 '누구나'가 되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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