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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만에 다시 만난 크라이스트처치

뉴 브라이튼 해변 / 리젠트 스트리트 / 빅토리아 스퀘어 / 보타닉 가든

by Wynn

긴 항공 여정의 피곤함으로 오전 9시가 조금 넘어서 잠에서 깨어났다. 어제는 악몽 같은 첫날이었지만, 오늘은 그 기억은 잊고 다시 여행을 즐길 준비를 했다. 둘째 날의 첫 일정은 렌터카 대여. 공항 근처에 있는 저렴한 렌터카 대여를 위해서 홀로 공항 가는 시내버스에 올랐다. 시티에서 공항까지 버스비는 2.1불. 어제 택시비의 1/30 수준이었다. 너무 저렴했다. 공항에 도착해 렌터카 업체의 셔틀 밴을 불러서 Jucy라는 업체로 이동했다. 크라이스트 처치와 인근 여행을 위해서 자동차가 필요했고, 이동거리가 많지 않았기에 저렴한 소형차를 3일간 대여를 했다. 오랜만에 뉴질랜드에서 운전대를 잡으니 살짝 긴장이 되었다. 한국은 운전석이 왼쪽에 있지만, 뉴질랜드는 오른쪽에 운전석이 있기에 잠시 혼동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운전 경력 20년 차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앞차를 따라서 조심조심 호텔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래도 와이퍼와 깜박이 조정은 계속 바꿔가는 실수가 이어졌다. 숙소에서 아내와 아이를 태우고 본격적인 크라이스트 처지 여행을 나섰다. 그런데 오늘은 날씨가 돕지 않았다. 아침부터 잔뜩 흐른 하늘이 이어졌고, 비가 내렸다가 그쳤다를 반복했다. 정오가 지나서도 소나기가 이어졌다.


우선은 크라이스트 처치의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 리틀턴 바위 (Lyttelton Rock)로 향했다. 리틀턴 바위는 크라이스트처치 곤돌라 정상부 근처에 위치한 산꼭대기 바위였다. 4년 전 곤돌라를 타고 올라갔을 때, 몇몇 사람들이 자동차로 그곳에 올라온 것을 보고 이번에는 나도 자동차를 타고 그것으로 올랐다. 도심에서 자동차로 달려서 35분쯤 걸리는 거리로, 도시 남동쪽의 바다가 보이는 고급 주택가를 지나면 그곳에 오를 수 있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에는 도시와 해안선의 풍경을 볼 수 있기에 잔뜩 기대하고 올랐지만, 역시 하늘은 흐려있었다. 비까지 주룩주룩 내려서 곤돌라 정상의 식당까지 5분 정도 걷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4년 전에 그곳 어딘가에 숨겨 놓은 500원짜리 동전을 찾고 싶었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그냥 사진 몇 장을 찍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리틀턴 바위에서 바라본 크라이스트 처지 풍경
비오는 날에 오른 리틀턴 바위와 곤돌라 피크

최고의 풍경을 볼 수 없어서 정말 아쉬웠다. 그래서 며칠 후에 날씨 좋은 날에 곤돌라로 다시 한번 올라보기로 다짐하고 차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뉴 브라이튼 해변 (New Brighton)이었다. 크라이스트 처치의 해변가로 남극해에서 밀려오는 거센 파도가 유명한 장소였다. 여름철에는 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하거나 바다를 즐기기 위해 찾는 장소였지만, 오늘은 날씨 때문인지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흰색 모래가 가득한 해안에는 갈매기들이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다.

뉴 브라이튼 해변가

해변에는 누군가 모래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자신의 아이 생일을 축하하는 그림을 남기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쓰여 있는 엄마라는 한글. 방금 전에 한국 아이가 모래 위의 글자를 남겼다고 아내가 전했다. 뉴질랜드 해변에서 한글을 만나니 굉장히 반가웠다. 바람이 상당히 세차게 불었지만, 우리도 남극해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낚시를 위해 만든 피어(pier)라는 바다 쪽으로 쭉 이어진 길을 걸었다. 그 길의 끝에서 저 멀리 수평선의 구름을 뚫고 다가오는 차가운 바람과 파도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저 멀리 남극의 얼음 해안이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브라이튼 피어 풍경
남극해에서 밀려오는 파도

아이가 배고파해서 근처에서 식당에 들러서 점심을 먹으려고 했으나, 2시에 대부분의 식당이 브레이크 타임이었다. 아들이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서 곧장 쇼핑센터로 이동했다. 우리는 근처의 팜스 쇼핑센터(The Palms shopping center)로 자리를 옮겼다. 평일이라서 그리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해변가보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 손을 잡고 푸드코트로 이동해서 17.5불을 주고 큰 접시에 뷔페식 음식을 담았다. 볶음밥과 레몬치킨, 허니 치킨, 돼지고기볶음 등을 한가득 채워 담았다. 그리고 초밥 한 팩도 12.5불을 주고 구매했다. 마지막으로 맥도널드에서 아이스크림을 디저트로 사서 푸짐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점심 식사 후에 쇼핑센터를 한 바퀴 둘러봤다. 이미 뉴질랜드 쇼핑몰에는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가득 차 있었다.

