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아홉시가 되면 나는 무섭다. 공포의 구구단이 시작되기 때문
줄기
-K작가의 이야기 6-
제일 무서웠던 것. 하나
“삼일은 삼, 삼이 육, 삼삼 구, 삼사 십이, 삼오....”
“삼오.”
“..십... 어.. 사...”
“다시.”
“삼일은 삼, 삼이 육, 삼삼 구, 삼사 십이, 삼오 십오, 삼육 이십.”
“쓰-! 다시”
엄마는 잠도 안잔다.
나를 옆에 뉘어놓고 9단을 몽땅 외울 때 까지는 잠을 재우지 않는다.
“엄마.. 나 졸려”
“그래도 해야지. 초등학생이 구구단도 못 외우면 어떡해?”
정말 졸린데 어떡해?
왜 항상 자기 직전에 이런걸 시키는 것야. 이런거 몰라도 친구들하고 노는데 아무런 지장도 없는데..
매일 밤 아홉시가 되면 나는 무섭다. 공포의 구구단이 시작되기 때문.
이것이야 말로 8살 인생 최고의 고비다. 나는 수학을 잘 못하는데, 심지어 뺄셈도 아직 헷갈린단말이야. 그런데 곱셈이라니? 나눗셈도 있다는데 그건 도대체 어떻게 해야돼?
내가 멈칫거리면 엄마는 가차없이 처음부터 다시를 외쳤다.
유치원 때 까지는 그저 먹고 자고 노는 것이 전부였는데, 초등학교에 들어오고 나서는 엄마가 이상하다. 계속 무언가를 외우라고 하고, 심지어 남의 나라 글자도 외우란다.
ABCD.... 이건 대체 왜 익히라는거야.
힘겹게 구구단을 외우고 나면, 엄마는 그제서야 나의 이불을 덮어주고 ‘이제 그만 자자’
한 마디를 뱉는다. 꿀 같은 말이다. 하지만 잠은 금새오지 않는다.
달빛에 비친, 허공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먼지들을 구경한다. 이상하게 밤에는 눈에 안보이던 것들이 잘 보이는 것 같다. 무언가 반짝반짝 거리기도 하고, 자그마한 무언가가 빛을 내며 천장에 떠다닌다. 먼지들은 그 사이로 넘실거린다. 그 작은 광경이 재미있어 한참을 보다보면
다시 한 번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만 자~”
엄마는 어떻게 눈도 안뜨고 내가 안자는 걸 알지.
신기하다. 분명 아무 소리도 안냈는데.
“잠이 안와.”
“어서 자야 내일 학교가지.”
“안 졸려-”
“너 구구단 또 외울래?”
.....
“아니요.”
그 때 당시 엄마의 최고 무기였다.
제일 무서웠던 것. 둘
엄마는 항상 하는 말.
“모르는 사람이 오라고 하면 절대 따라가면 안돼. 엄마랑 친구라고해도, 엄마가 다쳤다고 해도 따라가면 안돼. 엄마는 그런 일 절대 없어 알겠지?”
“응”
“모르는 사람이 어디 가자고 하면 어떻게 하라고?”
“싫어요.”
“아줌마가 엄마 친군데..”
“싫어요.”
“엄마가 다쳐서 아줌마가 너 데리러왔어.”
“싫어요.”
“자알했어!”
엄마의 오랜 훈련 덕분일까. 난 다행히도 별 일 없이 잘 컸다.
내가 어렸을 적에 학교에 이런 소문이 떠돌았다.
“김 아무개(정확한 이름이 있었는데 까먹었다.)라는 여자애가 있는데, 납치당해서 죽었데.
그래서 걔네 아빠가 너무 슬퍼서, 아이의 흔적을 돈에게 새겨놓았데.”
예를 들면 만원짜리 세종대왕의 옷에는 그 아이의 다리그림이. 어느 동전에는 그 아이의 손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지폐가 바뀌어서 없을 수도 있다.) 하여튼 그때 나의 눈에는 정말로 그림이 다리와 손으로 보였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정말 무서웠다.
나도 납치를 당하면 어떡하지? 나도 잘 못 돼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동네에서 혼자 놀고 있을 때였다.
어떤 아주머니가 나에게 다가와서는
“얘 꼬마야, 아줌마가 엄마 친군데 엄마가 아줌마보고 너 좀 데려오래.”
라고 말을 걸었다.
엄마에게 수없이도 ‘싫어요’ 말하기 수업을 받았지만 막상 실제로 그런 말을 들으니, 순간 멍해졌다. 항상 그랬지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고.
