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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ynn Aug 15. 2024

8_피사에서 생긴 일

피사의 사탑과 피사에서 만난 파스타 맛집

"아빠 빨리 일어나요! 오늘 피사의 사탑 보러 가야지요!"

시계를 보니 아침 6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뭐가 그리 설레는지 아들 녀석은 아침 일찍부터 기대 가득한 눈빛이었다. 지난해부터 피사의 사탑을 보고 싶다고 수 십 번을 외친 아들. 결국 우리 가족은 아들이 희망하는 피사의 사탑을 보기 위해서 이번 여름 이탈리아로 오게 된 것이었다. 아들은 책에서만 보던 피사의 사탑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너무나 들뜬 듯한 느낌이었다.


우리가 머무는 피렌체에서 피사까지는 기차를 타고 약 1시간 정도가 걸린다. 호텔을 예약하고 가장 먼저 한 것이 피사로 가는 기차표 예약. 어른 2명에 아이 1명 총 3명의 편도 가격이 18.8유로였다. 자세히 보니 가족 할인 요금으로 아이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듯했다. 왕복으로 하면 약 38유로 우리 돈으로 약 6만 원 정도를 했다. 티켓 예매하면서 정착역을 확인해 보니 피사에는 2개의 역이 있었다. 가장 큰 Pisa Centrale와  Pisa. S. Rossore였는데, 피사의 사탑까지는 Pisa. S. Rossore가 가까운 듯하여 갈 때는 그곳까지 가고, 올 때는 시내 중심부를 걸어와서  Pisa Centrale에서 피렌체로 오는 일정으로 기차표를 예매했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에 피사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피렌체 중앙역으로 향했다. 며칠 동안 느낀 것이지만 피렌체 시내를 걸으면 어디를 가던지 중세 시대로 돌아온 듯한 풍경이 가득했다. 좁은 골목길을 걸으며 오래전 만들어진 마차길이 우리를 맞이했고, 유럽 느낌 가득한 건물들과 성당. 상점에 들어가도 과거 유럽 한복판에 있는 듯한 느낌. 마냥 신기하고 행복할 따름이었다. 역으로 가는 길에 만난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역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고딕 양식과 초기 르네상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성당으로 피렌체 대성당 다음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성당이었다. 이른 아침이어서 아직 문은 열지 않았는데 멀리 광장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 웅장함과 도도함이 느껴졌다.

여기저기를 구경하며 약 20분 정도를 걸으니 피렌체 중앙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 기차 시각은 9시 55분.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있어서 역 안에 있는 젤라토 집에서 아이스크림부터 살포시 먹고 하루를 시작했다. 플랫폼이 확인되자마자 서둘러 기차 타는 곳으로 향했다. 지역 노선이라서 플랫폼은 가장 안쪽인 왼쪽 끝에 있었다. 지정좌석제가 아니었기에 일찍 가야지만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다행히 마지막 객차로 가니 우리 가족 모두가 앉을 수 있는 여유 좌석이 있었다. 자리가 없는 사람들은 객차 중간의 임시좌석을 이용하거나 서서 가야만 했다. 열차는 약 3분 정도 지연된 9시 58분쯤에 피사를 향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차 밖의 풍경은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도시가 나오고 다시 산과 들이 나오고, 농작물과 건물 양식이 달랐을 뿐 우리나라의 기차 여행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1시간쯤 달려서 피사 중앙역을 지나고 다음으로 우리가 내릴 Pisa. S. Rossore역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11시 10분, 작은 역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렸다. 내리는 사람 대부분이 피사의 사탑을 찾는 사람들이었기에 그 사람들을 따라서 역을 나섰다.

