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나도록 행복한 순간. 정말 감격스러운 순간
씨앗
눈물나도록 행복한 순간. 정말 감격스러운 순간. 그 모든 것에 감사한 순간.
그 순간의 시선은 모두 나에게로 향해 있지만 정작 나는 아무것도 기억나는 것이 없다.
-K작가의 이야기1-
어머니께선 아침 열한시 쯤에 내가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고 말씀하셨다.
길어질 줄 알았던 진통은 생각보다 짧았지만, 그래서 문제가 생겼다.
다리사이로 순풍- 하고 나올 줄 알았던 아이는 산모의 가슴으로 향했고 제 어미의 심장을 조여왔다. 비상이 걸렸고 방법은 제왕절개 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보호자인 아버지가 없다는 것.
당시 우리집은 지방이였고, 아버지는 일 때문에 서울에 올라가계셨다. 그 때 당시 아버지는 어머니의 진통 소식을 듣고 급히 내려오던 중이였는데 아직 도착을 못한 상황이였다. 헌데 제왕절개수술을 하려면 법적 보호자인 남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묻길
“그래서 어떻게 했어? 기다렸어?”
어머니 왈
“아빠가 언제 도착 할 줄 알고 기다려? 나도 숨이 막히는데.”
해결사는 외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산모의 어미가 여기있는데 법적 보호자가 무슨 소용이냐며
병원 측에 아주 완강히 따졌고, 결국 우리 엄마는 아버지 없이도 제왕절개수술을 진행 할 수 있었다.
“우는 소리가 너무 커서 다들 사내 얜 줄 알았어.”
뒤늦게 도착한 아버지는 어린 나와 어머니를 부여잡고 우셨단다.
지금도 가끔씩 어머니가 이런얘기를 할 때면, 나를 안고 울며 기뻐하던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궁금하다. 그 촉감을 느끼고 기억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나는 위의 이야기들 중 기억나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
나의 기억은 어제 쯤 트인 것일까? 이 글을 쓰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는데, 잘 모르겠다.
가끔씩은 마치 내가 잃어버리기라도 한 것 같은, 갓 태어난 태아적의 기억을 되찾고 싶다.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찬란한 순간일 것 같다.
아마도 그 순간은 울음범벅이겠지.
바래버린 색.
오른쪽 아래, 딱딱하고 반듯하게 박혀있는 날짜와 시간.
깨벗고 있는 아이.
아기 사진의 공식과도 같다.
그 누구든 이런 사진 하나 없는 사람은 없으리라.
어떻게 보면, 우리 인생 최초의 누드집인 셈이다.
어떤 포즈, 어떤 표정도 상관없다. 몸매가 날씬하던 우량하던 머릿털이 있건 없건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우린 벗은 아가의 몸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저 눈 속에 담긴 순수함을 보려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도 사람들은 정성스럽게 누드사진을 찍는다.
이제는 내가 업어드려야 하지만, 나도 이렇게 작아서 당신들의 품에 안길 때가 있었다.
사진 속 엄마 아빠는 젊지만 촌스럽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뽀글이 파마에 조영남안경.
바지는 왜이렇게 올려입은데다가 나풀거리는지. 머리는 왜 저렇게 촌스런 장발인지.
“왜 이렇게 촌스러웠데-”
하고 장난섞인 목소리로 말을 하면 되돌아오는 말은 항상 같다.
“저 땐 저게 제일 유행이였어.”
아빠는 동네 최고 멋쟁이였고, 엄마는 동네 최고 깍쟁이였단다.
우리 부모님들은 전부 멋쟁이에 공부도 잘했다.
그 시절엔 공부 못 한 사람이 없다.
논 메고 자습서 하나 없이도 반에서 10등 안에는 무조건 들었단다.
어디서 성적표를 구해 올 수 없나..? 항상 증거는 없다.
두 분 말이 서로 인기가 너무 많아서 피곤했다고 하는데, 사실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확실한건 젊은 시절이야기를 하시는 부모님의 눈에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그런 그 분들에게 자연스레 섞인 약간의 과장과 비약을 논해서 무엇하리.
