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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ynn Nov 11. 2022

7살 아이와 첫 올레길 도전

올레 19길(너븐숭이, 동북리 마을운동장, 김녕농로), 20길(김녕해안)

밤새 비가 내렸다.

거센 바람과 천둥까지 새벽녘에 잠을 이루기 힘들 정도로 비가 내렸다.

아침이 밝았을 때 창 밖을 바라보니, 다행히 비는 그친 상태였다. 하늘도 약간의 구름이 있을 뿐 서서히 파란 하늘이 늘어나고 있었다.

오늘은 가족이 함께 처음으로 올레길을 걷기로 계획한 날이다. 며칠 전 한라산 등산의 후유증이 조 남아있기는 했지만, 근육을 풀기 위해서라도 조금 더 걷는 것이 필요했다. 일기예보를 확인해보니 오늘은 비 내릴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아 보였다. 늦은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 숙소를 나섰다. 혹시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비를 챙기고 올레길 걷기를 시작했다.


가족이 함께 하는 첫 올레길 도전이었기에 집 앞을 지나는 19길과 20길 일부를 걷기로 했다.

우리의 오늘 목표는 19길 10.3km와 20길 1.5km 모두 11.8km. 약 서너 시간 걸리는 코스였다.

 19길의 북촌리 너븐숭이 43기념관에서 북촌포구 동명대, 동북 새 생명교회를 지나 동복리 마을 운동장까지 약 4.5km를 걸어간 후에 간단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벌러진 동산에서 풍력단지 임도와 김령농로, 남흘동과 김녕서포구까지 이어지는 5.8km의 19길을 걷는 것이었다.

다시 김녕포구에서 김녕해수욕장까지 약 1.5km를 더 걷고 그곳에서 모래 놀이를 마친 후에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오늘 목표 정했다. 그렇게 우리는 올레길 도전을 시작했다.

너븐숭이 위령비, 북촌포구 동명대, 북촌 용천수
꿩동산 입구, 북촌 동굴, 올레길에서 만난 말들

자주 들렸던 너븐숭이를 시작점으로 북촌포구 동명대를 통과해서 꿩동산을 지났다. 우리 가족의 산책 코스였기에 여기까지는 아무 부담 없이 걸을 수 있었다. 19코스 마지막 편의점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니 북촌 동굴이 나타났다. 일반인들에게 공개가 되지 않은 용암동굴로, 120m 규모의 내부에는 선사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유적이 있다고 했다. 아이와 함께 동굴 입구를 구경하고 다시 걷기를 시작했다. 큰 도로를 지나서 동북리 마을 운동장으로 향하는 길에서 멋진 말 두 마리를 만날 수 있었다. 조랑말은 아니고, 외국의 경주마처럼 잘 빠진 몸매가 한눈에 들어왔다.

올레19길에는 한적한 시골길과 작은 숲 속길이 이어졌다. 마을 뒷  숲 속을 지나니 갑자기 확 트인 잔디 운동장 하나가 나타났다. 마치 비밀의 공원처럼 숲속에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동복새생명교회, 동복리마을운동장

외진 곳에 숨겨진 운동장, 이곳이 동북리의 마을 운동장이었다. 잔디가 잘 깔린 축구장, 지도를 확인해 보니 우리 숙소에서 차로 10분 거리였다. 시간이 날 때 아이와 함께 공을 가지고 와서 축구를 하면 딱 좋은 공간이었다. 시계를 보니 1시간 30분 정도 시간이 소요되었다. 우리 가족은 이곳 운동장 앞의 정자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19길 중간 지점으로 올레 패스포트의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아이가 또 걷는 것이 싫었는지 다시 돌아가자고 했다. 하지만 뒤돌아가기에는 너무 많이 와버린 상황. 차분하게 아내가 아이를 설득하여 더 깊은 숲인 벌러진 동산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벌러진 동산과 동력 단지 숲길

벌러진 동산은 두 마을로 갈라지는 길, 또는 넓은 바위가 번개를 맞아 벌어진 곳을 의미한다고 했다. 아주 오래전 제주의 옛길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올레길이었다. 이곳은 곶자왈 지역으로 울창한 숲이 이어진 지역이었다. 살짝 걷고 있자니 인적이 거의 없어서 혼자 걷기에는 조금 무서울 수도 있는 숲길이 었다. 그래서일까?따분함을 방지하기 위해 중간중간에 몇몇 좋은 어구들을 적어놓았다.