역을 나오자마자 작은 길목길이 나왔다. 전혀 관광지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일반 주택가의 길목을 그냥 따라서 걸었다. 5분쯤 걸었을까? 주차된 차들 사이로 작은 골목을 도니 저 멀리 눈앞에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 오... 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비뚤어진 건물. 바로 피사의 사탑이었다. 흐릿했지만 분명 사탑이었다. 온몸에서 찌릿한 전율이 느껴졌다. 수십 년 동안 책이나 텔레비전에서만 봤던 그 건물을 눈으로 직접 본다는 것. 상상만으로 설레는 일이었다. 조금 더 걸으니 피사의 사탑 공영주차장이 나왔는데,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차를 타고 이곳을 찾고 있었다. 주차하는데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드디어 피사의 사탑 입구에 도착했다. 이 문만 지나면 실물 영접. 아들은 뭐가 그리 급한지 이미 문 안쪽으로 사라진 상태. 나는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며 그 뒤를 쫓았다. 많은 인파를 뚫고 드디어 입장! 진심 저 멀리 피사의 사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갸우뚱 기우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예전에는 계속 기울어져서 붕괴 위기라는 얘기도 들었는데, 이제 사람들이 오를 수 있는 것으로 봐서 보수 공사가 완료된 것 같았다.

 여기저기 내용을 찾아보니 피사의 사탑은 1173년 착공 시에는 완벽한 수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13세기에 들어서면서 탑의 기울어짐이 발견되었다. 그 이후에 수없이 많은 공사를 했고 현재 기울어진 각도는 약 5.5°. 다행히 기울기의 진행은 여러 차례의 보수공사로 멈추었다고 한다. 이렇게 기울어진 원인은 지반 토질이 불균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쪽의 토질이 상대적으로 부드러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기울어졌고,  이것으로 인해 지반에 대한 부담이 커지면서 침하가 진행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 것이다고. 1964년 이탈리아 정부는 피사의 사탑 붕괴를 막기 위해 세계에 지원을 요청했고, 30년 정도의 보수 공사를 통해서 현재는 완전히 안전한 구조체로 완성을 했다는 사실. 피사의 사탑 덕분에 지하 기반 공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현대의 고층건물에도 이런 공법이 이용된다고 한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수많은 사람들이 피사의 사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손으로 막는 사람, 손가락을 쓰는 사람, 발을 이용하는 사람. 인생 최고의 사진 한 장을 만들기 위해 여기저기에서 핸드폰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우리 가족 역시 아들을 위해 멋진 사진을 남겨주려고 열심히 사진 찍기에 도전. 그런데 주위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있다 보니 제대로 된 사진 찍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몇 장의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아들 사진 찍느라고 지쳐서 정작 아내와 나는 셀카 몇 장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정오가 지나니 날씨가 장난이 아니었다. 35도가 넘는 더운 날씨에 햇살까지 너무 뜨거워서 오래 서 있기가 어려운 상황. 우리는 근처 카페테리아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면서 피사의 사탑을 감상하기로 했다. 각자 원하는 음료 하나 주문하고 아무 생각 없이 피사의 사탑 감상하기. 이게 진정한 힐링이었다. 30여분 정도 피사의 사탑 앞에서 멍 때리기를 하다 보니 살포시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움직여야 했다. 지도를 살펴보니 우리가 예약한 피사 중앙역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다시 남쪽으로 향해야 했다. 대략적으로 역까지는 25분 정도 걸리는 거리. 시간이 충분하여 피사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빠르게 구글 검색을 하여 인근의 맛집 검색. 평점이 좋은 현지 식당이 근처에 있어서 그쪽으로 이동을 했다. 피사의 사탑에서 피사 시내로 가는 길은 깔끔하게 잘 정리된 길이었다. 다른 큰 도시와는 다르게 소박하고 편안한 느낌이랄까? 이탈리아 소도시만의 매력이 가득했다. 우리가 예약한 곳은 길가의 큰 식당이 아닌 현지인들이 찾는 식당이었기에 골목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야 했다. 12시 30분쯤 식당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놀랐게도 대기? 대기 번호를 받았다. 9번이었다. 맛집은 맛집인 듯했다. 대부분이 동네 주민들이었고 간단히 점심을 먹으러 온 듯했다. 그렇기에 좌석 순환도 빨라서 10분도 기다리지 않고 식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여기저기를 살피니 오래된 사진이 많이 붙어있었다. 오래된 맛집으로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먹는 오일 파스타와 토마토 파스타, 치킨과 오징어 요리를 시켰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았다. 곧바로 파스타가 나왔다. 한 입 먹었는데, 내 입 맛에 너무 딱 맞는 것이 아닌가? 마치 제대로 된 수제비를 먹는 느낌이었다. 쫄깃하고 간이 잘 밴 면에, 토마토와 올리브 소스가 잘 어우러져 있었다. 느끼함이 전혀 없었다. 실제로 내가 먹어본 파스타 중에 제일 맛있는 듯했다. 바로 한 접시를 더 주문했다. 집에서 라면 먹는 듯한 속도로 파스타를 한 입에 먹어버렸다. 주인분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 신기한 듯, 우리 자리로 와서 이것저것을 물어보고 파스타 맛있게 먹는 방법도 알려주셨다. 오징어는 조금 짜긴 했지만 파스타와 함께 먹으면 나름 매력이 있었다. 후식 또한 샤르르 녹는 그 맛. 평생 잊을 수 없을 정도였다. 가격도 전체가 40유로가 되지 않았다. 한국 일반음식점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한국의 이태리 레스토랑이었으면 그 2배의 가격이 나왔을 것이다. 나오면서 주인아저씨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고 우리 가족은 즐거운 피사에서의 점심 식사를 마쳤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피사 중앙역으로 향했다. 식당에서 약 30분 정도 걸어야 하는 거리. 근데 걸어오는 길 자체가 너무 예뻤다. 전형적인 유럽의 모습. 도심 사이로 흐르는 강과 양 옆을 가득 채운 예쁜 건물들. 그 색깔의 조화가 내 눈을 행복하게 했다. 잠시 다시 한가운데에서 하늘을 보면서 여유를 즐겼다.

