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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ynn Jul 20. 2024

참외와 아궁이

말우물의 여름과 겨울 풍경

내가 이사온 말우물의 여름은 풍요로웠다.

온 동네가 언제나 향긋한 과일 내음으로 가득했다.

초여름 수확하는 빨간 딸기부터 한여름의 수박과 참외. 가을로 이어지면서 사과와 포도가 가득한 마을이었다.

어린 시절 동네 논과 밭을 놀이터 삼아서 누비는 우리들에게 밭 일을 하시던 어르신들은 우리를 불러 직접 과일을 따서 건네주시기도 했다.

할머니도 밭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두 손 가득히 과일과 채소를 챙겨 오셨고 저녁 식사 후에 나와 동생들에게 후식으로 보기 좋게 잘라주시곤 했다.

오붓하게 가족들이 앞마당에 둘러앉아서 모기향을 피우고, 밤하늘의 별빛을 바라보며 참외를 즐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가을이 되면 동네는 바빠지기 시작했다. 격적인 추수철이기 때문이었다.

동네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과일 농사와 함께 벼농사를 지으셨고, 가을에는 항상 일손이 모자랐다.

마을 전체가 서로서로 품앗이하며 일손을 도왔고, 그렇게 봄부터 만들어진 황금빛 벌판은 풍요로운 쌀가마니를 농사꾼들에게 선물해 주었다. 우리 가족들도 비록 가지고 있는 밭이나 논은 없었지만, 품삯을 받으며 동네분들의 농사일을 도왔다. 때문에 가을이면 항상 밤늦게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벼농사가 마무리되면 겨울을 준비해야 했다. 늦가을이 되면 아버지는 도끼와 큼지막한 지게를 매고 동네 뒷산으로 향하셨다. 아버지는 해 질 녘이 되어 지게에 가득히 땔감을 채워오셨다. 쉬는 날마다 작업을 반복하셨다. 어느 정도 헛간이 나무로 채워지면 통나무들을 마당에서 잘게 조각으로 쪼개어 겨울을 준비하는 장작을 준비하셨다. 하나둘씩 장작이 모이다 보면 어느 순간 어른키 높이만큼 장작이 쌓였다.


그러면 바로 겨울이 찾아왔다. 추운 겨울이면 장작을 가지고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닥이 식을만하면 장작을 넣었다. 그 불로 난방도 하고 음식도 지어서 먹었다. 가마솥에는 밥이나 국을 지었고, 훈훈한 열기로 방은 종일 따뜻함을 유지했다. 나도 그때 처음으로 성냥 켜는 법을 배웠다. 그것을 활용해 장작에 불을 붙이고, 아궁이를 다루는 방법을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르쳐주셨다. 불을 붙이기는 것이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시간이 지나니 참으로 신기하게 몸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그 해 겨울이 깊어가면서 문제가 생겼다. 3개 모두를 장작으로 난방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공장을 다니고 있었기에 나무를 시간도 그리 넉넉지 않았다. 한두 번 겨울에 산에 올라서 나무를 얻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 것이었다. 이듬해 봄, 아버지는 3개의 중에서 2개의 방을 연탄보일러로 바꾸는 공사를 하셨다. 그러면서 나는 6살 생전 처음으로 연탄이라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는 혹시라도 연탄불이 꺼질 수 있다며 어린 나에게 연탄 가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한 칸, 두 칸으로 된 연탄 가는 법을. 다만 연탄집게 잡는 것이 쉽지 않았고, 뜨거워서 다칠 수도 있었기에 실제로 연탄 가는 것은 초등학교 입학 후에나 가능했다는 사실.


어찌 되었건 말우물에서 새로운 계절을 만나면서 이제 나도 초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는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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