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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애 Jul 28. 2024

아카시아, 나의 아가씨야

죽은 나무와 산나무 1

 아카시아, 나의 아가씨야.  

학교 화단에서 손가락만큼 자란 아카시아를 발견하고 보석을 발견한 듯 설렜다. 그날 우리 집으로 온 아카시아는 조금조금씩  5년 동안 너무나 더디 자라 겨우 30센티 정도 작은 키로 애태우더니 다음 해에 갑자기 허리를 지나 가슴까지 폭풍성장을 해서 놀라게 했다. 뿐만 아니라 옆 가지도 나오고 가지마다 잎이 피어나면서 점점 더 균형이 잡히면서 늘씬하고 아름답게 자라났다.


하지만 아카시아의 비극은 집안에서 살다 보니 계절을 모르고 365일을 잎을 달고 있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아카시아 스스로 혼란에 빠진 듯했다. 겨울이 오면 잎을 떨어뜨리고 추위를 견디는 본능대로 살 수가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잃고 헤매었던 것이다. 그러더니 언제부터 고통스럽게 스스로 잎을 말리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보기 힘들어 겨울이 왔을 때 잎을 따 버리고 빈 가지로 살게 했다. 늘 아파트 안 인데 봄이 온걸 어떻게 눈치를 채는지 새잎과 가지가 돋아나서 천정을 뚫고 올라갈 기세로 자랐다. 껍질이 툭툭 갈라지며 거칠어졌다. 어른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자라고 있는 가지를 차마 자를 수는 없어서 강제로 당겨서 구부려서 자라도록 하는 학대도 마다하지 않고 했다.


아카시아는 마사이족처럼 엄청 큰 키와 단단하고 가는 몸으로 자랑스럽게 가지 끝에 털이 복슬한 새 잎들을 밀어냈다. 긴 입자루에 마주 나오는 병아리 혀 같은 작은 잎들이 아래부터 차례로 커지는 동그라미가 되었다. 베란다 창에 기대 서 있는 이 사랑스러운 아카시아를 아가씨야 라고 부르며 내 마음과 시간을 다 주었다.

아카시아, 나의 아가씨야 라는 시도 써줬다.


아카시아를 화분에 키우는 경우를 본 적도 없고 이런 속도로 자라면 집안에서 키우기는 곤란한데 - 원래 아카시아는 밖에서 자라는 나무인데?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내 말을 들은 걸까?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없어 보였던 끄떡없이 잘 자라던 아카시아가 점점 기운을 잃어 가고 있다는 것을, 화분 속이 잔뿌리가 기운을 잃고 섞어 죽어가고 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것을 알았을 땐 이미 늦었다. 물을 주고 흙을 넣어주고 애를 태우며 아침저녁 지켜봐도 더 이상 보슬보슬한 귀여운 새잎을 만들어 내지 않았다. 아카시아는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은 듯 점점 침묵해 갔다. 나도 마음을 비워 갔다. 아카시아는 잎을 다 떨어뜨리고 꼬장꼬장 마른 긴 몸만 남겼다. 미라가 된 아카시아를 뿌리만 잘라내고 거실 모퉁이에 세워두었다. 꼭대기를 수호천사가 앉았다. 

    

나 때문에 집 안에 갇혀 세상을 향한 그리움만 키운 나의 아가씨야, 잃어버린 계절에도 초록 잎들의 봄과 여름을 만들어 냈던 아름다운 너의 자태를 오래 추억할게.


아카시아, 나의 아가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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