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매일 같이 나를 안고, 쇼파에 앉은 채로 잠이 들었다.
우리들의 초중고대 이야기 1씨앗 K작가이야기2
내가 어렸을 때, 그니까 조금 구체적으로 말하면 돌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나는 바닥에 내려놓으면 잠을 자지 않았다고 한다. 이불위에 내려놓는 순간, 전쟁이였다고 우리 엄마는 말한다.
눕기만 하면 세상이 떠나가라, 천장이 무너져라 우는 아이를 재우기 위해 부모님은 특단의 조치를 마련했고, 가장 큰 희생자는 우리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매일 같이 나를 안고, 쇼파에 앉은 채로 잠이 들었다.
아버지는 서울에서 교편을 잡고 계셨기 때문에 방학때만 온전히 지방(충청남도 공주)로 내려오실 수 있었는데, 방학 두달 간을 그렇게 주무셨다고 한다. 편히 주무셨을리가 없다.
물론, 나는 새근새근 잘 잤겠지.
“너는 어릴 때부터 속 어지간히 썩였어”
우리 어머니의 단골멘트다.
그러면 난
“아빠 품이 좋았나보지!”
하고 받아친다.
아버지에게는 긴, 어머니에게는 짧은 고등학교 방학이 끝나면 그땐 엄마가 매일 밤 나를 무릎에 앉히고 잠을 청했다.
“어쩜, 잠 하나 자는 데도 그렇게 까탈스러운지.”
오래된 사진첩 속에서 나를 안고 선잠을 자는 아빠의 모습을 발견했다.
얼마나 허리가 아팠을까, 우리 아빠.
비록 엄마 사진은 없지만, 엄마도 얼마나 고단했을까.
옆에 앉아서 함께 사진첩을 들여다보던 엄마는 이내 과일을 내오더니 한마디 툭-
던지고는 안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이렇게 애지중지키웠으니까 효도해! 샤넬 백. 알지?”
효도할게요.
실,국수 : 수명 장수한다.
대추 : 자손이 번성한다.
쌀 : 유복한 재산가가 된다.
떡 : 튼튼하고, 복이 많다.
돈 : 부(富)를 많이 모은다.
활과 화살(남아) : 무인이 된다.
칼 : 음식 솜씨가 좋은 사람이 된다.
자, 바늘 : 손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된다.
자(여아) : 바느질 도구로 길쌈에 능하다.
책, 먹, 벼루, 붓, 종이, 연필 :문장가가 되거나 공부를 잘한다.
출처 : 위키백과
우리의 첫 생일.
어린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에 어른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날.
우리에게는 화려한 잔치상과 형형색색 풍선들 사이에 뒤섞여 정신 없는 날.
다른 것도 다 좋지만, 역시 돌잔치의 하이라이트는 ‘돌잡이’.
마치 결혼식의 반지교환 혹은 신랑신부 행진과 같은 시간.
나는 실과 공책을 잡었다고한다.
물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고사리 같은 아이의 손이 그 위에서
거닐다 무엇하나를 짚으면 어른들은 좋아라 웃는다.
“실을 잡았으니 오래 살것어”
“공책을 집었으니 학자가 되겠군”
“돈이네 돈! 우리 손자 갑부가 되겠어”
그저 재미로 하는 것이 반. 정말로 손에 집은 물건이 상징하는 흥의 기운을 받아 아이 인생이 술술 잘풀렸으면 하는 마음 반.
‘무얼 잡던 어떠랴.’
라고 하면서도 은근슬쩍 부모가 원하는 물건을 쥐도록 유도하는 귀여운 모습도 본적이 있다.
하지만.
무얼 잡던 어떠랴.
공책 잡는다고 공부잘하는 거 아니더라.
다시 한번 말하는데, 난 공책 잡았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저기가는 저사람 비켜가세요
우물쭈물 하다가는 큰일납니다
따르릉 따르릉 조심하세요
울아버지 장에갔다 돌아오실 때
꼬부랑 꼬부랑 고개를 넘어
오색빛이 찬란한 것 타고 온다오
동요 ‘자전거’
지금은 이해할 수가 없지만, 그 어릴 적에는 가장 안정적인 세발 자전거를 타고도 그렇게 많이 넘어졌다.
어설프게 발을 굴리다가 이내 익숙해지면 마치 오토바이라도 타는 양
‘부앙부앙’ 소리를 내며 동네 골목 골목을 그렇게 쏘다닌다.
동네 친구가 한 번 만 타보자고 조르지만 절대 내어주는 법은 없다.
내가 전속력으로 뛰는 것보다 빠른 이 귀여운 아이에게 ‘씽씽이’ 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매일 아침 씽씽이를 타고 나가 하루종일 휘젖고 다니다가 해가 질 쯔음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에 들어온다.
가끔씩은 집에 있는 인형이나 로봇을 가지고 나와 내 뒷자리에 태우고 길을 나서면
괜히 내 뒤에 앉아 나만 의지하고 있는 로봇의 아빠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가을이 오고 가고, 겨울이 오고
하얗게 덮인 눈 때문에 씽씽이를 꺼낼 수가 없었다.
마당 한 켠에 얌전히 놓인 씽씽이가 보고 싶어서, 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얄밉던 겨울이 가고 반가운 손님, 봄이 왔다.
씽씽이는 전과 많이 변해 있었다. 매끈하던 몸통은 칠이 벗겨져서 얼룰덜룩했고
항상 날 받쳐주던 페달은 조금 뻑뻑해져 있었다.
‘씽씽이가 늙었어’
몇 주 후 아버지는 씽씽이보다 조금 큰 자전거를 갖다주셨다.
두 발 자건거였다.
씽씽이가 보고 싶었다.
새로온 아이는 씽씽이보다 몸집도 컸고, 너무 높았다.
