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팟의 추억

카지노와의 악연

by Wynn

2003년 2월의 어느 날. 케언즈의 어학원에서 만난 친구들이 나를 근사한 뷔페로 초대했다. 어떻게 내 생일을 알았는지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모여서 나의 생일 파티를 해준다는 것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찾은 곳은 바닷가 근처에 있는 가성비 좋은 시푸드 뷔페. 당시 1인 25불(약 2만 원) 정도에 근사한 해산물 뷔페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배고픈 워홀러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었다. 나는 친구들의 축하를 받으며 오랜만에 신선한 회와 초밥, 다양한 바비큐 음식을 즐기며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배불리 식사를 마치고 친구들은 시원하게 맥주 한 잔을 하면서 뷔페 건너편의 카지노 입구로 나를 이끌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방문하는 케언즈의 카지노. 덩치 좋은 보디가드를 지나서 카지노 안쪽으로 향하니 영화에서만 보던 슬롯머신과 룰렛, 블랙잭 등 모든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게임을 구경했다. 한 친구가 50불 정도만 해보라며 룰렛 게임으로 나를 이끌었다. 자세히 게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친구 녀석. 50불을 주니 2불짜리 칼라칩 25개를 바꿔주는 것이었다. 운이 좋았던지 30분 정도 게임을 하니 칩은 50개로 늘어있었다. 그렇게 카지노를 방문한 첫날, 나는 50불을 벌어서 카지노를 나설 수 있었다.


다음 날에도 나는 친구 녀석과 함께 카지노를 향했다. 이번에는 100불 정도를 바꿔서 머신 게임을 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슬롯머신에서 기차소리가 나더니 화면이 바뀌고 뭔가 특별한 기차 그림이 나타났다. 잠시 후에 기계가 멈추더니 카지노 직원이 내가 다가와서 축하한다고 했다. 자세히 알아보니 1200불 메이저 잭팟이 터졌다는 것. 현금으로 1200불을 나에게 건네주는 것이었다. 카지노 방문 이틀 만에 경험해 보는 잭팟이었다. 초보자에게 찾아오는 행운이 틀림없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카지노를 찾았다. 하지만 그날이 이후로 행운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매일 같이 패배의 연속. 1주일 정도 지나니 며칠 동안 땄던 돈을 모두 날려버렸다. 잭팟 이상의 금액을 카지노에서 날리는 일이 생기게 된 것이었다. 어느 순간 카지노에 계속 빠져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빠지면 중독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케언즈를 떠났다.


케언즈를 떠나서 앨리스 스프링스에 들려서 울루루 사막 투어를 마치고 나니 주머니에는 단 200불(20만 원)이 남아 있었다. 그곳에서 애들레이드로 향하는 기차 티켓을 끊고 백패커 하우스에 머물면서 다시 일자리를 구했다. 하지만 애들레이드 시내의 호스텔에서 만난 것은 베드버그라고 불리는 빈대. 온몸이 모기에 물린 것처럼 부어올랐고 참기 어려운 고통이 밀려왔다. 처음으로 대형병원으로 달려가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 무려 6시간을 대기한 끝에 겨우 의사를 만났고 무사히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며칠이 흘렀다. 완전히 돈이 바닥날 즈음에 다행히 한국식당에서 알바 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열심히 일하니 하루에 100불 정도, 1주일에 500불 정도를 벌 수 있었다. 몇 주 일을 하니 다시 방을 구할 수 있었고 주말에 자동차를 빌려서 여행도 다닐 수 있었다. 애들레이드에서 호주에서의 두 번째 생활을 시작한 것이었다.


일상이 정착되어 가는 와중에 나는 다시 카지노를 찾아 되었다. 주급을 받고 오랜만에 식당 사장님, 직원들과 함께 찾은 카지노. 이번에도 역시 운이 좋았다. 그날은 케언즈에서 손해 본 금액을 모두 만회할 정도로 크게 이겼다. 그렇지만 여기서 끝내야 했다. 쓸데없는 자신감 때문일까? 다음 날 나는 홀로 카지노를 찾았다. 어제와는 달랐다. 욕심이 생기면서 베팅액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결론은 올인. 나는 씁쓸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에도 가끔씩 본전 생각이 나면 다시 카지노를 찾았다. 가끔 돈을 따는 날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돈을 잃었다. 방값과 식비를 제외하고 알바로 번 대부분을 잃는 날도 있었다.


어느 날인가? 주급을 잃고 돌아와서 방 한 구석에서 펑펑 울었다. 나 자신에 대한 실망 때문이었다. 결코 카지노에서 돈을 벌 수 없었다는 것. 다행히 그날 이후로 나는 카지노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더 이상 카지노를 찾지 않았다.


그 대신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몇 달간 홀로 호주 여행을 떠났다. 울루루로 두 번째 아웃백 여행을 시작으로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멜버른과 인근의 금광마을, 그렘피언 국립공원과 크레이트 오션로드의 자동차 여행을 즐겼다. 카지노보다 더욱 재미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두 달 동안 호주의 아웃백과 남부 여행을 다니며 진정한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시간을 마지막으로 나는 11개월 동안의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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