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는 버스를 타고 30분 거리. 걸어서 간다면 약 1시간 정도가 걸리는 거리다. 설레는 마음으로 가슴에 이름표와 손수건을 달고 입학한 날.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어머니의 손을 잡고 갔는지, 할머니의 손을 잡고 갔는지 명확하지가 않다. 아마도 어머니가 일을 하고 있었기에 할머니와 함께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초등학교에 가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버스 시간에 맞춰서 나가야만 했고, 무엇보다 가장 슬펐던 것은 MBC 뽀뽀뽀를 볼 수 없다는 것. 일찍 버스를 타야했기에 텔레비전을 볼 수 없어서 학교가기가 싫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버스 요금은 60원. 종이 회수권을 사용했다. 어머니는 매일 같이 버스표 2장과 100원을 주셨다. 100원(지금 약 1000원)으로 간단히 과자나 떡볶이 같은 것을 사먹으라고 하셨던 것이었다. 그돈은 그 시절 내게 너무나 소중한 간식비였다.
입학하고 얼마되지 않은 어느 날.
내게 영원히 남을만한 에피소드가 하나.
아침에 버스를 타고 가는데,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내려서 빨리 학교 화장실로 달려갔다. 하지만 아직까지 학교의 재래식 화장실은 익숙하지 않았고, 그 내부도 너무나 더러워서 제대로 일을 볼 수 없었다. 여기저기를 헤매다가 결국에는 바지에다가 큰 일을 벌리고 말아버린 것. 바로 이 날이 내 생애 최초로 학생이 되어서 바지에 똥 싼 날이었다. 많이 챙피했다.
학교도 가야하는데 어찌할 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막막했다.
나는 학교 앞의 공중전화로 가서 가게 주인 아저씨에게 집으로 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했다. 3-2580(당시 전번은 5자리). 아직도 기억하는 우리집 전화번호다. 다행히 아버지가 집에서 전화를 받았고, 바지를 버렸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30분여를 기다리고 있으니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셨다. 가게 주인 아저씨에게 부탁하여 내 엉덩이를 닦고 준비한 속옷과 바지를 갈아입혀주셨다. 아버지는 가게 주인 아저씨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내 손을 잡고 교실로 향했다.
10시쯤에 쉬는 시간에 나는 교실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선생님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선생님은 괜찮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위로해주셨다.
솔직히 그날은 정말 내 인생 최악의 날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에 바지에 똥을 싸다니 아직까지 믿겨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사후 수습은 정말 잘 한 듯 하다는 생각. 그날 이후 나는 확실히 재래식 화장실에 적응을 할 수 있었다. 지금보면 웃을 수 있는 추억이었지만 성년이 될 때까지 남들에게 얘기하지 못했던 챙피했던 기억 중에 최고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