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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오리

말문 터진 물건 31

by 신정애

오리가 물가로 가고 있는데 저기서 땅콩이 달려오며 " 땅콩아 같이 가 "한다.

'쟤는 누굴 보고 땅콩이라고 그러지? 여기 어디 땅콩이 있나? 아닌데 - 요즘 이상한 애들이 많아.'

오리는 잠시 돌아보다 그냥 갔지.

' 어, 뭐야? 반가워서 큰 소리로 불렀는데 대답도 않고 가버리네.

아니, 땅콩 절반만 해가지고는 왜 부르는데 모르는 척하는 거야?'

" 야, 부르는데 왜 대답도 않고 그냥 가. 아닌척 둘러보긴 뭘 둘러봐. 너를 부르는 거야?"

"나 말이야? 난 땅콩이 아니고 오리인데? "

"뭐? 야- 이거, 이거 웃기네- 우와 자기가 오리래. 땅콩이 아니란다. 환장한다 환장해. "

뒤따라 오던 땅콩들도 몰려들어 한 마디씩 거들었어.

"ㅋㅋ 이야 너 착각이 아무리 자유라고 해도 그건 좀 아니다. 니가 어딜 봐서 오리냐?"

"하하하 얘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ㅋㅋ 지가 무슨 오리래? "

"아니야, 난 처음부터 내내 오리였어. 나보고 땅콩이라니,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야 눈 똑바로 뜨고 다녀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니가 해주네. 너나 눈 똑바로 뜨고 니 꼴을 잘 봐봐."


'어 그러고 보니 껍질이 진짜 땅콩이랑 너무 닮은 거 같아.

그래서 물고기들이 나보고 무시하고 오리들도 무시했나? '

갑자기 세게 머리를 한 방 맞은 듯 모든게 멍해졌어.


그래, 호두는 알 거야. 예전부터 내가 물고기들과 나란히 여기 있던걸 아니까.

"호두님 저 오리 맞죠? 제가 오리가 아니면 어떻게 물고기들과 같이 있을까요?"

"응, 그게 음 -그러니까 니가 좀 아기오리 같이 생기긴 했어도 원래는 땅콩이었던 거 아니었을까? 큼큼.

너한테서는 기름 냄새와 흙냄새가 항상 좀 났거든."

"아니 내 몸에서 흙냄새가 난다고요?" 오리는 눈앞이 더 깜깜해졌어.


"거봐 호두도 널 땅콩이라고 하잖아. 오리는 무슨 꿈깨라 꿈깨."


'이게 무슨 일이지. 말도 안돼는 일이 벌어졌어. 침착해야 해-- 가만 생각을 정리해 보자.'

'땅콩은 볼록 길쭉 땅콩모양인데- 어딜 봐도 나는 오리처럼 생겼지. 그래! 난 오리야.'

'그런데 나는 깃털이 없고? -- 아아악!! 몰라 몰라'

땅콩들은 정신을 못차리는 오리를 보며 더 놀려댔어.

"너 좀 귀엽다고 오리라고 불러주니까 진짜 자기가 오린 줄 착각하고 살았구나. 안타깝다야."

" 너 아직도 오리라고 생각하고 있지?"

"그럼 오리가 아니고 땅콩인걸 우리가 증명해 줄게. 이건 확실한 검증된 방법이야."

"너 엉덩이 까봐. 거기 딱 모아지는 꼭지 떨어진 자국이 있어. 그건 사람의 배꼽 같은 거지."

"우리가 땅속에 있을 때 뿌리에 매달려 있던 끈이 끊어진 자리야. 이게 있음 넌 빼박이야 "

건들거리며 땅콩이 몰아붙이자 오리는 덜컥 겁이 덜걱 났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궁금했어.

알고 싶었어. 진짜 나는 무엇이지.

떨리는 마음으로 오리 궁둥이를 살짝 들어 보여줬어.

