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라는 새로운 전쟁터로 들어가다.
2004년 봄학기가 시작되면서 나는 본격적인 취업 전쟁에 나섰다. 매일매일 학과 게시판이나 홈페이지를 둘러보며 새롭게 올라오는 신입사원 채용 공고를 살폈다. 취업뽀개기라는 다음 카페에 들러서 대기업에 합격한 생생한 후기들도 꼼꼼히 살폈다. 그 당시 합격 후기들을 보면 대부분이 서울 명문대학교를 다니고 좋은 학점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에 비해서 내가 가진 것은 상당히 초라했다. 서울에 잘 나가는 대학을 다닌 것도 아니었고, 학점도 겨우 3.0을 넘긴 평범한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외국어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특별한 수상경력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남들과 다른 톡톡 튀는 생각과 일에 대한 열정, 기계공학과 언론정보학을 공부한 융합적 마인드가 내가 가진 작은 장점이었다.
남들보다 스펙이 부족했지만 주눅 들지 말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는 대기업 3곳을 지원했다. 전자 회사 2곳과 자동차 회사 1곳이었다. 고민 끝에 광고 카피를 쓰듯이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전자회사는 반도체칩에서 영감을 받아서 'C.H.I.P.'이라는 키워드를 따서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창의적(C)이고, 인간적(H)이며, 혁신적(I)이며, 열정(P) 가득한 신입사원을 표현하면서 글을 써 내려갔다. 자동차 회사는 당시 그 회사의 인기차종 4개의 차종명을 모티브로 나의 모든 것을 표현했다. 자동차와 내 삶을 연결한 것이었다. 운이 좋게도 3곳 모두 서류 전형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광고처럼 독특한 자기소개서가 큰 효과를 본 듯했다.
서류가 통과되니 인적성 검사가 있었다. 당시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취업 준비에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토요일 밤늦게까지 집회 마무리를 하고 새벽 사우나에서 잠시 눈을 붙인 후에 강남의 시험장으로 향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일요일 오전에 인적성 시험을 치렀다. 모르는 문제는 그냥 넘겼고 아는 문제만을 최선을 다해서 풀었다. 놀랐게도 결과는 다시 합격이었다. 그렇게 잘 본시험이 아니었는데 운이 좋았던 듯했다.
이제 마지막 남은 것은 면접 평가였다.
전자회사에서의 면접은 모두 압박 면접이었다. 모든 면접관이 나를 비난하고 상당히 난처하게 만들었다. 인격적인 모멸감이 들 정도로 강한 압박이었다. 적당히 감정을 조절해 가며 준비한 답변을 해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답했다. "기업이 인재에 목말라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제가 그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지만 오늘 면접관님들의 질문을 들어보면 그 답을 찾고 계신 것이 아닌 듯하다는 생각입니다. 저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 점에 대해서 아쉽게 생각합니다. 다만 이 회사와 좋은 인연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라고 마지막 발언을 했다.
전자회사들의 면접을 마치고 자동차회사 면접을 했다. 당시 나는 기획직군을 지원했고, 무슨 깡인지 혼자 기획서를 하나 준비해서 9부를 출력해서 갔다. 실무면접과 중역면접에서 나는 면접관들에게 기획서를 건네주며 면접을 시작했다. 2004년 당시에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일. 같이 면접을 보는 지원자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면접관들도 조금 엉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렇지만 내가 건네준 기획서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면접관들도 보였다. 덕분에 같이 면접본 사람 중에서 나는 가장 많은 질문을 받았다. 잘 하면 붙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작은 기대감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지원한 모든 회사의 입사전형이 마무리되었다. 드디어 5월 초 결과가 나왔다. 전자회사에서는 S사는 합격, L사는 불합격이었고 자동차회사인 H사도 합격 통보를 받았다. 사실 나의 성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학교 동기들도 그 학점으로 합격을 했다는 것이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지난 해 합격한 동기 대부분의 학점은 3.8 이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고 당당히 합격증을 받을 수 있었다. 세상에 불가능은 없었다.
2달 정도 두 개 회사를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기계공학과 전공을 살려서 자동차회사의 기획부문으로 입사를 하게 되었다. 우연히 바로 그 시점이 내 삶의 10,000일이 되는 날이었다. 태어난 지 1만 일 기념으로 취업이라는 선물을 받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도전을 다시 시작했다. 직장이라는 전쟁터. 그 시작점을 찍은 것이었다.
-----------------------------
에필로그.
2026. 1월 1일. 삶의 조각들 2번째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시골 아이에서 순수했던 청소년기를 지나서 대학생이 되고 군입대와 학원강사, 그리고 호주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마무리하고 이제 회사에 입사하게 됩니다.
삶의 조각들 1편과 2편에서 여기까지를 다루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회사에서의 이야기를 다룰 예정입니다. 결코 만만치 않았던 회사 생활을 글로 담아보겠습니다.
삶의 조각들 Story 3을 기대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