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사의 사탑 여행을 마치고 다시 피렌체로 돌아온 우리 가족.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숙소로 들어왔다. 며칠간 이어지는 더운 날씨 때문인지 아이와 함께 하루 종일 돌아다니기가 쉽지 않았다. 호텔에서 아이와 함께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냉장고에 고이 모셔둔 맥주 한 잔. 갈증이 한 방에 풀리는 그런 기분이었다. 내일 오전에 다시 로마로 떠나야 하기에 오늘이 피렌체에서 보내는 마지막 저녁. 여기서 마무리하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오후로 예약한 조토의 종탑을 오르기 위해 우리 가족은 다시 호텔을 나섰다. 숙소에서 두오모 성당까지는 걸어서 5분 컷. 천천히 주변 구경하며 걷다 보니 조토의 종탑이 눈앞에 나타났다. 오늘은 이 녀석을 올라야 한다.
조토의 종탑은 피렌체 대성당 공사 책임자였던 아르놀포 디 캄비오가 1302년에 사망하고 30여 년간 공사가 중단된 뒤, 1334년 유명 화가였던 조토 디 본도네가 설계하여 만들기 시작한 종탑이다. 하지만 그 당시 조토의 나이가 67세였기에 공사를 마무리짓지 못하고 죽게 된다. 조토가 죽은 후 제자 안드레아 피사노가와 팔렌티가 1359년에 완성하게 된 종탑이다. 두오모 성당과 함께 피렌체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종탑 안쪽으로 이어지는 계단 414개를 걸어 오르면 종탑 꼭대기에 오를 수 있고 그곳에서 피렌체의 전경을 볼 수 있는 특별한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 가족은 어제 두오모 성당이 이어서 오늘은 조토의 종탑을 오르기로 했다. 입구에서 티켓을 확인하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늘은 아들 녀석이 가장 앞장을 섰다. 중세 계단을 오르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는 것. 나와 아내는 아들 뒤를 따라서 열심히 계단을 올랐다.
다행인 것은 조토의 종탑은 오르는 동안 중간중간 쉼터가 있었다. 약 3번 정도 탁 트인 공간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시원한 피렌체의 바람이 우리의 땀을 식혀줬다. 잠시 그 공간에서 쉬어가면서 땀도 식히고 조금씩 바뀌는 피렌체 시내의 풍경도 감상했다. 그렇게 쉬엄쉬엄 오르다 보니 크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지막 쉼터 공간까지 오르는데 약 20여분 정도가 걸렸다.
그리고 마지막 공간에서 전시된 청동 종. 매 시간마다 울리는 멋진 종소리가 여기서 시작되는 듯했다. 이제 끝이 보인다. 조금만 오르면 정상이다. 힘차게 달려가는 아들 녀석 뒤를 따라서 조금 더 오르니 한 줄기 환한 빛이 들어왔다. 정상에서 들어오는 환한 햇빛이었다. 이제 다 올라왔다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저 멀리서 두오모 성당의 첨탑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두오모 성당 너머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서 주위 풍경을 둘러보고 있었다. 오늘도 아들 녀석은 손을 들어서 반대편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서너 명이 두오모 성당 정상에서 우리를 보며 손을 흔들어졌다. 아들은 신이 난 듯 두 팔을 들어서 그들에게 화답을 해줬다. 어제 오후에 두오모 성당 꼭대기에서 보았던 풍경과 비슷했지만 나는 조토의 종탑 위에서 보는 풍경이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두오모 성당을 하늘에서 눈으로 담을 수 있었기에 정말 잊지 못할 장관이었다. 우리 가족은 사방으로 이어진 조토의 종탑 전망대에서 다시 한번 피렌체를 전경을 즐겼다. 다시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연신 휴대폰을 셔터를 눌러가며 여기저기 사진을 담았다.
그리고 이제 내려가야 할 시간. 다시 아쉬움을 뒤로하고 조토의 종탑을 내려왔다. 역시 내려오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제에 비해서는 오늘이 훨씬 수월한 느낌이었다. 왕복 45분 정도가 걸렸다.
다음으로 우리가 들린 곳은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 두오모 성당 동쪽에 위치한 현대식 박물관으로 박물관 내부에는 두오모 성당의 파사드를 그대로 옮겨놓은 원본 석상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성당을 지을 당시의 작업 도구와 유지 보수 장비까지 두오모 성당과 관련된 모든 것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성당을 운영하면서 주교들이 입었던 옷들과 여러 가지 그림들까지 두오모 성당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었다. 사실 이 자리는 1296년 대성당의 건설을 담당하는 오페라 델 두오모 (Opera del Duomo)라는 기관이 있던 자리로, 건설현장에 투입되는 감독관과 예술가, 인부들이 이용하던 건물이었다. 그때의 이름을 활용해서 지금은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으로 불린다고 한다.
박물관을 둘러보니 이제 슬슬 배가 고팠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푸드코드가 그리워졌다. 그래서 피렌체의 푸드코드가 있는 중앙시장을 찾았다. 두오모 성당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가죽 시장이 있었고 그 중간쯤에 있는 2층 건물에 푸드코드가 있었다. 우리 가족은 자리를 잡고 한국식 통닭 세트를 시켰다. 양념이 된 인도식 볶음밥과 감자가 세트로 나왔다. 그리고 시원한 맥주와 음료수도 시켜서 피렌체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먹었다. 매일 같이 파스타와 피자만 먹었는데, 오랜만에 이런 음식을 먹으니 느끼함 없이 속속 소화가 되는 느낌. 진심으로 맛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 다시 피렌체 거리를 걸었다. 피렌체의 마지막 저녁. 너무나 아쉬웠다. 내가 다녀본 도시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피렌체가 아닐까라는 생각. 걷는 것만으로 행복한 도시였다. 지나가는 길에 길 위에 그림을 그리는 분을 봤는데, 거리의 화가였지만 그 실력은 대단했다. 예술의 도시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숙소에 들어와서 창문을 열고 마지막으로 거리를 살폈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우리 가족의 피렌체 마지막 밤은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