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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능력시험

1994년 11월 이후

by Wynn


학력고사 시대는 1992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93년부터 수학능력시험이라는 새로운 시험이 시작되었다. 첫 해에는 8월과 11월 두 번 시험을 볼 수 있었고 더 높은 성적을 가지고 대학에 지원할 수 있었다. 내가 고3인 된 1994년에는 11월 한 번으로 시험 횟수가 줄어들었고 만점은 200점이었다.


1994년 11월 23일. 그냥 평범한 수요일이었지만 76년생 우리 또래들에게는 인생을 좌우하는 기로의 순간, 바로 수학능력시험일이었다. 수험표와 가방을 챙겨서 집을 나서려는데 우리 집 근처에 살고 계신 이모부가 아침 일찍 우리 집에 들르셨다. 이모부는 "수험생이 걸어서 먼지 나는 신작로를 걸어서 시내로 나가는 것을 볼 수 없지"라며 "시험장 앞까지 오토바이로 태워주겠다"라고 하셨다. 그날 나는 고맙게도 이모부의 오토바이 뒷좌석에 올라서 편하게 시험 장소로 갈 수 있었다. 시험장 앞은 배웅 나온 부모님들과 응원 나온 여러 학교의 후배들로 정신이 없었다. 그 틈을 뚫고 시험장 한 구석의 내 자리에 앉았다. 그때 어젯밤에 따라 부르던 노래 한 구절이 생각났다. '하늘이여 나를 도와줘 그렇게 울고 있지 말고......' 신승훈의 노래 '그 후로 오랫동안'이었다. 나는 그 노랫말을 시험 중간중간 중얼거렸다.


오후 5시 외국어 영역 시험을 마무리하면서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대학수학능력 시험은 모두 끝이 났다. 크게 어렵지도 그렇다고 쉽지도 않았다. 수험표에 정답을 적어왔고 그날 저녁 텔레비전을 보면서 답을 맞혀나갔다. 평소 잘했던 수리 영역에서 실수가 많았지만 다행히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갈 점수는 나온 듯했다. 그 당시 괜찮은 대학은 수능과 함께 대학별 본고사를 치러야 했다. 수능과 본고사의 비중이 비슷했기에 나는 또다시 논술과 수학 등으로 이뤄진 본고사 준비를 해야 했다.


내가 원하던 학과는 사실 물리학과나 천문학과였다. 자연의 이치를 공부하는 순수과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담임 선생님의 반대가 상당했다. 순수과학은 취업을 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타협한 것이 물리학을 기반으로 한 기계공학이나 건축공학이었다. 그렇지만 선생님께 성적표를 보여주는 순간, 선생님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학과를 제안했다. 농업 관련 학과나 조경학과였다.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전공이었다. 우리 집안 사정을 고려하여 장학금을 받고 취업이 잘되는 학과를 지원하라는 것이었다. 비슷한 점수를 맞은 친구에게는 지방의대를 지원하라고 하셨지만 나에게는 달랐다. 나는 부모님과 상의하고 고민해 보겠다며 교무실을 나와서 조용히 집으로 향했다.


담임선생님뿐만 아니라 나의 큰 아버지도 비슷한 제안을 했다. 12월 주말 아침, 갑작스럽게 찾아오신 서울의 큰 아버지. 내게 수능성적을 물어보시며 공대가 아닌 세무대학을 지원하라는 것이었다. 막노동과 공장을 다니는 부모님들을 생각해서 세무공무원이 되라는 것이었다. 직업이 보장되고 일찍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 서러워서 눈물이 고였다. 아무도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뭘 잘하는지 듣지 않았고, 오직 취업이 잘 되고 돈을 잘 버는 곳을 지원하라는 강요뿐이었다. 너무나 짜증 나고 서러웠다. 나는 큰아버지께 "제가 알아서 하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내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 방에 들어와서 펑펑 울었다. 잠시 후 어머니는 내 방으로 들어오셔서 조용히 손을 잡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원하는 곳에 지원해. 나하고 아빠가 어떻게 해서든 학비를 지원해 줄게" 그리고 조용히 방으로 돌아가셨다.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분은 오직 어머니밖에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신문에 중간급 대학의 특차모집 광고가 눈에 띄었다. 내가 지원을 고민했던 대학은 아니었지만 내 성적으로 충분히 들어갈 수 있었고, 공대가 유명한 대학이었다. 잘하면 장학금도 받을 수 있을 듯했다. 큰 아버지와 담임선생님의 제안이 짜증 났고, 솔직히 그분들에게 뭔가 반항하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고사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잠시 접어두고 나는 당장 그 대학교 기계공학과에 특차전형 지원을 했다. 며칠 후 나는 합격 통보를 받았다. 큰 아버지의 충격스러운 제안을 받은 후 정확히 1주일 만에 내가 원하는 학과에 지원하고 합격을 한 것이었다. 나는 담임선생님과 큰아버지에게 합격 소식을 전했다. 실망하는 목소리였지만 그래도 합격을 축하한다며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씀을 전해주셨다.


3년동안 고민했지만 결국 하루만에 선택한 대학.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내 반항심이 만든 선택이었다. 내 인생 첫 번째로 내가 한 결정, 내 인생의 방향타를 잡는 첫 순간이었다.


나는 비로소 안개 가득한 희미한 세상 속에서 꿈을 찾아 항로를 만들어가는 '나'라는 배의 선장이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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