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로 떠나는 기차 시각이 12시 40분이었기에 피렌체를 즐길 오전 시간이 남아있었다. 호텔에서 짐을 정리한 후에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피렌체 거리로 나왔다. 길가에 펼쳐진 아기자기한 상점들을 둘러보며 작은 아쉬움을 달랬다. 자그마한 기념품부터 편안한 옷가지까지 피렌체 냄새가 물씬 나는 물품들을 몇 가지 구매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며칠 동안 도전했다가 실패했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Chiesa di Santa Maria Novella)으로 향했다.
피렌체 역 바로 앞에 위치한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을 다시 만났다. 이곳은 도미니크 수도회 사람들이 1279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357년에 완공한 피렌체의 대표 성당이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 작품들이 가득한 보물창고와 같은 공간이다. 성당 전체적으로 고딕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정면의 기하학적인 패턴과 아치형 입구, 뾰족한 창문과 내부를 수놓은 스테인글라스 등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넓은 실내는 T자 모양으로 설계된 구조였으며, 그 길이가 100m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중간중간에 여러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마사초의 삼위일체(1427)가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했다. 스테인글라스는 14세기와 15세기에 제작된 것으로서, 15세기의 '성모자상' 그리고 '성 요한과 성 필립보' 등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성당 안쪽을 장식하고 있었다. 사실 보는 것만으로 중세로 들어온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그냥 모든 것이 놀라웠고 뭔지 모를 시간의 엄숙함이 나를 짓눌렀다. 시선을 따라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작은 문이 있는 왼쪽으로 나오니 수도원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다. 설명을 들으니 우첼로와 그의 문하생들이 그린 프레스코화가 남아 있었는데, 마치 고대의 암벽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멍하니 그림을 지켜보고 있자니 나의 영혼이 그림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쉽게도 기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수도원의 정원을 마지막으로 다시 호텔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호텔에서 짐을 챙겨서 피렌체 기차역으로 왔다. 그리고 다시 로마행 기차에 올랐다. 로마로 가는 기차는 연착 없이 정시에 출발하고 도착했지만 한 가지 문제는 바로 짐이었다. 기차에 오르는 대부분이 만석이었고 우리의 짐을 넣을 공간이 없다는 것. 하는 수 없이 여기저기 객차를 이동하여 겨우 짐을 좌석과 좌석 사이에 겨우 짐을 넣을 수 있었다. 짐이 많다는 일찍 기차에 올라서 짐 놔둘 공간부터 챙기길 추천하고 싶다.
우리 가족은 다시 로마 테르미니 역에 도착했다. 모레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야 하기에 이번에는 역에서 가까운 숙소를 잡았다. 운이 좋아서일까? 도착해 보니 룸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시켜주셨다는 사실. 2개의 방이 있는 스위트로 우리 방을 지정해 주셨다.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 웃음이 나왔다. 방으로 올라와서 짐을 풀고 나니 슬슬 배가 고마웠다. 특히 밥이 너무 먹고 싶었다. 며칠 동안 피자와 파스타, 고기만 먹다 보니 밥이 그리워진 것은 당연했다. 호텔 근처에 있는 중국 음식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오랜만에 볶음밥과 소고기 볶음 등을 시켰다. 인당 볶음밥 하나씩~. 너무나 행복했다. 역시 한국인은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호텔에서 휴식을 취했다. 대낮의 기온이 여전히 36도 정도였기에 낮에 로마 시내 한 복판을 아이와 함께 걷는다는 것은 무모하게 느껴졌다. 대략 7시 정도 해가 저물 때까지 시원한 호텔 에어컨 밑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7시 정도에 다시 로마 시내로 나갔다.
오늘 저녁 우리의 목적지는 콜로세움. 야경을 꼭 봐야 한다고 해서 그곳으로 향했다.
구글 맵으로 거리를 확인해 보니 걸어서 약 25분 정도. 택시를 타기에는 너무 짧은 거리였다. 그래서 아들 녀석의 손을 꼭 잡고 해가 지고 있는 로마 시내를 걸었다. 큰길을 따라서 쭉 직진하다가 좌회전. 저 멀리 콜로세움 비슷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난 것으로 보아서 그곳으로 가는 길이 맞는 듯했다. 그렇게 5분 정도를 더 걸었다.
그곳에서 만난 콜로세움. 사실 내일 오전에 들릴 예정이었지만 밤에 늘려서 오늘 꼭 야경을 보고 싶었다. 해가 질 즈음 콜로세움을 야경을 보려는 사람들로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잔디밭에 누워서 노을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 가족도 열심히 핸드폰의 사진 셔터를 눌러보았다. 이리 찍고 저리 찍고. 근사한 몇 장의 인생 사진을 남겼다. 해가 지면서 잠시 후 콜로세움에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영화 속에서 보던 그런 장면이 눈앞에 그대로 펼쳐졌다. 주황색 조명이 콜로세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바로 로마를 상징하는 최고의 야경이었다. 은은한 빛깔이 좋았고, 뭔가에 설레는 사람들의 눈빛이 좋았다. 이것만으로 로마에 온 본전(?)을 뽑은 느낌이었다. 진정한 로마의 매력이었다.
내일은 콜로세움을 들려서 포로 로마노를 들릴 예정이다. 로마에서의 마지막 날. 내일 기약하면서 우리는 다시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