팜스 쇼핑 센터 풍경

대형 트리와 함께 여러 가지 장식품들이 매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가족과 함께 처음 맞이하는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과연 어떤 느낌일지. 쇼핑몰을 둘러보고 나오니 마법처럼 맑은 하늘이 펼쳐지고 있었다. 비가 완전히 그첬고 바람은 조금 차가웠으나 햇볕은 정말 따가울 정도로 뜨거웠다.


우리는 다시 시티에 있는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차량을 주차하고 다시 화사한 초여름 햇살 속에서 시내를 한 바돌아보기로 했다. 숙소 앞의 크라이스트 대성당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4년 전에 왔을 때는 지진 피해 공사가 지지부진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공사가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당시 대부분의 건물이 부서지고, 철거된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현대식 건물로 새롭게 지어지거나, 열심히 신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공간이 많았다. 대지진으로 많은 사람들이 떠났던 크리이스트 처치가 다시 새로운 도시로 살아나고 있었다. 도시에는 생기가 넘기고 있었고, 현대식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분명히 바뀌고 있는 모습이었다.

크라이스트 처지 대성당 복구 공사
새로워지고 있는 도시 크라이스트 처치

아내와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리젠트 스트리트 (Regent Street)로 향했다. 트램 길이 스트리트 중심을 지나고 있었고, 양쪽으로 예쁜 카페가 줄지어 이어지고 있었다. 아기자기한 상점 모습이 작은 테마파크처럼 보였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트리트로 꼽힐 만큼 이 도시의 매력이 흠뻑 담긴 카페 거리였다. 리젠트 스트리트를 지나서 서쪽으로 향하니 빅토리아 스퀘어 (Victoria Square) 공원이 나타났다. 잘 정돈된 작은 도시공원으로 영국 여왕의 동상을 비롯하여 뉴질랜드를 발견한 탐험가 등의 동상이 있었다. 정원의 도시라고 불리는 크라이스트 처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곳에서 아이와 함께 달리기 시합을 하고 공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에이번 강을 바라보면서 부른 빅토리아 스퀘어를 즐겼다. 빅토리아 스퀘어의 북서쪽에는 카지노가 있었는데, 금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리젠트 스트리트
빅토리아 스퀘어

우리는 빅토리아 스퀘어에서 서쪽에 있는 보타닉 가든 (Botanic Garden)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도로에서 이도시의 명물인 관광 트램을 만났는데, 아이는 그 모습이 너무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트램을 꼭 한 번 타보고 싶다는 말에. 일요일에 꼭 타겠다고 아이에게 약속을 했다.

크라이스트 처치 트램

우리는 도심의 끝에서 보타닉 가든을 만났다. 보타닉 가든은 크라이스트 처지의 대표 공원이다. 뉴질랜드의 자연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공원이다. 규모는 분당의 중앙 공원 정도지만, 그 속의 풍경은 마치 영화 아바타의 배경처럼 신비롭고도 이국적이다. 거대한 수목들이 공원을 가득 채우고 있고, 곳곳이 인생 샷을 찍을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었다. 사람들보다는 오리를 비롯한 동물들이 더욱 많았고 투명한 에이번 강 속에도 장어를 비롯한 다양한 고기들이 가득했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부터 각종 운동 시설, 그리고 결혼식장과 삼림욕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숲까지 가득 이어져 있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잘 정돈된 잔디밭을 달리고, 장미 공원에서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해 질 녘 풍경은 지난 4년 전 초겨울 아침에 만났던 풍경과는 전혀 달랐다. 마냥 사랑스럽고 달려가서 안기고픈, 그런 푸르름이 가득한 자연 속 공원이었다.

보타닉 가든 풍경들

공원을 나와서 다시 강가를 걸으며 시내 중심으로 향했다. 약 20분 정도를 걸으니 굽이굽이 강물이 다시 시내 중심으로 이어졌다. 강가에 이어진 산책길을 따라서 우리 가족은 오붓하게 산책을 했다. 중간중간 오리 가족이 우리 가족을 따라오며 인사를 나눠주기도 했다. 여기저기에서 금요일 오후를 즐기는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기억의 다리 (Bridge of Remembrance)를 건너서 어제저녁을 먹었던 시티 마켓으로 들어갔다.

강가 풍경과 기억의 다리
금요일 오후 시티

금요일 오후라서 그럴까, 시내 중심은 활력이 넘쳤다. 많은 이들이 상점 테라스와 잔디에 앉아서 맥주 한 잔을 즐기고 있었다. 몇몇 가족들은 강가에서 오리에게 빵을 던져주며 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저녁이 가까워질수록 많은 사람들이 도심으로 주말 저녁을 즐기러 찾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분주한 금요일 오후였다. 분주했지만 잔잔하고 평온했던 이국적인 뉴질랜드의 금요일 오후 풍경이었다.

그 풍경을 뒤로하고 우리 가족은 이틀째 일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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