‘싫어요’ 라고 말해야하는데 그 말이 쉽게 나오질 않았다. 그저 멀뚱멀뚱 낯선이의 얼굴을 바라 볼 뿐이였다.
다행히 “싫어요!!” 라고 내뱆기는 했지만, 하마터면 멀뚱이 서 있다가 잡혀갈뻔(?)했다.
대체 벌건 대 낮에 그 아줌마는 왜 거기 서 있던 것일까? 정말 내가 상상하는 나쁜 아줌마였을까? 아니면 정말로 엄마에게 데려줘야할 아이를 착각한 걸까?
성인이 된 지금도 가끔 그 생각을 하면 조금 무섭다.
납치 이야기를 하니깐 생각난 이야기인데,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어떤 작은 일이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 고 항상 말씀하셨다. 하지만 어린 꼬맹이가 어떻게 거짓말을 한번도 안하겠는가. 실수였다 할 지라고 엄마한테 혼날 것 같으면 자동반사로 거짓말이 튀어나왔다.
한 두 번 하다보니 입버릇처럼 거짓말이 입에 붙어버렸고, 그러자 엄마는 당신 자식의 이 못된 습관(?)을 고쳐놓고자 집을 나가버리셨다.
말이 나간거지, 그냥 차를 타고 동네 한바퀴 마실 갔다오셨다. 어린 나에게는
“네가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해서, 엄마는 너랑 살 수 없어. 엄마는 거짓말쟁이랑 안살아!”
라고 말씀하시고 말이다.
집에 혼자있는게 무섭고, 엄마가 안돌아올까봐 무서웠던 나는 필사적으로 엄마의 차를 따라갔다. 하지만 엄마는 매정하게도 오히려 속도를 올리며 나를 두고 떠나갔다.
얼굴이 온통 눈물 범벅이된 어린 내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아파트 단지를 나와 거리로 나와있었다. 해가 진 하늘은 어둑어둑해서 가로등에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어린나에게 어두움은 또다른 공포로 다가왔다.
거리에서 우리 아파트까지는 먼거리가 아니였다. 성인걸음으로 5~7분정도?
하지만 거리도 어둠이 내렸고, 집까지 걸어가기가 무서웠던 나는 다급히 택시를 잡았다.
그리고는 무작정 우리집 주소를 대며, 택시 아저씨에게 데려다달라고 했다.
성인 걸음으로 7분 되는 거리를 차를 타고 가자니... 아저씨가 얼마나 황당하셨을지 참.
아무튼 아저씨는 울어가지고 얼굴이 퉁퉁 부어있는 어린 꼬맹이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집앞 주차장에는 금세 도착했다.
그리고 나의 진상도 이 때부터 시작됐다. 차가 주차장에 서자마자 나는 아저씨에게
나와 같이 집에 올라가달라고 졸랐다. 엄마가 집에 없는데 일찍 올것이니 그때까지만 같이 있어달라고 말이다. 정말이지 어린 것이 간덩이가 부어도 참 많이 부었다.
나는 그 때의 아저씨의 표정이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저씨가 하셨던 말씀은 정확히 기억난다.
“꼬마야. 아저씨는 너희 집에 들어가면 안돼. 아저씨는 일해야돼요.”
그 말을 듣고 더 울고불고 떼를 썼다. 얼마나 난감, 당황, 황당, 당혹스러우셨을까.
그렇게 몇 분간을 아저씨와 실랑이아닌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내 눈앞으로 익숙한 차 한 대가 들어왔다.
프라이드!!
순간 나는 속으로 ‘엄마다!’를 외치며 뒤도 안돌아보고 택시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여태 밖에 있었다는 사실을 들키면 엄마한테 또 혼날 까봐, 엄마가 주차를 하는 동안 현관으로 냉큼 들어갔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실소가 터져나온다. 성함도 얼굴도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지만
그 때 나를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신 택시기사 아저씨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친구들에게 이 얘기를 하면
“야 그 아저씨가 행여 나쁜 마음 먹었으면 넌 진짜 큰일 났어.”
라고 말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이들 대부분의 반응이다. 나쁜 마음 먹지 않아주셔서 감사하고 더불어 어린 진상 손님 친절히 받아주시느라 욕보셨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늦은 저녁에 얼마나 놀라셨을까..
참 그리고 그때, 택시비 못드려서 죄송합니다.
학교가 끝나면 항상 놀이터에서 뛰어놀곤 했다.