다리를 건너서 피사의 메인 스트리트를 걸었다. 다양한 상점들이 길 양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로마나 피렌체와는 다르게 소박한 상점들이 많았지만, 그 아기자기함이 또 다른 매력이었다.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아서 눈으로 쇼핑하기에는 완벽한 그런 쇼핑 거리였다. 조금 더 걸으니 중앙역 앞의 큰 광장이 나왔고 바로 중앙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2024 파리 올림픽 때문인지 역 앞에는 혹시나 모를 테러 방지를 위해 중무장한 장갑차와 군인들이 몇몇 보이기도 했다. 아들은 이런 모습이 신기한 듯했다.

우리는 일찌감치 역 안으로 들어와서 피렌체로 가는 기차를 기다렸다. 플랫폼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열차를 기다렸다. 피곤해서인지 잠시 의자에 기대서 잠을 청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아들이 나를 깨웠다. 기차가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저 멀리서 피렌체로 향하는 기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서둘러 짐을 챙겨서 기차에 올랐다. 다행히도 피렌체로 향하는 기차는 자리가 여유로웠다. 여기저기 빈자리가 많았기에 우리 가족은 편안하게 4개의 자리를 잡아서 피렌체로 향할 수 있었다. 오후 4시 정도가 되어서 우리 가족은 다시 피렌체 중앙역에 도착했다. 자주 들리다 보니 피렌체역이 너무나 익숙해진 느낌. 그냥 웃음이 나왔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오는 길에 보았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앞을 다시 지났다. 사실 시간이 있어서 성당 안쪽을 구경하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오늘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확인해 보니 성당에서 결혼식이 있다는 것. 특별한 날을 축하하려는 신랑신부의 가족, 친지들이 성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것만으로 너무나 낭만적으로 보였다. 잠시 결혼식 준비 과정을 지켜보고 발길을 숙소로 옮겼다.

숙소에 들어와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조토의 종탑을 둘러보고, 피렌체 중앙시장에 들러서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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