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꿈꾸며!
2004년 3월 10일. 갑작스러운 뉴스가 흘러나왔다.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를 추진한다는 소식이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할 때부터 대한민국의 기득권 세력들은 상업고등학교 출신의 '대통령 노무현'을 흔들었다. 그의 혁신적인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자신들의 밥그릇을 빼앗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었다.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평검사들은 학벌 운운하며 고졸 출신의 대통령을 조롱했고, 새 정부가 추진하려는 행정수도 이전과 지방 분권 정책도 서울의 토착 기득권 세력의 반대로 번번이 좌절되고 있었다. 수십 년간 권력을 잡아온 보수 정당들과 조중동 언론 세력, 그리고 법조 카르텔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빨리 사라져야 할 제거의 대상이었다. 평소 정치에 관심이 없던 공대생이었지만 대통령 탄핵 소추는 정말 말도 안 되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결코 상식적이지 않은 정치적 꼼수로만 느껴졌다.
"교수님, 오늘 수업은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참석이 어려울 듯합니다. 대한민국의 한 명의 시민이자, 깨어있는 대학생으로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모습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통계학 교수님께 짧게 메일을 남기고 3월 11일 나는 여의도로 향했다. 이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는 많은 시민들이 작은 촛불을 들고 탄핵 반대를 외치고 있었다. 나도 조용히 사람들 사이에 앉아서 홀로 탄핵 반대를 외쳤다. 내 생애 처음으로 참여하는 촛불집회였다. 다행히 그날은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이 통과되지 않았다. 우리 시민들의 목소리가 그곳까지 전해지는 줄만 알았다. 그렇지만 그것은 오해였다. 다음 날인 2004년 3월 12일에 국회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반발하는 가운데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의 주도하에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을 통과된 것이었다. 국회 밖에서 나는 그 충격적인 사건을 군중 속에 섞여서 그대로 목격한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2004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로 촛불집회는 광화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3월 13일부터 본격적인 촛불집회가 시작된 것이었다. 단순히 집회 참여에만 그치지 않고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며 행사를 주도적으로 도왔다. 국협말(국민을 협박하지 말라)이라는 카페의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며, 일찍 광화문으로 향하여 촛불집회 운영을 도왔다. 촛불과 피켓을 나눠주고 행사 시에는 질서유지를 담당했다. 후원금을 모아서 주최 측에 전달했고 행사가 끝난 후에는 쓰레기봉투를 가지고 뒷정리를 했다. 1~2주 정도 자원봉사 1조로 활동하면서 거의 매일같이 수업을 마치고 광화문을 찾았다.
그중에 가장 잊지 못할 기억이 하나 있다. 행사 중에 갑자기 KBS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온 것이었다. 나는 당당히 외쳤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부끄럽고, 그것을 한 번 바꿔보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라고 말했다. 운이 좋게도 나의 인터뷰는 그날 9시 뉴스 메인 기사로 나왔다. 저녁 9시 10분 정도가 되었을 때, 핸드폰에 문자가 터지기 시작했다. 뉴스에서 내 얼굴을 잘 봤다는 지인들의 연락이었다. 가족부터 친구, 후배들까지 다양했다. 그날 아버지께서는 KBS뉴스를 보고 "촛불집회하는 놈들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라고 잔뜩 화를 내고 계시다가 내 인터뷰를 보고 깜짝 놀라서 슬그머니 노여움을 줄이셨다고. 내 동생이 웃으며 조용히 내게 말해주었다. 아무튼 그날 이후 나는 주변에서 핫한 정치적 인물이 되었다. 다음 주에 통계학 시간에는 교수님께서 내 메일을 잘 읽었다며 살포시 미소를 지으시며 파이팅 하라는 말씀을 전해주시기도 했다.
어찌 되었건 나는 2주 정도 광화문의 중심에 있었다.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끝없이 펼쳐진 그 불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서로 격려해 주고 응원해 주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한 목소리로 뭉쳤던 우리 시민들의 모습에 감동하고 또 감동했다. 내 청춘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을 진행하고, 나 또한 취업 원서를 넣은 몇 개 회사에서 필기시험과 면접심사 일정이 잡히면서 더 이상 광화문에 설 수 없었던 것이었다. 비록 광화문을 떠나 있었지만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소추를 기각한다는 판결이 나오기를 매일매일 기도하며 기다렸다. 결국 2004년 5월 14일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기각시켰다. 당연한 결과였다. 나는 소리쳤다. 대한민국의 상식은 아직 살아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