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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유 Jan 30. 2023

로레라를 찾아서

네 번째 달리기

"때가 되었다."

달리기 시작한 지 3개월째, 내 몸은 탄탄해지고 날렵해졌다. 처음엔 운동복에 몸을 욱여넣었었는데, 이젠 운동복이 내 몸을 집어삼키는 듯하다. 헐렁해진 운동복처럼 내 마음에 잠자던 미혹도 덩달아 헐렁해졌다. 


“그래. 쇼핑을 할 때가 되었어!” 

한때 미니멀리스트를 자처했건만 옷장이 터지기 직전인데도 마음은 밑 빠진 독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새 옷을 입은 내 모습도 그리 예뻐 보이지는 않았다. 


‘패완얼’. 

“그럼 그렇지. 결국 패션의 완성은 얼굴인 건가?” 

푸념하며 홈쇼핑 채널을 찾느라 리모컨을 돌리다가 우연히 로레라를 만났다. 로레라와 그녀의 언니는 세상에서 가장 험준한 멕시코 협곡 100킬로미터 울트라마라톤에서 최첨단 장비로 휘감은 천여 명의 선수를 제치고 각각 1, 2등을 차지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것도 재활용 타이어로 만든 밑창에 끈으로 얼기설기 묶은 샌들을 신고서!


그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스스로를 라라무리, 달리는 사람들이라 부르는 타라우마라 부족. 그들은 멕시코 가파른 산속, 자칫 미끄러지면 천길 낭떠러지인 곳에 산다. 결코 달리기 편한 곳은 아닐 터. 그럼에도 밤새 축제를 즐기다가 동이 트면 48시간을 쉬지 않고 달린단다. 그들에게 쿠션감 좋은 운동화는 무겁고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매일 염소와 함께 걷고 뛰는 로레라에게 달리기는, 남보다 더 빨리 달려야 하는 것도, 무언가를 더 소유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달리는 삶 속에서 그저 그녀답게 존재했을 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는 나에게 소유인가, 존재인가.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에서 '우리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요롭게 존재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했다. 나 또한 처음에는 신발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뛸 수 있는 단출한 달리기가 좋았다. 특히 혼자 오랜 시간 달리는 행위는 내 안에 어지럽게 쌓여 있던 부정적 생각과 감정, 상처의 흔적을 비워내는 동시에 그곳에 새로운 나를 채울 수 있도록 도왔다. 


하지만 언제부터일까. 나는 마치 선수라도 된 양,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최첨단 기능성 운동복과 러닝화에 집착했다. 달리기가 소유의 수단이 될수록 아무리 빨리 달려도 늘 실패의 두려움을 안고 달릴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반대로 나라는 존재 안에 달리기를 품는다면, 정말 그렇게 된다면, 언젠간 나도 하루키처럼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달려가고 있다.’라고 수줍게 고백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새 옷으로 빡빡한 옷장 틈에서 언제나처럼 날 반겨주는 정겨운 운동복들을 꺼내 보았다. 고맙다. 수고했다. 오랫동안 나와 함께 해 온 옷들을 손질하며 박노해 시인의 삶의 권유의 한 구절을 소리 내어 읊어 본다.



새것이라고따라가지 말 것
편리하다고 따라가는 것이
삶을 더 건강하게 하지 않는다면
 
좋은 것이라고 많이 갖지 말 것
귀하다고 많이 소유하는 것이
삶을 더 자유롭게 하지 않는다면
 
성공이라고 부러워하지 말 것
남을 이기고 앞서가는 것이
삶을 더 평화롭게 하지 않는다면



진짜 마라톤은 아니어도 누구나 오늘도 각자 달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이 달리기의 끝에 비싼 아파트와 번쩍번쩍한 자동차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난 로레라가 되어 익숙해서 가장 편한, 손때 묻은 운동복을 걸치고 나만의 달리기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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