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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이 May 05. 2024

나도 사랑하는 도시가 생겼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서울'

혼자 산 지 1년 6개월. 정확히 1년 하고도 반이 지났다. 주변에서 '자취 왜 시작했어?'라고 물으면 항상 이전 팀장님의 독설을 인용했다. '내 나이 때는 코 묻은 돈 아끼려고 하지 말고, 시간과 에너지를 아껴서 돈을 더 벌 생각을 해라,라는 팀장님의 말이 인상 깊어서요'  하지만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가장 큰 이유를 차지했던 건 보수적인 집을 피해 그때 만났던 남자친구와 미래의 남자친구들(?)과의 자유로운 연애를 위해서라는 걸. 그리고 그다음으로 큰 이유는 20대 후반이 되어도 끊이질 않는 엄마의 잔소리와 가족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신경질적인 소음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걸. 그래서 최근에는 자취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기도 한다. '내가 퇴근했을 때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자취한 지 1년 동안은 남자친구를 쫓아 서울 구경을 실컷 했다. 덕분에 사람이 붐비지 않으면서도 감각적인 카페와 바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들을 알게 되었고, 고등어 봉초밥이나 숙성회, 잠봉뵈르와 같은 먹어보지 못한 메뉴들을 경험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말로 '쫓아다녀서' 그랬던 건지, 모두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온전히 느껴본 적은 없었던 걸까. 내 머릿속엔 '이렇게 맛있는 것을 먹고 즐기기 위해서는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라는 생각이 가장 컸다.




그와 헤어지고 그와 함께 가고 싶었던 곳들을 나 혼자 다니기 시작했다. 마침 직장을 또다시 그만두게 되어서 프리랜서 일을 시작하기까지 일주일 정도 시간이 남았다. 잘됐다 싶어서 노트북 하나를 들고 열심히 서울 곳곳을 돌아다녔다. 빨간 벽돌의 주택가 사이에 숨겨진 아름다운 공간과 맛있는 음식들. 기분을 촉촉하게 만드는 노래가 온종일 나오거나 나무 냄새가 짙게 나는 책장에 책들이 한가득 꽂혀 있거나. 컬러와 모양이 다양한 가구들이 옹기종기 배치되어 있는 카페들. 돌미나리 향이 가득한 닭칼국수와 싱싱한 훈제 연어가 듬뿍 올라간 오픈 샌드위치, 입에 착착 감기는 마제소바 등 아끼는 사람들 입에 한가득 먹이고 싶은 맛있는 식당들. 순간을 온전히 느끼며 내가 숨 쉬고 있는 현재에만 집중하는 일. 서울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는데 비로소 혼자가 되는 법을 알게 되니 가능해졌던 걸까.



최근에는 퇴근 후 돗자리 하나를 가지고 혼자 노들섬을 향했다. 집에서 버스로 20분 거리에 한강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커플이나 친구끼리 온 사람들의 틈 사이를 비집고 혼자 돗자리를 펴고 누웠다. 마침 날씨도 많이 따뜻해져서 해가 지는데도 춥지 않았다. 팔뚝을 스치는 바람이 선선했다. 그렇게 해 지는 야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문득 서울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론 너무 치열해서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다정하다가도 불친절해서 내 감정을 날카롭게 만들고, 숨이 막힐 듯이 복잡해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 꽁꽁 숨고 싶게 만들지만, 조금만 호흡을 가다듬으면 서울은 정말 아름답고 풍성한 곳이구나.




요즘 자주 보는 유튜버의 브이로그가 있다. 약혼자와 뉴욕에서 동거하며 마케터로 근무하고 있는 한국인 '미나'는 뉴욕을 사랑한 나머지 뉴욕에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영상에서 그녀는 항상 '뉴욕이 너무 아름다워요', '제가 사랑하는 뉴욕'이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뉴욕이 그렇게 좋아?', '살면서 한 번쯤은 뉴욕에서 직장 생활을 해봐야 하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보스턴에서 살다 온 나의 지인은 뉴욕을 '미친 물가에 아득해지고 이상한 사람들이 많고 거리가 너무 더러운 곳'이라고 묘사한다. 나는 이것을 생각을 전환하면 되는 문제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각자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느끼는 기준이 다른 것이지 긍정과 부정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미나'에겐 '뉴욕'이 있듯이, 나에겐 '서울'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도시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했었는데 나에게는 아무래도 이제 서울이 그런 도시가 될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일까지는 하고 있으니 사랑하는 사람은 언젠간 나타나겠지. 뉴욕보다는 화려하거나 넓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서울을 사랑한다.


'나를 꼭 끌어안아줄 공간, 나에게 깊은 상처를 남길 공간, 내 영역을 침범하고 나를 잠들지 못하게 만들 공간, 그리고 내가 결코 잊지 못하게 만드는 공간' (Being Alive-Company 가사 인용/노아 바움백 감독 <결혼이야기>) 서울은 나에게 그런 곳이다. 어쩌면 모든 사랑은 모순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그것이 살아 있는 것이든 살아 있지 않은 것이든. 분명한 건 사랑하는 것들이 많아질 수록 인생은 조금 더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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