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과정은 다름 아닌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K작가님의 초중고대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독후감 글쓴이: 이작가
매력적인 사람을 만났습니다. 저와 성향이 비슷한 것 같아 어떤 삶을 지내 왔을지 더욱 호기심이 생깁니다. 밤을 꼬박 새워 그녀의 일대기를 듣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꽃으로 비유합니다. 씨앗에서 뿌리를 내리고 봉오리를 틔워내는 과정은 다름 아닌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씨앗
잉태되는 것, 탄생하는 것, 백일 그리고 일 년을 무사하는 것, 어떤 속도를 따라 몸을 굴리고, 기고, 앉고, 서고, 걷는 절차를 밟는 것, 그 하나하나만으로 부모에게는 감격입니다. 우리는 천연덕스럽게 귀여움을 차지합니다.
뿌리와 줄기
물론 그 시절의 기억은 무의식 속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는 씨앗이 스스로에게서 생겨난 것처럼 굴게 됩니다. 형제자매이든 친구이든 누군가와 나누는 것을 억울해하고, 부모님의 잔소리를 귀찮아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교복을 왜 크게 입어야 하느냐고요.)
하지만 돌아보면 그 모든 것들로 인해 뿌리가 내려지고 줄기가 자라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한편 돌이킬 수 없는 데서 오는 쓴 마음으로 잘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연애하고 싶다, 자유롭게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싶다, 어른이 되고 싶다, 는 청소년 국가의 국교 기도문 같습니다. 획일적이고 강제적인 교육 속에서 우리는 순응하고 반항하는 와중에 저마다의 즐거움을 찾아냅니다.
그러니까 그녀와 성향이 비슷할 것처럼 여겨졌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저도 미술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언니에 대한 동경인지 저의 꿈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언니도 미술을 하고 있었거든요. 게다가 두 사람이 미술을 할 만큼 집이 풍족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저도 어릴 때부터 그림은 곧잘 그려서 어째서인지 스스로도 모르는 채 (청소년 국가의 국민이었기 때문일 테죠) 억울해 하던 중에 (작가님처럼 한 번은 불태워보아도 좋았겠지만) 새롭게 꿈을 찾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건 아빠에 대한 동경인지 저의 꿈인지 헷갈리지 않을 만큼 확고했습니다. 아빠도 글을 쓰셨거든요. 게다가 함께 하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봉오리
그렇게 해서 글을 쓰는 일로 인해 잎사귀가 얼마만큼 풍성해졌느냐를 묻는다면 할 말이 별로 없습니다. 그 자체로 두말할 것 없이 멋진 일이지만 성과를 내지는 못했거든요. ‘아! 역시 나는 천재인 걸까!’ 하는 흥분이 가라앉자 아주 나태하고 방탕한 대학 시절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역시 이렇습니다. 그 시기가 벗어나고 싶은 시절이 아니라 뭔가를 기대하고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요. 꿈을 꾸기에 아주 적합한 때라는 것을요. 고리타분한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을 보니 저도 어른이 되긴 한 모양입니다. 작가님이 말한 대학 시절 꼭 해보아야 할 것들에 저 역시도 성취 사항이 몇 개 없는 주제에 말이죠.
다시 씨앗
물론 우리의 꽃이 이렇게 단 한번 피고 지는 것은 아니라는 데에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일이 늙고, 앓고, 죽는 것뿐이라고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겪어온 과정이 대하드라마이듯 앞으로 살아갈 날도 그러합니다. 그 힘은 이렇듯 회상에서 오는가 봅니다. 우리가 사랑받았던 기억, 꿈꾸었던 것들,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화려한 연극은 계속 되고 당신 또한 한 편의 시가 될 것입니다.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맞아 그랬지’ 공감하고, ‘나는 이랬어’ 비교하면서 작가님과 아주 돈독한 친구가 된 것처럼 가깝게 여겨지는군요. 그리고 저의 생을 촤르륵 펼쳐보다 보니 저 역시 하나의 꽃이 된 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