"어디 어디 - 아이구야 여기 있네, 있어. 딱 있네. 유전자 검사 99.9% 땅콩과 일치!!! "

"하하하 그럼 그렇지. 어딜 봐도 땅콩인걸. 이제부터 아가야 넌 우리랑 같이 지내면 돼."

"얘들아 아기 땅콩이랑 재미있게 지내자."


하지만 오리는 아직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

그건 똥구였는데 땅콩에 붙어있던 줄기가 떨어진 자리라니?

믿을 수가 없었어.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빙글빙글 도는것 같았지.

오리는 혼자 있고 싶었어. 천천히 무리를 떠났어.

모두 떠나는 오리를 지켜보고 있었지.

놀려대던 땅콩들은 저럴 수밖에 없을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돌아올 거라고 믿고 기다려주기로 했어.


혼자가 된 오리는 생각에 지쳐서 잠이 들었어.

수많은 땅콩들이 뿌리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그 사이 작고 어린 자신이 있는 게 보여.

모두 알이 꽉 찬 늠름한 모습이야. 난 작고 못생기고 배 속에 땅콩알도 하나밖에 없어.

위에 주머니를 볼록하게 못 만든 반쪽이 미숙아야.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걸 어떡해-

갑자기 땅콩이 뿌리째 쑥 뽑혔어. 난 커다란 다른 땅콩들 뒤에 숨어 있었어.

여자 아이가 말했어.

"엄마, 요거 봐 아기 오리 같애. 너무 귀여워. "

그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어.

가만히 꿈을 되돌려 생각에 잠겼지. 그래 난 땅콩이었어!! 이제 기억이 나.

땅콩으로는 쓸모없었지만 작고 귀여운 오리가 되니 모두 귀엽다고 좋아해 주었지.

그렇게 오리가 되었지.

오리로 살려고 무진 애를 썼어.

물고기들이 너 뭐야? 이상해- 하는 것을 참고 사는 것도 힘 들었어.

이쪽도 저쪽도 아닌 채로 사는 건 진짜 할 짓이 못 되는 거지.

내가 땅콩인걸 아예 머리에서 지워야 했어. 그리고 영영 지워버렸다고 생각했는데 -


진짜 나를 찾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고 속이 시원했어.

오리는 아니 아기 땅콩은 자기를 땅콩이라고 불러줄 친구들을 찾아갔지.

아기 땅콩은 웃으면서 크게 말했어.

"내 배속에서 달그락 거리는 게 있는데 들어 볼래?" 땅콩이 구르자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났지.

"봐, 확실하지. 나 땅콩이야. 나, 배속에서 소리 난다고.

남들에게 들킬까 조심해서 사느라 너무 힘들었어. 이제 맘껏 달그락거리며 살 거야.

나를 땅콩이라고 깨우쳐준 너희들이 너무 고마워."

"와아아아 ------ "모두 박수를 치며 환호했어.

"다 같이 흔들고 뛰어!!" "굴러!!"

"달그락달그락 - 데굴데굴, 달그락달그락 " 땅콩 알이 껍질에 부딪히는 정겨운 소리.

엉덩이를 흔들며 맘껏 춤을 추었어.

나는 땅콩이었어. 난 땅콩이야 - 눈치를 안 봐도 되니까 너무 편하고 좋아.

가끔, 나도 모르게 혼자 오리걸음을 걸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내 흉내 내며 호두랑 땅콩들이 살금살금 따라오거든 - 모르는 척 앞으로 가다가

'하나, 둘 , 셋 ' " 우왁!! "

깜짝 놀라 우르르 자빠지며 " 우워 -악!! "

고함 소리도 똑같아. ㅋㅋ 우하하하 깔깔깔 이히히히히 --

배를 잡고 뒹굴며 땅콩땅콩땅콩 웃는 소리.

근데 정말 웃긴 건

그렇게 오리가 아니고 넌 땅콩이라고 검사하고 놀리고 난리 쳐 놓고선 지금은 모두 나를 오리라고 부른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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