올레 19길 좋은 문구들

문구는 모두 7~8개 정도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맘에 들어오는 것이 '일을 위한 삶인가? 삶을 위한 일인가?'였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시간이 대부분 일을 위한 삶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일만 하다가 보니 삶을 잃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 그것이 내가 휴직을 하고 제주로 내려오게 된 것이었다. 몇몇 좋은 명언들을 읽다가 보니 어느 덧 풍력발전 지대를 지나게 되었다. 거대한 풍력 발전기가 마치 진격의 거인 만화 속의 거대한 거인처럼 우리 머리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직접 아래에서 지켜보니 크기가 정말 어마어마했다.

풍력발전 지대 숲을 열심히 걷다가 아이가 도토리를 발견했다. 아이는 열심히 도토리를 주웠고, 예쁜 몇 개의 도토리는 주머니에 넣어서 숙소로 가져가기로 했다. 이 덕분에 7살 아들은 지치고 앉고 올레길을 걸을 수 있었다.

올레 19길은 숲이라서 그런지 정말 조용했다. 거의 2시간 정도가 지나도록 아무도 만나지 못했는데, 숲길이 끝나갈 무렵 여성 한 분과  남성 한 분을 만날 수 있었다. 올레인답게 서로 반갑게 짧은 인사를 하고 반대방향으로 멀어져 갔다.

김녕의 들녁

어느덧 숲은 사라지고 김푸른 밭이 나타났다. 밭을 구분하는 검은색 담장이 이어지고 밭에서는 귤을 비롯하여 한라봉과 마늘 등이 제주의 풍요로운 자연환경을 거름 삼아서 열매를 맺고 있었다. 평지가 나오니 발걸음도 더욱 가벼워졌다. 아이 손을 꼭 잡고 예쁜 밭을 구경하며 걸으니 저 멀리 파란 바다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잠시 올레길에서 멀어졌던 제주의 바다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올레 19길의 마지막 코스

농로에서 내려와 남흘동으로 들어갔다. 마을 중심부에 오래된 보호수가 있었고 우리 가족은 그곳 나무 아래에서 또다시 휴식을 취했다. 옆에 몇 개의 운동 기구가 있었는데, 아이는 운동을 더해야 한다며 그 기구에 올라서 열심히 운동을 시작했다. 아빠도 같이 하자는 아의 부름에 나 역시 비자발적으로 운동하는 시간을 가졌다.

15여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해안가 길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19 코스 마지막 지점인 김녕 서포구에 도착했다. 10.3km를 완주한 것이었다. 아내는 지난번 한라산 등반에 비하면 이번 올레길 걷기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솔직히 10km 도보는 한라산 산행에 비해면 정말 장난 수준이었다. 아들도 그리 힘들어보이지 않았다.

김녕 해안의 올레20길

잠시 바다를 보면서 앉아있다가 1.5km를 더 걸어서 최종 목적지인 김녕해수욕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은 바다 풍경이 아름다워서 크게 어렵지 않았다. 간단한 산책정도랄까? 걷고 또 걸어서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김녕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쉬는 시간을 포함하여 거의 4시간 정도를 걸어서 최종 목적지인 김녕해수욕장에 도착한 것이었다.

김녕해수욕장

그곳에서 아들은 백사장으로 가서 모래 놀이를 시작했다. 12km 정도를 걸었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다는 듯 모래 놀이에 흠뻑 빠져 있었다. 다음에는 김녕 해수욕장에서 마지막 남은 20코스함께 걸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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