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반 탈출과 혼자 공부하기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날 즈음,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문과를 갈 것인가? 이과를 갈 것인가? 고등학교에 와서 처음 접하는 선택의 갈림길이었다. 다들 고민이 많았지만 나의 선택은 단순했다. 수학과 과학에 관심이 많았기에 바로 이과를 택했다. 한 학년 9반 중에 6개는 이과반, 3개를 문과반으로 나눠서 2학년 반 편성이 되었고 나는 2학년 7반에 배치가 되었다.
나의 담임 선생님은 국어를 담당하는 장 00 선생님. 학교에서 가장 착하고 순하기로 유명했던 선생님이었다. 대학시절 승려가 되려고 했지만 어떤 인연에서인지 국어 선생님이 되었다는 소개 멘트. 첫인사에서 뭔가 특별함이 느껴졌다. 다른 선생님들처럼 강압적이고 폭력적이지 않았고 학생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어주시는 그런 면이 너무나 맘에 들었다. 학교 선생님 중에서는 아웃사이더였지만, 가끔씩 제자들에게 전해주시는 따뜻한 말씀은 사춘기 우리들에게 큰 울림이 되곤 했다.
2학년에 되어서 담임 선생님께 가장 먼저 부탁한 것은 특별반의 탈퇴였다. 학교에서는 성적이 좋은 50여 명을 모아서 1학년 초부터 특별반을 만들었는데, 나는 그 수업이 싫었다. 매일같이 저녁 9시까지 특별반 수업을 들어야 했고, 행복은 성적순이라고 하는 특별반 담당 선생님들의 말씀도 내 맘에 들지 않았다. 특별히 내게 도움이 되지 않고, 성적에 대한 강박과 함께 내게 반항심만 키워주는 그런 수업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당당히 특별반에서 빠지고 싶다고 선생님께 부탁을 했다. 담임 선생님은 조금 망설였지만 학년 주임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특별반에서 빼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셨다.
덕분에 나는 야간 자율학습 없이 오후 4시 50분에 학교를 나설 수 있었다. 밤늦게까지 공부하지 않아서 좋았고 오는 길에 공공 도서관에 들려서 책도 맘대로 읽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특별반에서 국어와 영어, 수학을 공부하는 대신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을 보고 그날 배운 과목을 복습하는 것으로 공부를 마무리하고 8시쯤에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들과 떨어져서 완벽한 아웃사이더가 된 것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중간고사 성적이 상당히 올라갔고 급기야 1학기 최종 기말고사에서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2학년 1학기 최종 시험 평가에서 우리 반 최고 성적을 거둔 것을 넘어서 전교 최고 점수를 받은 것. 1학기 통합해서 전체 3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성과였다. 내 생애 가장 높은 성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주위 시선은 그리 좋지가 않았다. 혼자서 무슨 특별 과외라도 받는 것이 아니냐는 떨떠름한 분위기. 금방 성적이 떨어질 것이라는 웅성거림이 가득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도 나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냥 운이 좋았다는 분들이 다수였다. 내가 아웃사이더였기 때문이었다. 나를 격려해 주는 칭찬해 주는 것은 오직 담임선생님뿐이었다. 따뜻한 담임선생님의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사춘기 나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때 성적을 최고점으로 해서 나의 성적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부모님은 선물로 내게 386 PC 한 대를 사주셨고, 나는 그때부터 하이텔이라는 PC통신에 빠지게 되었다. 매일매일 밤늦게까지 PC통신을 즐겼고 대신 공부는 소홀해졌다. 그리고 또 하나의 원인은 당구였다. 고등학교 2학년 말부터 공부한다는 핑계로 독서실을 다녔는데, 절친한 친구 녀석이 당구를 내게 가르쳐졌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당구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리게 되었다. 독서실에서 오후 10시가 넘으면 바로 옆의 당구장으로 달려갔고 친구 녀석과 당구 게임을 즐겼다. 가끔씩 칠판이 당구대로 보일 때도 있을 정도였다.
어찌되었던 고등학교 2학년 시절 나는 아웃사이더로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공부도 열심히 했고, PC통신도, 당구도 열심히 쳤다. 30에서 50,100까지 수준을 올렸으니. 시나브로 세상을 알아가면서 1994년 고3이 되었고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입시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