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 때 다녔던 회사의 꼭대기 층에 라디오 방송국이 있었는데 간판 프로그램의 DJ로 활약하던 지인분의 소개로 대학생이었던 동생과 동생 친구가 청취자 코너에서 일일 DJ 체험을 한 적이 있다.
원래는 신청자 중에 추려내야 하지만 지금처럼 1인 방송이 대중화되었던 때도 아니고 일반인이 한 시간짜리 프로그램을 오롯이 진행하고자 마음먹기란 쉽지 않을 테니 섭외가 쉽지 않았던 이유 등등 어른의 사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코흘리개 둘이 바로 투입이 되었다.
내성적이지만 의외로 남 앞에 서는 걸 좋아하고 말도 잘하는 동생을 섭외한 것까진 좋았는데 선곡은 물론 원고도 직접 작성해야 하는 난관이 남아있었다.
나는 국어국문학 전공자라는 저주받은 출신성분과 소개한 죄(?)가 더해져 라디오 대본을 급조해야만 했다.
주어진 시간은 고작 하룻밤이었고 시간 부족과 경험 부족을 핑계 삼아 빈약한 아이디어의 날림 글을 휘갈겨 써냈다.
대중음악으로 떠나는 세계여행-이라는 흔해빠진 콘셉트로 올드팝과 최신곡을 적당히 섞어 플레이리스트를 짜고 김기덕 아저씨와 배철수 아저씨의 라디오에서 주워들은 대로 썰을 풀어댔다.
(유럽 대표-영국의 비틀스에서 한 곡, 호주에서는 카일리 미노그 노래 한 곡, 이런 패턴으로)
고등학교 점심시간 방송에 읊어대기에도 부끄러운 원고였지만 방송을 녹음하고 며칠 뒤 담당PD로부터 원고를 직접 쓴 거냐는 질문과 함께 보조작가 제안을 받았다.
(일단 원고는 혹평이었지만 까탈스러운 DJ의 지인이라는 점이 큰 메리트로 작용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상처로만 남았던 학교 대표 글짓기 대회 이후, 그 흔한 교내 백일장에서 상 한 번 받은 적 없는 나에게 이런 일도 생기는군, 놀라워하며 며칠을 끙끙대고 고민하다가 실력이 안 된다는 생각에 어렵게 거절을 했지만 2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문득문득 그때 일이 떠오르곤 한다.
고등학교 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문예반에 입부하려고 했었다.
작문시험을 통과한 뒤 2학년 선배들의 압박면접을 치르고 나자겁이 났다.
엄청난 겁쟁이였던 나는, 졸업생 선배까지 등판한다는 토요일 오후의 최종면접(대기업도 아니고 무슨 고등학교 동아리 입부시험을 3차까지 치냐 싶어 깊은 회의감에 빠짐)을 결국포기해버렸다.
무단으로 면접에 불참한 것이 주말 내내 마음에 걸려 우울하게 등교한 월요일 아침.
조회를 마치고 잠시 쉬는 어수선한 시간에 그 무서운 2학년 선배들이 우르르 날 찾아왔다.
이제 내 고등학교 생활은 끝났구나 싶어 덜덜 떠는 나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왜 마지막 면접에 오지 않았느냐고 다정하게 묻는 그녀들을 보자 그제야 후회가 밀려왔다.
부모님의 핑계를 대며 죄송하다고 몇 번이고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확신했다.
먼 훗날, 이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되리라는 걸.
다시 라디오 얘기로 돌아오자면 그 일을 계기로 나도,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며들어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었다.
얼마 뒤, 후회하는 건 이제 충분하지 싶어 충무로에 있는 시나리오 학원에 덜컥등록을 해버렸다.
롤플레잉 게임을 하며 아이템을 모으듯 그간 차곡차곡 담아두었던 온갖 잡다한 생각과 감정을 이제는 글로 표현할 수 있겠구나 싶은 기대감에 첫 수업 전날 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붙잡고 뒤척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엔 세상 경험이나 통찰력이 없어 얄팍한 주제와 그걸 덮으려 한껏 기교만 부린 글이 부끄러웠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때만큼 순수하게, 열정을 담아 한 자 한 자 써내려 간 적이 없다.