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달차 타고 이사 가는 거야? 알았지?"
아침 일찍 어머니가 나를 재촉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짐을 챙기느라고
정신이 없고 나는 어린 여동생의 손을
꼭 잡고 옷을 갈아입고 이사 갈 준비를 했다.
큰 길가에는 우리 짐을 싣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1톤짜리 용달차 한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용달차. 짐도 싣고 사람도 탈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이른 아침부터 아버지와 친구들, 용달차 기사는
작은 장롱과 이불, 옷가지들이 차에 실었고
우리 가족도 그 차에 몸을 실었다.
1981년 어느 날, 딱 5살 때다.
정말 갑작스러운 이사로 기억된다.
익숙했던 공간을 떠나서
새로운 곳으로 간다는 것.
함께 놀았던 친구들을 떠난다는 것.
그런 것이 어린 나에게 충격이었다.
나는 엉엉 울고 있던 동생 손을 꼭 잡고
용달차 앞 좌석에 어머니와 함께 올랐다.
불과 22개월 차이로 당시 4살인 나의 여동생은
그런 변화가 어색한 듯 소리 내어 울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역말을 떠났다.
넓은 마당과 오두막에서의 추억,
계란 도둑, 꼬마 기차 소리와 안녕해야 했고
아버지와 함께 뒷산에 올라서
뻐꾸기 소리 듣고 산딸기를 따고
때론 내가 벌집을 건드려 벌들에게
쫓기던 그런 일과는 이제 안녕이었다.
용달차는 큰길을 달리다가
먼지 나는 비포장길로 달리기 시작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논과 밭이 가득한 작은 시골 마을에 도착해
짐을 내렸다.
짐이 많지 않았던지 금방 정리가 마무리되었다.
작은 방 한 칸이 우리 4 가족의 새로운 터전이었다.
역말보다 더 시골 마을인 말우물이라는 동네로
이사를 온 것이었다.
나는 항상 그것이 궁금했다.
왜 갑자기 우리 가족만이 이사를 했고
일자리가 있던 시내가 아닌
아무 인연이 없는 시골 마을로 들어왔는지.
어머니는 최근 그 답을 해주셨다.
집안에서 좋지 못한 일이 있었다고.
형제들 간의 갑작스러운 다툼.
아버지와 군대 휴가 나온 작은 아버지의 갈등이 있었고 큰 싸움으로 번졌다고 했다.
아마도 그것은 술이 문제였을 것으로 보인다.
어찌 되었건 더 이상 문제가 더 확산되고
싸움이 커져서 더 큰 불상사를 막기 위해
우리 가족이 이사를 택한 것이라고 했다.
더 이상은 얘기를 해주시지 않으셨다.
뭔가 불편한 이야기가 있는 듯했다.
그 이사로 내 삶의 배경은 말우물이라는
천안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내 삶에서 잃어버렸던 작은 조각들.
이제 하나둘씩 그 흔적이 보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