그저 두 분의 추억을 함께 더듬어 올라가는 것에 만족하며, 나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세상을 느껴본다.
부모님의 어린 시절부터 두 분의 만남과 결혼까지의 스토리는 마치 일일가족드라마처럼
길고 소소한 맛이있다. 그 이야기를 안주 삼아 다 큰 아들 딸과 맥주를 기울이면, 밤은 금세 간다.
스토리의 막바지. 당신들의 옛 이야기는 매번 이렇게 끝을 맺는다.
“그랬었는데, 어쩌다가 너네 아빠 유혹에 넘어가선!”
그리곤 자연스레 술상을 치우는 어머니.
그럼 아빠는 아무말 없이 빙그레 웃으며 마지막 술잔을 들이킨다.
“마마.”
“파파”
정확한 발음도, 그렇다고 확실한 시선도 아니지만 이 말만 들으면 가슴이 떨렸단다.
태어나 처음 ‘말’ 이라는 것을 하는 너의 모습을 보며 껑충껑충 뛰었단다.
마마 라는 말이 한 번 더 듣고 싶어서, 너의 곁을 떠나지 못했고
마마 라는 말이 한 번 더 듣고 싶어서, 너의 앞에 앉아 “마마”를 따라 읊조렸단다.
파파라는 말은 조금 늦게 하더구나. 아빠가 조금 서운해 했을게야.
하지만 이내 너의 작은 입, 작은 이, 작은 혀로 “파파”라는 거대한 단어를 토해냈을 때
아빠는 처음 ‘마마’를 들었을 때의 나처럼 좋아했단다.
너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아빠는 너를 얼싸안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었단다.
나중이 되면 너에게, 네가 짊어지기엔 조금 버거운 많은 것을 요구하는 부모가 되어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저 ‘마마, 파파’ 한 마디에 감사할 뿐이란다.
단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앞으로 조금만 더 자주 그렇게 불러주겠니?
그것 하나 만으로 우리는 충분하단다.
웅얼대며 말똥말똥한 눈빛으로 우리를 봐주기만 하던 네가 이제는 우리를 부르는구나.
내가 쳐다보면 웃고, 내가 안아주면 편히 잠드는 구나.
이제야 비로소 너의 엄마가 된 것 같다.
이제야 비로소 너의 아빠가 된 것 같다.
네가 들려준 첫 음성은 영원히 잊지 못할게다.
절대 잊을 수 없는 명곡처럼, 너의 첫 마디는 우리에게 영원히 기억될게다.
너의 작고 여린 목소리가 오늘 밤 꿈에서도 계속 될 것 같구나.
내일 또다시 듣게 될 너의 목소리에 설레여하며 엄마와 아빠는 잠이 들려한다.
쌕쌕거리는 숨소리마저도 고운 우리 아가의 곁에서.
내일도 부탁한다.
“마마”
“파파”
“일어선다! 일어서”
“아이구 내 새끼!”
세상으로의 첫 걸음을 내딘 순간.
몸 뒤집기와 앉기를 거쳐 비로소 두 발로 서는 순간.
조금 서투르고 비틀비틀거려도 모두가 환호한다.
어설프게 내딘 한 발짝에 모두가 기뻐한다.
마치 에베레스트 정상에 발이라도 올린 듯, 우리의 작은 움직임 하나는 어른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결코 일어나는 과정이 쉽지 않음을 알기에.
‘걸음’ 이라는 것. 단순히 다리에 힘이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어깨와 다리를 이용한 뒤집기부터 시작해, 앉는데만도 통상적으로 약 두달가량이 걸린다.
그것도 처음에는 벽을 등에 대주고 손을 잡아주는 등의 훈련(?) 이 필요하다.
붙잡아주어서 앉고, 붙잡아주어서 겨우 서기만 몇 달이다.
넘어지고 엎어지며 나름의 짧은 우여곡절을 겪는 셈이다.
그 끝에 떼는 걸음마는 얼마나 달콤할까.
이제와 생각하면 어른들이 귀엽다.
바라는 것이 ‘걷는 것, 말하는 것’ 정도 밖에 안되다니.
어설프게 걷고 웅얼웅얼 중얼대는 말에 그렇게 기뻐했다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