그네도 타고, 미끄럼틀도 타고, 뺑뺑이도 타고, 두꺼비집을 만들었다 부수며 놀았다.
그 때는 그것들이 롯데월드만큼, 아니 롯데월드보다 더 재미있었다.
무엇보다도 서서타는 그네는 그렇게 스릴있을 수 없다. 친구와 함께 누가 더 높이 올라가나 내기를 하기도 하고, 하늘에 닿을 듯 높게 올라간 그네위에서 뛰어내리기도 했다.
지금 같으면 혹여 발이라도 접지를까 무서워서 못 뛰어내릴 텐데, 그 땐 참 겁도 없었다.
시소는 합이 중요한데 항상 친구와 합이 안 맞았다. 그래서 시소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정글짐도 마찬가지였다. 올라가서 앉아있으면 끝이다. 딱히 존재의 필요성을 몰랐던 기구였다.
미끄럼틀에는 항상 다른 아이들이 많았다. 그러면 그 속에 뒤 섞여 놀곤했다.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데도 굳이 거기로 올라가지 않고, 미끄러운 미끄럼틀을 네 발로 기며 올라가곤했다. 미끄럼틀 옆에는 항상 굻은 밧줄로 이어진 경사진 나무판이 있었는데, 밧줄에 몸을 의지해서 그 나무 판을 밟고 올라가는 것도 재미있었다.
놀이터의 가장 핫플레이스는 아마도 ‘뺑뺑이’가 아닐까?
뻉뺑이를 굉장히 빠르게 돌리고 그 위에 있으면 하늘이 빙빙 도는데 그 느낌이 그렇게 좋았다. 뺑뺑이의 회전이 끝나고 땅으로 내려온, 비틀비틀거리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깔깔 대기도 했다.
놀이터는 나에게 추억 그 자체였다.
특히나 시골출신인 나와 친구들에게는 학교 앞이나 집 앞에 있는 놀이터가 세상의 전부였다.
사실 지금 보면 그렇게 기구가 많은 것도 아니고, 익사이팅할만한 것도 없지만 어렸을 적 우리에게 놀이터라는 공간은 마치 디지몬세계와도 같은 곳이였다.
나의 추억이 서린 이 공간이 영원히 이곳에, 그 모습 그대로 머물렀으면 좋겠다고 고등학교 때 즈음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대학에가고 처음 고향에 왔을 때, 나의 놀이터는 너무나도 많이 달라져있었다. 기존 놀이기구가 낡아서 그런 것인지 미끄럼틀과 뺑뺑이부터 전부 새것으로 교체했는데, 왠지 거리감이 들고 반갑지 않았다. 뭔가, 나의 오래되고 소중한 물건을 빼앗긴 느낌이었다. 시설은 더욱 좋아졌지만, 내 한 쪽 가슴은 시큰했다.
놀이터 주변에는 펜스도 설치되어있었다. 안전을 위해서 설치를 했겠지만, 그 역시도 반갑지 않았다. 내 어릴적 눈이 기억하는 그대로의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은 놀이터 한 쪽 구석에 있는 정자뿐이였다.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 100원짜리 싸구려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앉아있던 곳. 그 것만이 온전한 나의 것이였다. 오랜만에 찾아온 추억의 공간은 그 기억을 되짚으며 회상할 것들이 전부 사라지고, 낯선 얼굴들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때? 나 정말 좋아졌지? 라고 뽐내는 것 같지만, ‘좋아졌네..’ 라고 한마디 뱉기는 했지만, 나는 옛 친구가 그리웠다. 녹이 슬고 조금 삐걱거렸던 그 모습이 보고 싶었다.
그 안에서 뛰놀던 우리를 보고 싶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놀이터에서 놀지 않는지, 아이들이 많이 없었다. 황금시간인 토요일 오후인데도 아이들은 보이지 않앗다. 이젠 이런 놀이기구가 어린 아이들에게 식상해져버린 것일까?
이제는 모든게 변해버린 그 작은 공간 안에서, 너무나도 커버린 나를 느꼈고. 너무나도 멀어진 나의 추억을 느꼈다.
바닦에 깔린 모래를 한 움쿰 쥐어본다. 오래 전의 냄새가 나는 것 같다.
텅 빈 정자에 잠시 앉아본다. 구석에 버려진 아이스크림 봉지가 보인다.
누군가가 왔다갔구나. 놀다가 날이 더워서 정자에 누워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잠시 잠을 청하고는 갔구나.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아이스크림봉지를 보며, 난 잠시 미소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