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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애 Jul 31. 2024

몽 이

죽은 나무와 산 나무 2

 몽이는 우리 집에서 나고 자라 여덟 살이 되어 홀로서기를 결심, 독립시킨 자몽 나무다.


8년 전, 유백색 귀티가 나는 커다란 화이트 자몽 한 상자를 선물 받았는데, 그중 유독 더 크고 잘 생긴 하나가 터질 듯 부풀어 오른 씨앗을 품고 있었다. 싹이 날지도 몰라 - 반신반의하며 심었는데 기적처럼 두 개의 싹이 올라와 박수를 쳤다. 그중 하나가 건강하게 자라나 몽이가 되었다.

   

반지르르 두꺼운 잎의 톱니 같은 가장자리에 해가 비칠 때면 보석처럼 빛이 나서 넋을 놓고 들여다보았다. 몽이는 해마다 새 가지를 뽑아 올리며 더 큰 잎을 만들며 튼튼하게 자라났다. 함께 자라는 가시는 걸리고 찔려서 고양이 발톱 깎듯 잘라 주고 깍지벌레가 끼면 잎 하나하나 앞으로 뒤로 닦아주었다. 


새 잎이 나올 땐 하룻밤에 순식간에 커다랗게 자라 있는 게 놀랍고 거실로 들여놓으면 답답해하는 것 같아 좁은 베란다에 내다 놓고 빨래 널고 걷을 때마다 걸리고 찔려도 몽이니까 다 용서가 되었다. 오랜만에 집에 온 아이들도 몽이를 찾았다. 그렇게 몽이는 온 식구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애들 한참  클 때 작년 옷 못 입히듯 몇 년을 멀대처럼 자라서 화분 크기가 몽이의 자람을 따라가기 바빴다. 몸은 자라는데 꽃을 피우지 못하고, 화분도 좁고 키도 너무 자라서 땅으로 옮겨 심어줘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따뜻한데 살던 몽이가 영하의 겨울 추위를 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고심을 하다가 그래도 내가  매일 볼 수 있는 학교 화단에 몽이를 옮겨심기로 하고 교장선생님께 허락을 받았다.

   

 몽이가 떠나기 전날 저녁 나는 잎 하나하나 정성 들여 깨끗하게 닦고 시집을 보내듯 예쁘게 치장했다. 흙이 쏟아지지 않게 비닐을 감싸고 리본으로 묶어 거실에 들여서 마지막 밤을 몽이를 보며 같이 보냈다. 다음 날 차 뒷자리에 비스듬히 실린 몽이와 학교 가는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든 게 낯설겠지만 내가 옆에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하지만 몽이는 바로 옮겨 심지 못했다. 주무관님이 아직 날이 춥다고 3월에 화단에 옮기자며 여기 따뜻하다며 기계실 창고를 열더니 몽이를 넣고 냉정하게 문을 잠가 버렸다. 당황스럽기는 몽이도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봄 방학을 했고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몽이는 전기 소리만 들리는 깜깜한 창고 안에서 뭐 하고 있을까? 어리둥절하다 꿈을 꾸며 긴 잠을 잘지도, 나를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빨리 3월이 와서 몽이를 햇살 가득한 화단에 심고 아이들이 왁자지껄한 멋진 학교를 만나게 해 주고 싶었다.

 

드디어 몽이가 학교 화단에 옮겨졌다. 먼 남쪽 나라에서 와서 처음으로 땅에 뿌리를 내리는 날, 어두운 창고 안에서도 노랗고 여린 새 순을 키워낸 몽이가 밖으로 나왔다. 햇살이 너무 좋았다. 봄이 오는 화단에서 제일 예쁜 주인공이 된 몽이는 멋진 바위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쪼그리고 살았던 뿌리를 멀리멀리 활짝 펴고 새 잎을 커다랗게 달아 낼 것이고 겨울에는 이때 껏 해보지 않았던 잎을 다 떨어뜨리는 추위도 만날 거다. 앙상한 몸으로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는 것도 배우고 봄이 오면 새 잎을 만들어 낼 거다.  하얀 자몽 꽃을 피우고 향기로운 자몽 열매가 열리는 상상도 해본다.

몽이야 고마웠어. 나에게로 와줘서,  잘 자라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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