체인 돌아가는 소리도 무섭고, 다리도 두 개 밖에 없어서 항상 날 불안하게 했다.
이제는 아빠가 잡아주지 않으면 거리에도 나갈 수가 없다.
씽씽이와는 금방 친해졌는데, 이 친구와는 친해지는데 오래걸릴 것 같았다.
매일 같이 자빠져 무릎이 까지고, 무서워서 중간에 내리기를 수십번.
나는 이 거대한 친구에게 나와 친해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줘보기로 했다.
아빠가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아빠는 잡고 있던 자전거를 슬며시 놓아, 온전히 나에게 맡겼다.
엇,
처음으로 나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나는 페달을 더욱 세차게 밟았다.
씽씽이와는 많이 달랐다. 더 많은 것이 보이고, 속도도 훨씬 빨랐다. 약간 멀게만 느껴졌던 페달과 나의 발도 어느샌가 완전히 밀착되어있었다.
‘이 녀석이 드디어 나의 몸에 자기를 맞춘건가’
친해지기 성공.
가까워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이 녀석은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나의 길동무가 되었다.
겨울이 오면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눈이 무릎까지 올라와도, 강가에 얼음이 깡깡 하게 얼어도
눈사람을 만들고 썰매를 타겠다고 기어이 밖으로 나갔다.
참 신기했다. 조그마한 눈덩이를 몇 번 살살 굴리면 금세 내 몸통만치 커졌다.
나뭇가지 몇 개를 주워다가 붙이듯 올려놓으면 나와 닮은 사람이 된다.
“아빠, 얘 집에 데려가자”
“얘는 집에 못 데려가”
“왜?”
“녹아서 안 돼”
그러면 나는 눈을 말똥거리며 말했다.
“냉장고에 넣어놓으면 되잖아”
겨울 이야기 - 이상현
겨울은
아이들 때문에 찾아온다.
알밤처럼
단단하게 여물어가는
목소리.
딱 벌어진
가슴으로,
눈싸움하는
개구쟁이들이 좋아
겨울은
언제나 눈송이를 터뜨린다.
불꽃처럼
사방에서 터뜨리는
그 눈밭에서
아이들은
날마다 깔깔대며 자란다.
제 키보다
큰 눈사람 만들 때,
제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그 겨울을 혼자서 굴릴 때
아이들은
부쩍부쩍 자란다.
1.
눈싸움은 정말 온 몸을 다 바쳐서 한다.
여럿이서 팀을 나누고 대장을 정하고 공에 맞지 않기 위해 성벽을 쌓는다.
하지만 이것도 적당히 쌓아야지 너무 높게 쌓거나 하면 상대방에서 태클이 들어온다.
그럼 눈싸움을 하기 전부터 싸움이 일어난다.
시작하기 전에는 꼭 나름의 룰을 정해 놓는다.
저 나무 이상 도망가기 없기. 눈 속에 뭐 넣지 않기. 한 번에 두 개 던지기는 없기 등등
하지만 모든 아이들의 놀이가 그렇듯, 룰은 금방 깨진다.
결국 게임은 단순 눈 던지기로 바뀌어버린다.
맞았다고 한 번에 죽는 놈 없고, 반칙도 일삼는다.
양동이에 눈을 잔뜩 퍼와 머리 위에 끼얹고 도망간다.
나는, 더 큰 눈덩이를 만들겠다고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간은 좀 걸리지만, 여기서 제일 강한 눈뭉치가 될 거야.’
하지만 그 때, 뒤에서 눈덩이들이 날아오기 시작했고
나는 급한 마음에 아직 완성되지 않은 덩어리를 집어던졌다.
꽤나 타격감이 클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무거워서 얼마 날아가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져 두 동강이 나버렸다.
해가 진다.
졌다고 씩씩거리며 집에 돌아가는 길.
감기가 들려는지 콧물을 훌쩍이면서도 내일 또 나갈 것을 다짐한다.
2.
어릴 적 내가 생각하는 겨울은 한 없이 따뜻했다.
하얀 솜뭉치 같은 눈이 소리 없이 나려 두텁고 보드라운 장판을 깔아주면
우리는 그 위를 저벅저벅 밟고 언덕으로 올라가, 깡깡 얼어 투명한 얼음이 된 곳을 찾아
포대자루와 엉덩이를 댄다.
그렇게 몇 번 씩이나 오르고 미끄러져내리고를 반복하다보면 어느샌가 나의 두터운 점퍼 속은 땀으로 흥건해지곤 했다. 그러면 아이들과 함께 헤진 포대자루를 다시 끌고 내려와 눈싸움을 하다가 헤어졌다.
돌아가는 길에는 항상 길거리에서 어묵을 파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주공 아파트 귀퉁이에 몇 백원 안하는 어묵을 파시곤했던 아주머니. 아주머니의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맛은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한다. 길고 오동통한 어묵. 그걸 딱 한 입 베어물면 뜨거워서 입술을 동그랗게 말아 이리저리 움직여 연기를 내뿜다가, 천정에 걸어둔 종이컵을 하나 쏙 빼서 국물을 가득 담아 마셨다. 어묵국물은 어쩜 그렇게 유난히도 뜨거운지, 혀를 데이지 않은 적이 없다. 혀 끝이 저릿저릿해서 느낌이 이상한데도 어묵국물은 뭘 넣었는지 항상 맛있었다. 그렇게 어묵 두 개를 헤치우고는 뜨끈한 국물을 들고 집에 돌아갔었다.
‘내일 또 사먹어야지’
이 생각에 한껏 들떠선..
ps.
이상하게도 지금은 길거리에서 어묵을 사먹으면 그 때 그맛이 나지 않는다.
내 입맛이 변한걸까? 어묵 맛이 변한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