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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애 Aug 14. 2024

수상한 쑤썬화

죽은 나무와 산 나무  3

남편이 수선화 알뿌리 1개를 가져왔다.  싹이 돋고 꽃이 필 거라는 기대로 화분에 심었는데 싹이 안 나와 썩었나 싶었는데 묻었을 때 그대로 꼼짝도 않고 있었다. 은행나무 화분 옆자리가 넉넉해서 살면 살고 아니면 할 수 없다는 맘으로 그냥 묻어 둔 채로 잊어버렸다. 

   

 이듬해 봄에 은행 화분에 이상한 싹이 자라 올라오는데 부추도 아니고 가늘고 긴 실파 같기도 하고. 혹시, 이게 수선화?  그렇게 싹이 난 수선화는 잎만 자라고 꽃은 피지도 않았다. 무슨 일만일까? 궁금하다가도 잎이 나면 져버리면 거기 뿌리가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겨울엔 추워서 내다보지도 않다가 따시다 봄이다 싶어 나가보면 영양부추처럼 자라 있어서 깜짝 놀라기를 몇 해를 반복했다.   

  

지금은 4월 초순인데 벌써 50센티 넘도록 자라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지고 자빠지고 난리다. 정상적인 수선화들은 꽃밭에서 이미 별 같은 노란 꽃을 피우며 자랑 질을 하고 있는데 자기 몸도 지탱을 못하고 술 취한 듯 널부러져 있으니 보기 흉해서 잘라 버릴까 하다가 그래도 봄이라고 신나서 자라난 잎들인데 꽃도 없이 몇 년째 저러고 있는 게 또 맘이 그래서 은행나무에 기대어 서 있도록 감아 줬다.


하지만 은행도 새잎이 나오고  점점 자라는데 함께 두는 게 좀 그런 상황이라 미안하지만 잎을 을 잘랐다. 주방을 지나던 남편이 이게 뭐지? 하는 걸 부추야 먹을래요? 했더니 느낌이 아닌지 아니 안 먹을 래 한다. 칫 안  속네 - 자른 잎을 그냥 버리기는 미안해서 유리컵에 꽂아 주방에 두었다.  

 

 그런데 진짜 너무 수상하다. 이걸 수선화라고 불러도 되는지도 모르겠다. 흙속의 알뿌리가 심을 때는 하나였는데 지금은 쪽파뿌리처럼 여러 개가 있지 않을 까싶다. 몇 해 겨울 동안 서로 새끼를 쳐서 말이다.  당장 파보면 되는데 그렇게 안 하고 있는 나를 보면 오히려 그 궁금증을 아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오늘부로 쑤썬화는 긴 여름날 동안 은행나무 아래 하안거 묵언수행에 들어가고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나는 그 아래 니가 있음을 또 잊고 은행나무만 볼 것이다. 비밀을 품고 흙속에 묻혀있는 너. 보물지도를 가진 나. 수상한 수선화? 아니 수상한 쑤썬화, 너는 또 흙속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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