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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데이트 박소현입니다

라디오방송과의 인연

by Wynn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4년은 유난히 더운 한 해였다. 그 해 여름은 한반도 역사상 최악의 폭염으로, 한 여름 기온이 거의 40도에 육박할 정도였다. 당시 우리 교실에는 선풍기 2대가 전부. 더위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남자 선생님이 진행하는 정규 수업은 상의를 벗고 러닝셔츠를 입고 수업을 했을 정도였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기에 결코 만만치 않은 1994년이었다.


그 당시 나의 가장 큰 행복은 음악을 듣는 것이었다. 나의 1호 보물인 MyMy 카세트 플레이어에 용돈을 모아서 산 테이프를 돌려 듣는 것. 자전거를 타고 집에 오는 길에, 때로는 독서실 한 구석에서 음악을 듣는 것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1994년 나의 플레이 리스트는 마로니에 '칵테일 사랑'으로 시작하여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 여름에는 더 클래식의 '마법의 성', 11월에는 신승훈의 '그 후로 오랫동안'으로 이어졌다. 힘들던 고3 시절, 그 노래들로 버티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대중음악과 더불어 그 당시 또 하나의 행복은 배우 박소현이었다. 드라마 '내일은 사랑'에서 이병헌의 여자 친구로 시작하여 드라마 '종합병원'에서 레지던트로 출연했던 박소현. 그 귀여운 외모와 잔잔한 목소리가 매력적이었다. 특히 어떤 토크쇼에 나와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모습이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안쓰러워서 꼭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 그런 사춘기 풋사랑 같은 감정 때문일까? 나는 그 이후로 박소현의 열렬한 고3 팬이 되었다. 더더욱 반가운 일은 1994년 10월 10일부터 박소현 누님(?)이 MBC라디오 FM데이트의 DJ가 되었다는 것. 매일 밤 10시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달 정도 남은 시기였지만 매일 밤 10시가 되면 나는 독서실 구석에 앉아서 이어폰을 껴고 소현 누나의 라디오 방송을 책장을 넘겼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났다. 갑자기 라디오에서 내 이름이 들리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서 이어폰을 귀에 가까이 가져다 대고 방송을 집중했다. 내가 올린 사연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의 고운 목소리로 읽어주는 것이었다. 내 이름이 처음으로 방송을 탄 순간이었다. 확인해 보니 며칠 전 PC통신 하이텔의 MBC FM 데이트 게시판에 올린 사연과 신청곡이었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었다. 내 사연이 라디오 전국 방송을 타서 놀랬고,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그것을 읽어줘서 더욱 기분이 좋았다. 그렇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작가님 덕분일까? 자주 게시판에 들려서 신청곡과 함께 고3 입시생으로서의 사연을 올렸는데 그럴 때마다 나의 사연이 소개되곤 했다. 그 순간 순간이 고등학교 시절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한 번은 MBCFM1이라는 라디오국 공식 아이디가 사용 중이라서 살짝 쪽지를 보냈더니 사용하시는 분은 박소현의 FM데이트 안 00 PD님이셨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사연을 소개해주셔서 고맙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놀랍게도 이미 PD님도 내 이름을 알고 계셨다는 사실. 그것을 인연으로 가끔씩 PD님과 채팅을 했고 나는 고등학생 청취자의 입장으로 방송 내용을 모니터링하고 새로운 제안을 드리기도 했다.


그 인연 때문일까? 수능 시험을 마친 후에 나는 PD님의 초청으로 고등학교 친구 2명과 함께 여의도에 있는 MBC방송국에 방문하게 되었다. 라디오국으로 가서 PD님, 작가님과 인사를 하고 개그맨 이홍렬 아저씨의 도움으로 방송국 구경을 다니면서 강호동, 이경규, 신은경,김건모 등등 그 시절 인기 연예인들과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진정으로 만나고 싶었던 그녀를 만났다는 것. 라디오 방송 전에 박소현 누나를 만났고 심장이 터질 듯한 가슴을 부여잡고 짧지만 떨리는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아직도 나의 앨범 한구석에는 그 때 찍은 사진 한 장이 남아있다.


어찌 보면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나에게 가장 소중하고 의미 있던 추억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는 훈훈한 순간이었다. 나는 아직도 설렘 가득했던 그 날을 추억한다. 영원히 기억에 남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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